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1 11:43최종 업데이트 22.11.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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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합동참모본부는 한미가 19일 미 공군의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재전개한 가운데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전략폭격기 B-1B의 한반도 재전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하루 만에 이뤄졌다. B-1B는 이달 5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 이후 14일 만에 다시 한반도에 출격했다. [합참 제공] ⓒ 연합뉴스


'동해 북방한계선(NLL)으로 미사일을 쐈다, 북한이 핵을 실전 배치했다, 남북 대치의 판이 바뀌었다'며 북한 뉴스는 날이 갈수록 강도가 세진다. 상황이 이러자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하자는 주장은 이제 공공연하다. '비질런트 스톰'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해 정말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

'비질런트 스톰'은 2015년부터 치러진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가 이름을 바꿔 진행된 훈련명이다. '비질런트 스톰'이란 명칭 자체만 보면 별 뜻이 없다. 비질런트(Vigilant)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스톰(STORM)은 전략적·작전적 대비 훈련(Strategic & Operational Readiness Momentum)의 약자다.


그러나 1991년 이라크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걸프전 작전명이 '사막의 폭풍'임을 기억하는 이들은 스톰을 중의적인 의미로 보고 더욱 위기의식을 느낄 만하다. 앞으로 또 어떤 뉴스가 위기를 고조시킬까?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

2018년에 '트럼프'와 '김정은', '문재인'이 만난 일이 벌써 까마득한 옛일 같다. 7.7선언(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남북관계 개선·북방정책의 시발점) 이후 이십년 넘게 진행됐던 남북교류협력이 5.24조치(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남북 간 교역을 전면 중단한 정부의 조치) 이후 몇 년째 중단되었던 시기에조차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가 풀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 희망은 2018년의 짧은 해빙기에 보답받는 듯했지만 이후 남북관계는 이전보다도 더 후퇴했다. 어쩌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이유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희망의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내 희망의 근거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갖고 더 나은 내일을 예비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이 길을 찾고 있다. 거리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학계와 공론의 장에서 세미나도 하고 댓글도 달고 칼럼도 쓴다.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통일 공모전도 여기저기에서 열리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어려운 개념으로 설명하겠지만,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실망과 좌절에 그냥 주저앉는 사람이 있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평범한 진실이다. 누구나 인생을 돌아보면 포기한 일도 많지만, 다시 시작해서 오늘의 자신에 이르게 된 희망의 계기가 된 일도 있기 마련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18년 눈에 보이는 희망은 그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 덕분에 가능했다. 화려한 꽃이 피기 전에 눈에 띄는 일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싹이 나고 떡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더 자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않는다.

한 세대도 훨씬 전에 있었던 1988년 7.7선언도 그 이전의 작은 희망들이 모여서 가능했다. 툭하면 간첩이 나왔고 대통령 부인도 암살됐고 소련 영공에서 우리 비행기가 미사일을 맞아 격추됐다. 그 시절 필자도 반공웅변대회에 출전했다. 우등생은 누구나(?) 거쳐가야 했던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혹한 시절에도 희망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다.

다시 우파정권으로 바뀌면서 제2의 6.15와 10.4 같은 2018년에 잠깐 있었던 눈에 보이는 큰 희망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최고지도자의 임기가 계속 바뀐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국은 5년, 미국은 4년마다 대통령이 바뀐다. 오늘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의 근거를 바탕으로 제2의 7.7선언은 머지않은 미래에 온다고 예측한다. 심지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던 트럼프도 김정은을 만나지 않았던가?

더 암울했던 밤에도 새벽은 왔다

희망을 갖는 분들은 대체로 상상력이 뛰어나다. 심리학자들이 희망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과학적인 다른 설명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짧은 인생을 살면서 둘은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희망을 가진 분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작은 실천을 실행해 가는데, 대체로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 참여한 한 토론회에서 이스라엘과 중동 주변국 사이에도 개성공단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한반도의 개성공단 사례가 다른 분쟁국 사이로 확산되어 가리라 예상했는데, 이미 있다고 하니 신기했다.

이스라엘과 주변 중동국들은 한반도보다 더 심각한 현실 분쟁 상태다. 전면전을 벌써 몇 번 했고 미사일 폭격 정도는 큰 뉴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도 경제교류가 지속되고 있는데, 한반도도 빨리 뭔가 좀 하자는 취지였다.

중동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는 특강을 들으면서 희망과 상상력의 관계에 대해 평소의 지론이 옳다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떤 희망을 갖든 무엇을 상상하든 제2의 7.7선언은 곧 온다. 점쟁이가 아니라서 예언은 할 수 없지만, 오늘의 희망과 상상력은 곧 현실화된다.

그간 남북관계는 지그재그로 발전한다. 그것도 폭이 넓어지는 지그재그였다. 눈에 보이는 희망에 이은 실망과 좌절은 다시 눈에 보이는 새로운 희망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같은 말에 기대도 좋다. 그 흐름을 믿어본다면, 남북관계가 새로 열릴 때 그 이전보다 훨씬 큰 진전이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닫힌 남북관계는 7.7선언 이후 진행된 눈에 보이는 희망이 다시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2의 7.7선언이 있게 되면 훨씬 큰 진전으로 나아가게 된다. 실망과 좌절이 만연한 오늘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희망과 상상력으로 내일을 예비할 필요가 있다.

* 필자 소개 : 북한학 박사. 한국NGO학회 이사, 남북학술교류분과위원. 좌표22 대표. 전 통일교육원 공공부문 통일교육 전문강사. 2009년 피스멘토링커뮤니티 DMZ를 창립한 이후 통일교육의 버전업에 매진해왔다. <통일교육 에센스> <남도 북도 모르는 북한법 이야기> <라이프앤로(Life & Law)> <우리가 불러온 노스코리언송즈 :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통일 노래 시리즈 I> 등 다수의 저서를 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사교사인 아내와 함께 왕릉을 답사 중인데, 노스코리아 지역 왕릉 답사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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