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5 04:43최종 업데이트 23.01.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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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소셜 코리아 연속 기획] 이제는 보건의료 개혁이다
① 좋은 의료, 나쁜 의료, 이상한 의료 
②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려면
③ 공공의료 체계에서 돌봄의 중요성
④ 일차 보건의료와 공공의료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2일 0시 기준 코로나19로 입원 중인 위중증 환자 수는 637명으로, 오미크론 유행기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이날 오후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광진구 혜민병원에 의료진과 환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 시절 우리 단과대학의 구호는 '단결의대'였다. 학생총회나 축제 같은 단체행사에 동료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할 때면 서로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얼마나 단결이 안 되면 구호가 단결의대겠냐고. 잘하고 있다면 굳이 구호로 삼을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의료'가 언급되는 맥락도 사실 비슷하다.

어느 정도 경제 발전을 달성한 나라 중에서 민영화나 긴축이 쟁점이 아닌 상황이라면 '공공의료'나 '공공병원' 강화가 의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마치 '따뜻한 온정(溫情)'이나 '역전(驛前) 앞'처럼 공공-의료는 불필요한 겹말이기 때문이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공공보건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실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보건의료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보건의료 체계가 가져야 할 마땅한 특성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공보건의료란 국가가 의료기관을 직접 소유·운영하거나(법률상의 공공보건의료기관), 정부가 특별한 공익적 목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사용한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친절하게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이라는 개념도 정의해 두었다. 정부가 직접 설립·운영하는 공공보건의료기관 이외에 의료취약지에서 거점 역할을 하거나 정부의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사립병원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병원들은? 나머지 의료서비스들은? 이렇게 불필요한 겹말로 설명되고, 별개의 법률까지 만들어 공공보건의료에 대해 시시콜콜 정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보건의료 체계에서 공공성이 '기본값'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예전에 단결의대라는 구호가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 유행이 남겨준 교훈
 

국가별 인구 1천 명 당 병상수 및 공공병원 병상 비율 ⓒ 김명희


코로나19 유행을 지나오면서 공공병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병상 위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한국의 인구 대비 병상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과 함께 단연 선두라는 사실이다(그래프의 청색선).   

그런데도 2022년 오미크론 변이주 유행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1일 확진자수가 1천 명이던 시기에도, 1만 명이던 시기에도 병상은 항상 위기였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오미크론 유행 전까지 국내 코로나19 감염자의 입원율이 너무 높았다. 중증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학적 필요성이 낮은데도 격리 목적으로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테면 2020년 봄 1차 유행 시기에는 생활치료센터가 확립되기 전까지 거의 95% 이상의 확진자가 심지어 무증상이거나 경증이라도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생활치료센터가 확립되면서 병원 입원 비중은 꾸준히 감소했지만, 2021년 10월 델타 변이주 유행이 본격화하고 재택의료가 도입된 시점에도 입원율은 여전히 15% 수준이었다.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 입원율은 영국 3%, 독일 5%, 싱가포르 7%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이나 북미 지역보다 감염자 숫자가 훨씬 적은 시기에도 계속 병상이 부족하다고 했던 이유는 이와 관련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병상의 절대 숫자는 많지만 공공병원의 숫자가 적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2019년 기준, 국내의 전체 병상 중 공공 부문의 비중은 9.7%로 OECD 회원국 중에서 압도적으로 낮다. 가장 시장주의적 의료체계를 가졌다는 미국의 21.6%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이 안된다(그래프의 주황색 막대).
     
이런 상황에서 델타 변이주 유행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공공병원이 대다수의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전담하는 구조가 이어졌다. 공공병원들은 기존 환자 진료를 대폭 축소하면서 코로나19 진료에 '올인'했지만 가지고 있는 병상 자체가 적다 보니 가용 병상의 절대 숫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으로 이뤄진 지역거점 공공병원 41개소 중 허가 병상이 300개 이상인 곳은 9개소에 불과하다.

병상 규모가 작다는 것은 단순히 수용할 수 있는 환자의 숫자가 적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전문 분야의 의료인력을 충분히 갖추기 어렵고, 의료진이 고난도 숙련을 쌓을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중증도가 높거나 복잡한 문제를 가진 환자를 진료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환자 병상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형 사립병원들이 자발적으로 비응급 수술을 연기하거나 외래를 축소하고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나서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협조를 구하고 읍소를 하다가 결국에는 병상 동원 행정명령을 내렸다. 2021년 12월까지 중증·준중증 병상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은 총 8차례에 걸쳐 발동되었다.

특히 델타 유행 시기 병상 사정이 급박해지면서 2021년 11월 5일, 12일, 24일, 12월 10일, 22일 등 연달아 5차례의 행정명령이 있었다. 이 중에는 중등증(中等症) 병상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도 두 차례 있었다. 이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12월에는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등 공공병원 환자의 전부 소개(疏開)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의료기관 손실보상금 7조 8천억 원

협조든 행정명령이든 '시장'에서 자원을 동원하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2020년 4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집행한 코로나19 손실보상금 누적액은 총 8조 515억 원인데, 그중 의료기관에 지급한 금액이 7조 8197억 원이다.

지금은 보상배수가 낮아졌지만 상당 기간 동안 중증 환자 입원의 경우 평소 의료수가의 10배, 환자가 입원하지 않아 병상이 비어있는 경우에는 5배의 수가를 병원에 지급했다. 상황이 급박했던 2021년 12월에는 병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입원 1~5일까지 최대 14배의 수가를 지급하고 20일 이후에는 보상하지 않는 차등 보상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한번 비교를 해보자. 300병상 규모로 설립 추진 중인 대전의료원과 서부산의료원의 신축 사업비 규모가 채 2000억 원이 안 된다. 최근 500병상 규모로 신축된 세종충남대병원의 공사비는 약 2500억 원이었다. 또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2025)에서 주요 성과지표로 제시한 '지역 공공병원 20개소 이상 신·중축' 예산은 2조 3000억 원에 불과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새로 병원을 짓는 것도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병상을 확보하는 데에 이렇게나 많은 돈을 쓴 것이다.

의료시장에 이렇게 돈을 썼지만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했던 공공병원은 재정 위기에 빠져 있다. 이들은 유행 초기부터 코로나19 환자 진료에만 집중했기에 지역사회 거점병원으로서 여타 환자들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 수술과 입원이 어렵고 응급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원에 환자들은 발길을 돌렸고, 전문 역량의 쇠퇴나 성과급 감소를 우려하는 전문의들도 병원을 떠났다.
  
환자 감소와 의료진 이탈로 인해 경영이 악화하면서, 국립중앙의료원과 지역거점 공공병원들은 이제 임금체불을 걱정하고 있다.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영업해온 시장의 경쟁자들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많은 이들이 이번에야말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공공병원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높아졌고, 중앙과 지역의 정치인들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공의료 이야기가 공론장에서 사라졌다. 이 자리를 채운 것은 '필수의료' 담론이다. 사실 '필수의료'를 강조하는 것도 '단결의대' 구호만큼이나 아이러니다. 이토록 많은 병상 자원이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서비스에 쓰여왔다는 점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수의료 보장이라는 과제 자체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도 '모든 국민 필수보건의료 보장으로 포용적 건강사회 실현'이라는 비전을 담고 있었다.

예산과 구체적 실행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언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이 계획은 의료자원 부족 지역에 적정 규모의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국립병원 - 국립대학병원 - 지역공공병원 - 특수공공병원 - 보건소를 잇는 공공보건의료기관들의 역할을 정립한다는 청사진을 함께 제시하고 있었다.
     
반면 지금은 '공공정책수가'라고 하는 보상제도가 필수의료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공정책수가는 "국민의 생명‧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나, 진료특성‧지역여건 등으로 의료서비스 공급 부족이 발생하는 분야에 적정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건강보험 보상체계"를 말한다. 공공병원이든 사립병원이든 '수가'를 통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8일 보건복지부가 정책공청회에서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 자료에는 놀랍지만 '공공의료', '공공병원'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58쪽짜리 문서에 지방의료원이 딱 두 번 등장하는데, "주 4.5일 근무, 연봉 3억에도 의사 없는 지방의료원"이라는 신문기사 인용과 "국립대병원 - 지방의료원 간 전공의 파견 수련을 활성화하여 지역 의료인력 양성"이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필수의료 관련 정책을 협의하는 거버넌스에도 의사단체와 병원협회, 전문과별 의학회의 자리는 있지만, 지역책임 의료기관과 국립병원, 공공의료정책 지원기구들의 자리는 없다.

팬데믹에도 꼼짝 않던 시장 권력
 

2022년 7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화이자 백신으로 코로나19 4차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동안 사립병원들은 "건강보험으로 진료하니 우리도 공공의료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렇게 모두가 공공의료를 해 왔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비싼 돈을 추가로 지불하고 시장에서 병상을 사야 하고, '돈이 안 되는' 필수의료 서비스 제공을 독려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마련해야 하니 말이다.

정부가 자체 확보한 공공병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특별 방식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다. 수익을 가져다주는 매력적인 시장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공공정책수가라는 성벽을 도대체 얼마나 높이 쌓아야 안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수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확립해서 시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수의료 담론' 때문에 공공의료체계는 방기한 채 공공재원을 활용하여 사립병원에 대한 의존성을 한층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공병원은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직면해 있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현실의 모습은 상업화된 의료체계 안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패잔병들에 더 가깝다. 공공병원을 더 만드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사립병원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좋은 말씀이다.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공공성이 강화된다면 그까짓 공공병원 개수 몇 개 늘리는 것에 왜 연연하겠나. 하지만 정부가 가진 표준도 안전망도 없다면, 시장과의 협상에서 믿고 버틸 수 있는 자원이 없다면, 체계의 공공성은 대체 어떻게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공공병원을 100%, 80%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함께 손을 잡고 버팀으로써 상업화의 거센 물줄기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유의미한 숫자와 역량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코로나19의 교훈이어야 하지 않을까?

전대미문의 팬데믹 앞에서도, 행정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높은 경제적 보상을 약속받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던 시장의 권력을 국가는 벌써 잊은 것 같다.
 

김명희 /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 ⓒ 김명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명희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관심 영역은 건강불평등, 노동자건강권, 보건의료의 공공성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회역학>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예방의학의 전략> <과로자살> 등의 번역서와 <보건의료 사유화: 불편한 진실> <한국의 건강불평등> <몸은 사회를 기록한다>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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