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4 10:51최종 업데이트 22.10.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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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한국인의 무비자(사증 면제) 일본 관광이 재개된 11일 오전 김포국제공항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카운터에서 탑승객들이 김포~하네다 항공편 탑승수속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여행의 빗장이 10월 11일을 기점으로 거의 완전히 풀렸다. 아직 백신 3차 접종 여부에 따른 자잘한 제한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론 코로나 이전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일본정부는 해외관광객 유치뿐 아니라 내국인 국내관광에도 각종 혜택을 주는 이른바 '전국여행지원정책'을 11일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책의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1인 1 숙박당 최대 8000엔을 할인받을 수 있고,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평일 3천 엔, 휴일 1천 엔)을 현지 숙박시설에서 바로 발급받는다. 즉 일주일을 머문다면 약 7만 엔 정도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에어트립, 라쿠텐트래블 조사에 따르면 이 덕분에 여행경비가 약 40% 정도 절감될 것이라 한다.

추락하는 기시다 지지율

기시다 내각으로선 아주 발 빠른 정책시행이다. 사실 기시다 내각은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중의원 참의원 모두 약 2/3에 근접한 의석수를 획득해 '개헌가능 내각'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쥐게 됐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죽음과 그로 인해 밝혀진 자민당 내 의원들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의 깊은 관계, 나아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문제로 여론이 양분되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NHK 월별여론조사를 보면 기시다 내각은 7월 참의원 선거 직후 59%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여론은 21%에 불과했다. 하지만 통일교 문제와 국장 여론이 팽팽하게 맞선 9월 40%대 40%로 동수를 이루더니 10월에 들어서는 지지하지 않는다(43%)가 지지한다(38%)를 5%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작년 10월 기시다 체제가 들어선 이후 내각지지율이 비지지율보다 낮게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2년 10월 4일 오전 일본 도쿄에서 북한이 일본 상공을 비행한 것으로 보이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다보니 단명 내각으로 끝난 스가 내각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시작된 스가 내각은 작년 5월부터 9월 자민당 총재선거까지 약 5개월 여간 지속된 지지율 역전 현상으로 국정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스가 총리가 그 해 9월에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했던 이유도 낮은 지지율이 결정적이었다.

참고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내각지지율이 30%를 밑돌 경우 내각총해산(중의원 총선거)이 거론된다. 그리고 한번 빠지기 시작한 내각지지율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보인다. 3개월 전만 하더라도 기시다 내각의 이런 지지율 역전현상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향후 3년간 대형선거가 없고, 양원 모두 과반수를 훌쩍 넘기는 안정적인 의석을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3년 동안 기시다 총리가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준비돼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통상국회 발언과 총리기자단 회견(약식문답, 카코미취재) 등을 통해 '주시'와 '검토'라는 발언을 할 뿐 실제적인 행동과 결단을 보이지 않았다.

먼저 통일교 문제다. 내각의 주요 인사 중 통일교 행사에 참여하고, 선거운동에 있어 조직적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밝혀진 정무관급 이상 인사만 30명이다. 이 중에는 데라타 미노루 총무상,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 등 기시다 파의 핵심 멤버는 물론 주요 대신만 8명이나 포함돼 있다. 극우적 언동으로 유명한 아베 전 총리의 측근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은 통일교 발행 잡지와 인터뷰를 했고, 심지어 야마기와 다이시로 경제재생담당상은 통일교에 회비를 낸 사실도 발각됐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시점이 무려 3개월 전인 8월 17일이라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 때만 하더라도 "대신을 교체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말했지만 현재 이들 중 해임된 대신은 한 명도 없다.
  

27일 오후 일본 국회 앞에서 일본 시민단체 연합인 '아베 전 총리 국장에 반대하는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약 1만 5천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2022.9.27 ⓒ 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먼저 국장을 반대하는 일본국민들의 논리는 간명하다. 국장에 소요되는 비용은 결국 국민들이 낸 세금인데, 여론조사를 보면 국장을 반대하는 여론이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일관되게 과반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즉 '세금으로 국장을 치르는 건 아니다'라는 반대여론이 과반수를 넘겼는데, 국장을 강행한 기시다 내각에 대한 불만이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시다 총리는 '듣는 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던 사람이다.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되고 금방 국장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후 두어 달 동안 달라진 민심의 향방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지적, 즉 고집을 피운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자신의 히로시마 선거구 사무소 공설비서(국가예산으로 월급을 지급하는 비서직)로 쓰던 장남 기시다 쇼타로를 총리정무비서관으로 전격 임명한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지역구 세습 및 후계자 수업은 확실히 관례였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습 2세 의원의 자질 문제와 직업 선택의 불평등 등의 이유로 세습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듣는 힘'을 중시하는 현직 총리가 독단적으로 8명까지 임명할 수 있는 총리비서관 직 중 하나를 장남에게 맡긴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종전 이후로 따져 봐도 극히 드물고, 2007년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후쿠다 다쓰오(현 자민당 부간사장)를 총리정무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이 마지막 케이스였다. 이 때 역시 당시의 민주당 등 야당세력이 강력하게 반발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짓을 해버렸으니 야당의 비판은 물론 국민들 눈에도 좋게 비칠 리가 없다.

하지만 통일교, 아베 국장, 장남 임명 등도 사실 국민들이 먹고 살 만하면 별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지금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특히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서민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32년만의 엔저 현상... 먹고사니즘 붕괴

지난 9월 20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2020년 8월 기준 대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동월대비 3% 상승했고 전월(7월) 대비 0.3% 올랐다. 채소, 과일, 선어, 정육 등 서민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신선식품'을 제외한 종합지수는 동월대비 2.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6-7% 상승률을 우습게 기록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플레이션 충격이 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사회는 지난 20년간 인플레이션다운 인플레이션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나라다. 오죽하면 아베 전 총리의 국정 핵심 과제 중 하나가 연간 2%대의 인플레이션이었겠는가. 그랬던 일본사회가 갑작스레 찾아온, 그것도 서민들의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소비자 물가상승에 당황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9월 20일 발표한 최신(2022년 8월) 소비자물가지수 자료. ⓒ 일본 총무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은 근 32년만의 엔저 현상을 겪고 있다. 10월 13일 현재 1달러당 엔 환율은 146.8엔이다. 일본은행과 재무성이 개입하는 환율 방어를 지난 9월 22일 약 3조 6천억 엔 규모(한화 약 36조원)로 한 차례 시도했다.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팔아 엔을 매입하는 직접적 환율개입인데, 효과는 단 사흘에 그쳤다. 달러당 145엔 하던 것이 환율개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139엔까지 떨어졌지만 25일 다시 145엔으로 복귀했고, 지금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146-147엔 대를 기록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올라갈 기미가 안 보인다. 물론 그는 탈탄소 및 스타트업 기업 지원, 그리고 대만의 TSMC와 연계한 반도체 산업 부흥, 노동자 임금상승 등을 내거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미래먹거리를 위한 것으로 지금 당장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래서 궁여지책 끝에 나온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 바로 일본여행 자유화 및 국내여행 지원책이 아닐까 싶다.
  

13일 일본 도쿄 시내의 환율 전광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 24년 만에 처음으로 146엔선을 넘어선 데 이어 이날 147엔선에 접근하고 있다. 2022.10.13 ⓒ 연합뉴스

 
먼저 엔저현상으로 인해 해외관광객의 방문이 자유로워지면 당연히 달러유입이 이뤄지고 관광지 서민들 입장에서도 직접적인 경기부양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히 관광이 지역경제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지방 소도시는 더더욱 그렇다. 인프라도 풍부하다. 아베 집권 시기 관광 분야를 국책사업으로 설정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교통편의 시설, 숙박시설 등을 근 몇 년간에 걸쳐 확충해 뒀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때문에 지난 3년간 활용되지 못했을 뿐 이미 인프라는 구축해 둔 상태니까 따로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여행지원에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랄까 일본국민들은 먹고 살만하면 별로 정치에 관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오래된 습속을 지니고 있다. 기시다 총리 역시 국민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풍요롭게 만든다면 역전된 지지율도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각종 악재들로 30%대까지 떨어진 내각지지율을 과연 그가 회복시킬 수 있을까? 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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