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3 07:06최종 업데이트 22.12.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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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방첩사령부 ⓒ 국방부


지난 11월, 윤석열 정부는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의 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이하 안보사)의 이름을 국군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로 바꿨다. 이어 '국군방첩사령부령' 개정안까지 입법 예고해둔 상태다. 개정안의 핵심은 군 정보기관의 권한 범위를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기무사 개혁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고 방첩사의 권한은 종전의 기무사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방첩사에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새롭게 부여되는 대표적 임무는 ▲ 대통령을 위시한 모든 국가기관장이 방첩사에 요구한 정보의 수집, 작성, 배포 ▲ 북한, 외국군 관련 정보 활동 대응이다.


이에 따르면 방첩사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 대해서도 정보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된다. 또, 개정안은 '대간첩 작전' 임무를 '통합방위를 위한 정보 수집·지원' 임무로 확대 수정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방첩사는 합법적으로 통합방위협의회에 소속된 중앙 부처와 지자체를 대상으로 정보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무사 해체하고 안보사 설치

2018년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해체하고 이를 대체할 안보사를 설치했다. 제대로 개혁이 되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당시 기무사가 해체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의 기무사는 전국 각지의 기무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꼼꼼히 정리해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특히 2009년 쌍용자동차 투쟁,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등은 대규모 시국 사건은 아예 전담팀을 꾸려서 상세한 정책보고서까지 작성했다. 물론 위법이다. 기무사에는 군 밖으로 나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과거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북한과 관련한 포괄적 정보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기무사는 아니었다. 군이나 방위산업에 대한 적성 국가의 정보 공작에 대응하는 일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설치 목적과 임무가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규정과 무관하게 북한과 관련한 포괄적 정보활동을 명분 삼아 민간인 사찰, 시민단체, 노조 상대 공작 등을 펼쳤다.

이처럼 기무사는 사실상의 '제2국정원'처럼 임무 범위를 넘어 마음대로 활동해왔다. 여기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키운 조직이다. 여기에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쥐면서 보안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간판은 군 정보기관이지만 사실 군사정권의 비밀정보국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며 보안사가 기무사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되었지만, 기무사의 위세는 여전했다.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무사의 전방위적 정보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무사는 '600단위 부대'라는 것도 운영했다. 이 부대는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전국 각 지역을 나눠 커버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군 정보부대가 지역 정보활동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나 기무사는 버젓이 사무실까지 내놓고 민간 공작 활동을 펼쳤다.

2018년 군인권센터가 계엄령 문건을 폭로하고, 세월호 민간인 사찰 문건도 공개되면서 기무사는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임무 범위를 넘어 관행적으로 벌여온 초법적 정보활동은 대부분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도 역대 기무사령관과 참모장들이 줄줄이 재판받고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무사 시절로 회귀할 채비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장성 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황유성 국군방첩사령관 삼정검에 수치를 달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방첩사는 아예 군 정보기관이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초법적 행위들을 '국군방첩사령부령'에 다 적어두고 '합법적'으로 사찰하고, 정치 개입하고, 공작을 펼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통합방위 지원 임무를 근거로 600단위 부대와 민간 공작 사업을 부활시킬 수 있고 포괄적 북한 이슈 대응 임무를 근거로 민간인 사찰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방첩사에 국내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정보수집과 보고서 작성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일들은 기무사가 5년 전까지 암암리에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이다. 그걸 문재인 정부가 문제 삼으며 단도리하니 아예 합법화 전략을 취한 것뿐이다.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개정안이 마련된 과정에 있다. 국방부가 2022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 이탄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중에는 안보사를 방첩사로 개편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가 있었다.

해당 자료에는 '부대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어떤 경위로 설치하고 운영했는지도 쓰여있었다. 방첩사는 자료에 '사령관 지시로 2022. 3.부터 부대혁신TF를 운영'했다고 써놨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았는데 개별부대장이 마음대로 부대 편제와 임무 범위를 개편하는 과제를 연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TF가 꾸려진 건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이후로 보인다. 선거 결과를 보고 기무사 시절로 회귀할 채비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중이었고 임기 끝날까지 군 통수권은 현직 대통령에게 있다. 심지어 문 전 대통령은 기무사를 직접 해편한 통수권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방첩사는 통수권자의 결정을 뒤집는 일을 목적으로 TF를 운영한 것이 된다. 방첩사가 선거 결과를 보고 조직적으로 대통령에게 항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원칙인 나라에선 이런 것이야말로 '하극상'이라 불릴만한 일이다.

국방부의 말장난

21일 국방부는 방첩사령부령 개악에 대한 군인권센터 지적에 반박문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방첩사령부령 개정이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직무 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며, 정치 관여와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은 여전히 불가하다는 원론적인 말만 읊었다.

그러나 개정안을 살펴보면 추가 또는 수정된 직무 중에 신기술 도입과 관련 있는 것은 '문서 및 정보통신 등에 대한 보안업무'를 '문서, 정보통신, 사이버, 암호, 전자파, 위성 등에 대한 보안업무'로 수정한 항목 하나뿐이다. 그 밖의 개정 사항은 대부분 불필요한 권한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국방부는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은 불가능하다며 소위 '3불 원칙'을 언급했다. 군인권센터는 방첩사가 기존과 달리 포괄적인 북한 관련 정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등 '직무상 민간인 사찰'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려고 한다는 지적을 했는데 국방부는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하다는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과거 군 정보기관 역시 당연히 민간인 사찰, 정치 개입 등의 불법행위를 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통제는 고사하고 필요에 따라 민간인 사찰도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임무 규정까지 추가된다면 방첩사에 대한 제도적 통제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국방부는 공공기관장이 법령에 근거하여 요청한 경우에 정보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법령에 근거'해서 요청한 경우에만 협조가 가능하다는 제한적 조항이라고 반박했다. 통상 법령규정에 '법령에 근거한 권한'을 부여할 때는 무슨 법 어느 조항인지 명확하게 적시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냥 '법령에 근거 한 요청'이란 포괄적이고 모호한 단서 조항을 달아 두는 것은 조문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 공공기관장이 군 정보기관에 정보 활동을 요청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조항이 군 통수권을 지닌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방첩사에 정보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지휘하면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법령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성을 지적하였는데 국방부는 말장난으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궁금한 것을 사찰해서 보고하는 황당한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군 정보기관을 대통령 전용 사설탐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보안사 부활 막을 마지막 열쇠
 

지난 20일 군인권센터가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국군방첩사령부령 개정안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연합뉴스


권력이 어디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군이 제도와 원칙을 이탈해 경거망동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아주 위험한 시그널이다. 10.26 사태 이후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때나, 박근혜 퇴진 촛불 당시 계엄 문건을 작성했을 때나, 정권교체에 맞춰 부대 개편을 모의한 지금이나 방첩사의 DNA는 바뀐 것 없이 위험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보기관의 과오가 없진 않았지만, 정보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진행한 사례는 드물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어느 정부도 하지 않았던 위험천만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인권과 안온한 일상을 담보로 삼고 공안의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 셈이다.

이제라도 다시 군 정보기관에 대한 근본적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 국정원은 국회가 법률로 통제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마음대로 개편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그러나 군 정보기관은 다르다. '국군조직법'상 군 조직 개편은 모두 대통령령으로 위임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정보기관의 권한, 임무, 통제 방안을 조정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제약과 가장 밀접한 정보기관을 규정하고 운영하는 일이 대통령에게 일임되어있는 건 위험하다. 군 정보기관을 법률로 통제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는 2018년 기무사 해편 당시에도 숱한 전문가들이 제시한 개혁 방안이기도 하다. 여전히 유효한 지적이다.

방첩사는 개정될 '국군방첩사령부령'에 맞춰 이미 홈페이지까지 새 단장했다. 안보사 시절 보안사가 부대의 전신임을 부정하며 새 출발을 다짐하던 이들이, 다시 부대 연혁에 보안사를 포함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는 서 있을 때 고쳐야 한다.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사고는 필연이다. 보안사 부활을 막을 마지막 열쇠는 국회에 있다.
덧붙이는 글 김형남 기자는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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