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0 11:49최종 업데이트 22.10.10 11:49
  • 본문듣기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올해 4월 1∼17일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조치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65만개사에 총 8900억원의 손실보상금이 지급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7일 제30차 손실보상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2022년 2분기 손실보상 지급계획안'을 의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9월 29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모습. ⓒ 연합뉴스

 
코로나19 손실보상은 영업제한에 대한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입은 손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견디면 기회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견딘 시간에 대한 보상은 기대와는 달랐다. 디지털 경제로의 대전환이 이유란다. 코로나19가 가면서 디지털 경제가 더 빨리 왔단다. 디지털은 바이러스도 아닌데 낯설고 무섭다. '위기는 기회'라는 상투적 이야기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이다.

돌아보니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디지털 경제에 대한 백신도 맞고 처방도 끝냈다. 정부의 진단과 처방에서 소상공인의 자리는 좁다. 위기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데 외부 여건 때문에 병원에서 진단과 처방을 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이하는 소상공인의 현실이다. 코로나의 안개가 걷혀가고 있지만 디지털 경제의 그늘이 드리운다. 대중소기업 간 '디지털 격차'가 사회 불평등을 키운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소상공인 정책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계획하고 실행했다. 청와대 내에 자영업비서관을 신설하고 당정청이 함께 기본계획을 세우고 대외에 공표했다. 중기벤처부 내 소상공인 전담국을 만들어 그 실행 의지를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소상공인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노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늘은 깊고 짙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은 국가 경제에서 소상공인의 점유율과 영향력을 좁게 만든다.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정책의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디지털 경제 시대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디지털 경제 백신 필요

경제의 속도가 바뀌었다. 과거 정부는 민간보다 앞서서 민간이 불확정성으로 인해서 투자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한 연구개발을 선도했다. 그런 결과를 민간과 공유하면서 산업을 이끌었다. 라디오가 대중음악의 시대를 이끌었던 것처럼 인터넷과 모바일 등 디지털 기술은 대중 기술의 시대를 열었다.

기술의 대중화는 생산과 유통, 소비의 변화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특히 소비자의 빠른 변화는 생산자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런 변화를 정부의 연구개발 결과가 따라가기 힘들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연구개발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정부는 생산의 영역이 아닌 소비의 영역에 기여하면서 총수요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통해 공공이 700조 원 가까이 수요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취임 이후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강화하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당선되기 이전에 발표한 '바이 아메리칸 플랜'의 후속 조치로 지금까지의 바이 아메리카 관련 조치 중 가장 강력한 이행 조치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은 이런 맥락에서 유감이다. 대기업의 밀키트 상품이 아니라 지역 자영업 제품을 가정간편식(HMR)화 해서 수요를 창출해 주는 것 또한 대중기술 시대에 공공의 수요 창출 방식이 될 수 있다. 총수요 창출이야말로 디지털 경제 시대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백신이다.

플랫폼 경제가 아닌 프로토콜 경제로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이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 경제는 플랫폼 경제다.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은 생산과 유통, 소비시장의 소비자 패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실상부 '디지털 상공인' 시대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디지털 시대와 코로나 위기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디지털 상공인 자체에 대한 이해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 단체들도 디지털을 오프라인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보조적 역할로 인식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대면 시장에 대한 이해에 머문다.

이는 글로벌한 흐름과도 역행한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디지털 경제 내 빅테크 기업들의 독점을 사회문제로 인식한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디지털세 과금 논의가 활발하다. 바이든 정부는 리나 칸을 미국의 공정위원회 위원장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는 강력한 빅테크 규제론자다.

윤석열 정부는 '자율규제'란 이름으로 사실상 강자의 편에서 상황을 방관한다. 디지털 경제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강한 시장 지배력이 형성되면서 시장을 독점, 통제할 가능성이 크다.

리나 칸 FTC 위원장은 '기존의 반독점 규제법(공정거래법)이나 제도가 21세기 인터넷 산업의 공정 경쟁 저해 행태와 독과점 피해를 충분히 견제하지 못한다'면서 '소비자에게 값싼 제품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아마존과 같은 기업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소품종 대량생산 시절 소수의 생산자가 담합을 통해서 소비자 이익을 해할 때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과는 다른 양태가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다양화된 소비자 욕구를 맞춘 다수의 생산자가 존재한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소비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 이익 못지않게 다수의 생산자의 권리 또한 소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 문제는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관점이 아니라 다수 생산자의 창의성과 혁신성을 데이터를 독점하는 플랫폼이 통제하는 것에 있다. 강력한 플랫폼 사업자가 제조업을 병행하면 안 된다. 최근 쿠팡에서 시행하는 자체브랜드(PB) 상품의 경우 중소기업과 소기업의 이익을 침해한다. 플랫폼은 중개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간 상생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플랫폼과 소상공인 간 협상력 불균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소상공인에게 집단적 협상권을 부여해야 한다. 특정 소상공인이 함께 플랫폼에 협상을 요구하면 플랫폼이 의무적으로 협상에 응하게 하는 것 또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플랫폼의 데이터를 비식별화해서 공공적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서울시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의 경우 오프라인 자영업 창업자를 위한 상권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제는 디지털 마켓에 입점하기 위한 상권분석 서비스도 플랫폼의 데이터 제공을 받아서 공공이 서비스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자발적 차원에서 플랫폼간 상생지수를 개발해 대외적으로 공표하고 소상공인 친화적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 지원을 이끌 필요가 있다.

플랫폼 경제에서 앞다퉈 만들어진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플랫폼들은 서로 간의 노하우 교류를 위한 협력적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최근 신한은행이 '땡겨요'를 통해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ESG가 아닐까 싶다.

대상별·업종별 맞춤지원 프로그램 절실

정부의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정책은 소상공인이 주인공이 되고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 소상공인을 객체화하고 타자화하는 사업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소상공인이 주도적으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상공인이 직접 진행하는 라이브 커머스, 소상공인이 직접 전하는 디지털 전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소상공인이 디지털 전환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정부의 모든 지원사업은 현장에서 핸드폰만으로도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인플루언서를 불러서 잠깐 보여주기 위한 사업은 그것을 보는 소상공인을 주눅 들게 한다.

디지털 전환이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스마트 폰과 인터넷을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듯이 디지털 전환도 선택이 아니라 적응이다. 일회적 쇼와 이벤트를 하는 보기 좋은 떡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민생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양식이 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한다. 획일화된 지원이 아니라 대상별 업종별 맞춤형 지원이 되어야 한다.

600만 소상공인 사업자들이 디지털 전환을 보는 입장은 다종다양하다. 이제 막 디지털 경제에 진입한 분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서 스케일업이 필요한 분에게 같은 지원을 할 수는 없다. 현상유지적 소상공인 정책에서 성장형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소상공인도 스케일업을 통해서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맞춤형 지원을 위해서는 찾아가는 현장형 사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원받을 때만 반짝 좋은 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업이 된다.

소상공인이 있어 우리가 있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한 인류학자는 한 부족의 어린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과일을 담은 바구니를 나무에 매단 뒤 가장 먼저 다다른 사람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출발신호를 들은 아이들은 모두 서로 손을 잡은 채 달렸고, 함께 도착해 둘러앉아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1등이 되면 혼자 다 가질 수 있지 않느냐'고 학자가 묻자. 아이들이 되물었다. "다 슬픈데, 혼자만 행복할 수 있나요!" 그리고 합창하듯 "우분투!" "우분투!"

우분투(ubuntu)는 '네가 있어 내가 있다', 혹은 '당신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는 의미를 지닌 남아프리카 반투족의 인사말이다. 용서와 화해, 박애를 강조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앞으로의 디지털 경제는 누군가가 독식하는 플랫폼 경제가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이익을 나누는 프로토콜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거 틀에 갇히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분투!'

* 필자 소개: 디지털 기술이 성장과 산업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없을까? 디지털 사회혁신의 물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 디지털 보좌관, 디지털사회혁신연구소 소장, 중소기업유통센터 소상공인 디지털 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물음에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음동지가 되어주세요.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