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6 10:47최종 업데이트 22.10.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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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일하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021년 1월 26일 통과됐다. 이 법의 시행일은 제정 후 1년이 지난 2022년 1월 27일로, 이미 시행된 지 10개월째에 이르지만,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없었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년과 다름없이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초기부터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고, 그 사문화 정책의 선봉에 윤석열 정부가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얼마 전 경기 평택의 SPC그룹 계열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SPC그룹 회장이 공개사과하고 사업장의 안전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발표 이틀만인 지난 23일 오전 SPC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샤니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빵 상자를 옮기는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계속되는 노동자의 죽음

SPC그룹뿐인가? 평택 사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충남 천안에서는 크레인이 파손되어 떨어진 자재에 맞아 노동자가 사망했다. 17일에는 인천 연수구에서 방수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고, 18일에는 충북도청 도로보수 공무직 노동자가 도로보수 작업 중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19일에는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지게차에 깔려 사망했고 지난달 26일 대전 현대아울렛 화재로 노동자 7명이 숨졌다. 지난 9월 3일에는 성남시 중원구청에서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으나 1개월이 넘도록 쉬쉬하면서 사건을 감추려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는 그칠 줄 모른다.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828명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하루 평균 2-3명이 끼여서 죽고, 치여서 죽고, 질식해서 죽는다. 대한민국은 산재 사망 왕국이자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바꿔보자는 게 산업안전보건법을 대폭 개정한 '김용균법'이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점차 무력화되어 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근로시간 유연화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완화 의지를 피력해 왔기 때문에 현 정부의 노동 정책 또한 그 기조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반노동정책과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사업주들이 법 시행 이전엔 안전보건 체계 마련에 박차를 가해 지난해 산업재해는 다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오히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경영계를 중심으로 법과 시행령 개정 요구가 높아지고 윤석열 정부 또한 이러한 요구에 힘을 실어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세상이 펼쳐졌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무력화와 반대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손보자고 하는 것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국민인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사항은 정파적으로 재단거나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업 규제 완화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기획재정부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기업 총수들의 책임을 경감하고 처벌을 완화 또는 면제시킬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기획재정부는 중대산업재해를 발생시킨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태도다. 현재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고의 또는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경우로 제한하거나 아예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항은 법 개정 사항이니 국회에서의 법 개정이 필수이다. 국회 다수 의석인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행될 수 없다. 대신 정부 의지만으로 개정 가능한 시행령을 손봄으로써 입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우회하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요청한 10여 개 항목에 걸친 시행령 개정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산업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의무를 경감시키고, 처벌을 면하게 하는 대안들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시행령으로 모법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는 태도는 검·경 수사권 분리와 검찰 정상화 법률(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을 시행령 개정만으로 무력화한 경우와 같은 행태다. 법의 지배가 아닌 시행령을 통한 공권력 행사는 법률의 위임 범위나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 평택시 소재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솜방망이 처벌과 죽음의 악순환

중대재해처벌법을 엄정히 집행해 산업안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검찰은 어떤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지난 8월까지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432명에 이른다. 그러나 법의 심판을 받고 처벌된 사업주는 아직 없다.

지난달 19일 기준으로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21건에 이른다. 처음 기소된 건으로 알려진 건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속 자재 제조업체인 두성산업이다. 이마저 두성산업이 법원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신청을 신청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심판대에 오르는 상황이 됐다.

윤석열 정부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 북한 주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생명 안전만큼 중요한 인권은 없으므로 자진 월북을 의심받고 있거나 희대의 살인마로 의심받고 있더라도 법이 보호하는 범위에서 인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기업과 경제 발전에 온몸 바친 선량한 노동자가 한 해 2000여 명 죽어 나가고, 그중 800여 명은 각종 사고로 죽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런 인권을 얘기할 수는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완화되어야 할 규제가 아니라 강화되어야 할 인권이고 노동권이다. 기획재정부는 법과 시행령을 고쳐 기업만이 일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살고 국민이 살 수 있다. 생명과 안전이 바탕이 되어야 기업 또한 존속 가능하다.

검찰을 포함한 사법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 또한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결코 산업재해가 줄어들 수 없다. 산업사회에서 산업재해가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다. 다만 사업주 스스로 노동자들이 인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때까지 안전과 보건에 대한 대비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안전에 드는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라 인식함으로써 과감히 투자할 때 비로소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소개: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성남 사람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을 역임한 공인노무사로, 노동자와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뛰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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