23.01.04 18:50최종 업데이트 23.01.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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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을 때마다 역대 보수정권이 단골 메뉴처럼 사용한 '공안정책'이 대략 3가지다. 옛날이야기에 비유하자면,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꺼내 드는 세 개의 주머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 개의 주머니 이름은 이렇다. 북한과의 갈등을 고조시켜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함으로써 지지자를 결집시키려는 '안보위기조성', 먼지털기식 수사와 의도적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교묘하게 야당 세력을 위축시키는 '정치탄압', '철밥통'과 '귀족노조'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노조를 실패한 경제정책이나 대외요인으로 닥친 경제위기의 희생양으로 삼는 '노동탄압'이다.


이러한 3가지 정책이 펼쳐질 때마다 국민의 관심사는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한 공동체적 안보와 질서 우선이라는 한 방향으로 쏠리고, 국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합리적 반대 여론은 수면 아래로 사라져 보수정권이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곤 하였다.

윤석열 정부도 그 달콤한 유혹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안통'으로 불리는 이 부분 최고 전문가인 검사들로 구성된 '검찰공화국'을 완성한 상태이기에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야당 대표 및 그 측근들을 향한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와 기소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지막 카드인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탄압'에 몰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탄압'이 성공적으로 관철된다면 앞의 두 가지 통치 방법 또한 재활용되거나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의 반격
 

2022년 12월 1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작년 12월 9일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하자 윤석열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연구모임을 통해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권고문이 발표되도록 했다.

화물연대가 선봉이 되고 전국철도노조, 공공부문·학교비정규직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 등이 중심이 된 민주노총 총파업이 윤석열 정부의 비타협적 시간 끌기로 국민 불편을 초래하고, 노조를 경제위기 주범으로 몰아가는 공격을 통해 굴복하는 모습이 보이자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윤석열식 '노동개혁'의 청사진을 내비친 것이다. 실제 20%대까지 떨어졌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채 나온 '총파업' 구호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생명줄을 던져준 꼴이 됐다. '검찰공화국' 윤석열 정부가 노동존중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와는 차원이 다른 강경 대응을 쏟아낼 것이란 걸 몰랐다면 실력이 없는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책임 있는 노조 지도부라 할 수 없다.

총파업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일명 '노란봉투법')도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야당인 민주당 또한 여론의 변화에 민감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법안을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파업 패배 이후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으로 노동 적대 정책을 정국 운영의 지렛대로 쓰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 3대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인 16일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2일 발표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수용해 올해 상반기 중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12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3대 개혁 관련 청년 간담회를 했다.

게다가 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 개혁의 대상으로 호도하기 위해 12월 18일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미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을 요구했다. 또한 12월 20일에 하태경,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노조 회계감사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공개를 확대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1일 집권 2년 차 윤석열 정부의 신년사는 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제 중 경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노동의제가 실종됐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와는 다르게 내년 4월에 치르게 될 제22대 총선은 '노동이' '개혁'이 됐든 '존중'이 됐든 '개악'이 됐든 '혁신이' 됐든 의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미래시장노동연구회 권고안'의 문제점

지난해 7월 18일 발족한 미래시장노동연구회가 12월 12일 발표한 권고안은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첫째가 근로시간 유연화이다. 현재 '주 단위'인 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개편'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및 적용 대상을 확대하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탄력적근로시간제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내용이다.

둘째는 임금의 유연화다. 통상임금, 평균임금, 주휴수당, 최저임금, 직무성과급제 등 임금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세 번째는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으로 노동조합 설립·운영, 단체교섭 구조, 대체근로 사용의 범위, 사업장 점거 제한 등 노동조합법과 노사관계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고용안정, 이 세 가지를 쟁취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100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은 이런 노동운동의 결과물을 거꾸로 뒤집으려는 시도이자 친재벌 친자본 선언과 다름없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인구구조와 저성장', '기술혁명과 경제구조 변화' 등 개혁과제인 원인은 잘 찾았으나 그러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제시된 것들이 기존 재벌과 사용자들의 요구를 전문가들의 요구인양 포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권고에 노동계의 의견은 무시되고 '현장의 목소리'라며 파편화된 개인만 선택적으로 활용된 점이 권고안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유연근로제를 주장하면서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두권에 있는 장시간 노동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기존 노동시간 총량을 기업의 필요에 따라 어떤 주는 69시간을 적용하고 어떤 주는 11시간만을 일 시켜도 된다는, 인간을 기계로 취급할 때만 가능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주 60시간 이상이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과로 기준을 충족한다. 2008년 노동부가 과로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진행한 정책연구사업을 통해 연구된 '뇌심혈관계질환 과로 기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노동시간이 주 60시간이 넘으면 심근경색 위험이 2배로 증가하고, 노동시간이 하루 11시간 이상이 되면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증가한다. 권고안에 따른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은 노동에 대한 존중도 산업안전에 대한 배려도 없기에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금지 조항과 직장점거의 배제 또는 축소 등 그간 기업과 사용자들이 요구해 왔던 민원사항은 온전히 담고, 과도한 손배·가압류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의 개정 사항에는 아무런 권고도 하지 못하는 미래시장노동연구회의 이번 권고안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당과 노동계가 가야 할 길
   

2022년 12월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조법) 2조·3조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래시장노동연구회의 권고안은 거의 모든 사항을 국회에서 법을 고치지 않으면 실행될 수 없는 사안들이다. 근로기준법을 바꿔야 하고 노동조합법을 바꿔야 하기에 지금 당장 변화되는 것은 없다. 이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도 잘 알고 있다. 이 지점이 윤석열 정부가 노리는 지점이다.

철밥통, 귀족노조의 편이자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과반 다수의석을 가진 야당 때문에 어떠한 개혁도 경제 발전도 할 수 없음을 공공연히 하소연할 것이다. 총선 전략으로 이만한 무기도 없다. 실제로는 재벌과 대기업의 이익에 충실한 내용이지만 '자유'와 '공정'으로 포장된 '경제회복'과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에 따른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조직되지 못한 다수의 비노조 근로자'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핑계 또한 댈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도 보호받지 못하는 법·제도 상황이라면 비조합원 노동자의 처지는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모든 노동자의 근로조건이 하향 평준화될 것이다.

다시 '인간 중심', '노동 존중'의 제대로 된 노동정책을 제시하고 허울뿐인 윤석열 정부의 가짜 노동개혁을 진짜 노동개혁으로 바꾸어야 한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에 반대만 하는 정도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현행법 때문에 노동조합 조직과 가입이 불가능한 특고노동자(화물연대 포함)들이 노동3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전체 사업장의 60% 이상이 5인 미만 사업장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도 중요한 개혁과제다. 1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도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문제는 비조직 노동자,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스스로 처우를 개선해 나가도록 하면서 해소될 수 있다. 노동개혁이라는 과제에 선수를 뺏기면 계속해서 후수를 둘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이미 조직된 노동조합의 역할도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통 크게 단결해야 한다. 식물화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보면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 양대 노총이 기존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취약계층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때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특고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초단시간노동자의 처우에 대해 임금 인상과 고용안정에 대해 얘기할 때 진짜 노동개혁은 시작될 수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노동으로 끼니 걱정을 해보지 못한 자가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돌팔매질하도록 놔두어서도 안 된다.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단결케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단결케 하며,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단결케 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재앙이 아니라 대한민국 노동문제 해결과 발전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위기는 늘 그렇듯 기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성남사람 박영기입니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을 역임한 공인노무사로, 노동자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뛰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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