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6 13:00최종 업데이트 22.09.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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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오는 18일부터 5박 7일간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일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엔총회 기간에 뉴욕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는 발표가 나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5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한일정상회담을 열기로 양국이 합의했다"며 "20~21일 중에 시간을 조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6월 7일 임명되고 7월 16일 부임한 윤덕민 주일대사의 신임장 제정이 이달 14일 있었다. 이날 윤 대사는 나루히토 일왕(천황)에게 신임장을 제출하면서 한일관계의 조속 발전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주일대사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신임장을 일왕이 접수함에 따라 윤 대사의 특명전권대사 자격이 일본 정부에 의해 인정됐다. 그리고 다음날인 15일에 정상회담 발표가 있었다. 미세하나마 양국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상회담에 관한 일본 측 발표는 다소 온도 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실 발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야후재팬 뉴스>에 전문이 실린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의 15일 자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실 발표에 대한 의견을 묻는 말에 대해 마쓰노 관방장관은 "기시다 총리는 제반 사정이 허락되면 국제연합 총회에 참석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총리 뉴욕 방문의 구체적 일정에 관해서는 현 시점에서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구체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을 뿐 대통령실 발표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김태효 차장이 발표한 일정 역시 구체적이지 않다. 그 역시 '조율 중'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장관은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면서 "외교 당국 간에 긴밀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뒤 "지금의 전략적 환경을 보면 일·한 및 일·미·한 협력의 진전이 지금 이상으로 중요한 적은 없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해법을 갖고 오면 정상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국내 언론들에도 보도됐듯이 13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정상회담에 대한 기시다 내각의 입장을 "징용공 소송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끝까지 지켜본 후 판단한다"는 말로 설명했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라는 숙제를 마쳐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발언은 박진 외교부 장관한테서도 나왔다. 7월 25일 국회 대정부 질문 때 "시기는 잘 모르겠지만, 강제징용을 비롯한 현안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한일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쓰노 관방장관은 정상회담 문제에 관해 답변하면서 한·미·일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발언했다. 이는 일본이 정상회담 개최에 동의한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한다.

윤석열 정부에 내준 숙제가 아직 덜 끝났지만 한·미·일 협력 필요성 때문에 회담에 응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 가능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가 핵무력 법령을 제정해 핵 드라이브를 한 단계 높여 한·미·일을 긴장시킨 것도 이번 회담 결정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공언한 것이 있기 때문에 윤 정부로부터 아무런 양보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에 응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 반대를 무시하고 아베 신조 국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32.3%(9~12일 조사, 지지통신)가 됐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이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해도 윤 정부로부터 아무런 외교적 성과도 얻어내지 못한 채로 기시다 내각이 한일정상회담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마쓰노 장관이 언급한 '한·일 간의 긴밀한 소통' 과정에서 일본이 제한적이나마 성과를 얻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2.6.29 ⓒ 연합뉴스

 
일본 측 희망 어느 정도 충족시킨듯

이와 관련해 한일의원연맹이 참가한 15일 제주포럼 분위기가 참고가 될 수 있다. 제목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인 제주포럼의 특별 세션에 참가한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한 사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양국이 성실하게 협의하고 있으며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최근의 한·일 협의가 불만족스러웠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기 힘들 것이다.

제주포럼에 참가한 다케다 료타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간사장에게서는 일본이 양보할 여지에 관한 언급도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면서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이제까지 한국의 양보만을 촉구해온 일본 측이 쌍방의 양보를 언급했다. 한국 측이 어느 정도로나마 '성의'를 보였기에 일본도 이처럼 관대하게 나올 수 있었으리라 볼 수 있다.

최근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으로 판단되는 '성의' 중에서 인상적인 한 가지가 지난 7일 <지지통신>에 보도됐다. '일본 측 대응, 현실적으로 협의(日本側対応 現実的に協議)'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기사는 한국 외교부 고위인사("外務省高官")의 말을 빌려 '전범기업의 사죄·배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는 한국 정부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이 기사는 "고관(高官)은 원고 측이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최대치의 호응'으로 표현하고 '최대치의 호응을 일본으로부터 얻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 대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기사의 분석이다.

기사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내용이 담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한다는 표명과 더불어 강제징용에 관해 사과한다는 표명을 일본 정부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윤 정부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런 뒤 윤 정부가 마무리 수순으로 내놓을 대책을 위 고위 인사의 말을 인용해 소개했다.

<지지통신> 기사 속의 고위 인사는 "국민의 공감을 최대한 얻을 수 있는 내용의 해결책이 생기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를 도출할 만한 여론형성 작업을 통해 문제를 마무리할 생각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윤 정부가 '숙제'를 다 마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성의'를 보여준 데다가 한미일 협력체제의 필요성도 있기 때문에 일본이 정상회담에 응하게 됐으리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전범기업을 열외로 두는 것과 더불어 일본 정부가 희망하는 것이 또 있다. 향후 새로운 소송사건에서 한국 법원이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한국 국회의 입법을 통해 차단되는 것이다.

일본은 1971년 1월 19일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 행사를 사실상 봉쇄한 박정희 정권 때의 사례가 재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판사들의 판단 근거가 될 법률을 정비하는 방법을 통해 소송 제기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 일본 측의 희망사항이다.

위 제주포럼의 분위기를 보도한 15일 자 <경향신문> 기사도 "일본은 현재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와 함께 다른 피해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이른바 '유사 소송'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도록 입법 조치가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강제징용 문제의 입법적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최근 한국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피해 당사국인 한국의 선제적 입법을 통해 한·일 양국이 갈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하고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화해·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이 선제적 입법을 통해 선제적 양보를 해야 일본도 양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도 15일 제주포럼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전범기업이 아닌 제3자가 대신 갚아주는 대위변제 방식으로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를 동결하고 국회 입법을 통해 이 문제를 마무리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쓰비시 자산 현금화 사건의 주심 대법관이었다가 9월 2일 퇴임식을 한 김재형 대법관도 비슷한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남겼다. 8월 19일까지 끝났어야 할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가 미뤄진 일로 인해 한·일 양국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치러진 지난 2일 퇴임식에서 그는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김재형 대법관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2022.9.2 ⓒ 연합뉴스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라며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를 사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명시적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지적하면서 내놓은 발언은 아니지만, 강제징용 현금화 문제로 주목을 받게 된 퇴임식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대법원에 '시간을 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낸 뒤에 대법원이 법적 판단을 보류했다. 그런 다음 전범기업의 사과·배상을 요구하기 힘들다는 한국 외교부 '고관'의 발언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고 강제징용의 입법적 마무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시다 내각이 한일정상회담에 동의한 데는 이런 흐름에 대한 만족감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원하는 대로 문제가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낙관과 더불어 윤 정부가 여소야대 정국에서나마 입법적 해결을 추진하는 성의를 보이게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판단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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