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6 07:02최종 업데이트 22.09.1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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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독일 에센바흐 이자르강 옆에 있는 이자르 원전 2호기 ⓒ 연합뉴스


인간이 환경문제를 정치, 사회, 경제를 관통하는 통합적 이슈로 인식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과거라고 환경 재앙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종교적 필연 또는 자연적 우연이 인간에게 주는 피할 수 없는 시련 정도로 인식됐을 뿐이다. 당시에는 그런 대응도 충분해 보였다.  

20세기 들어 인구 증가는 그전의 4배에 달했고 경제 총생산량은 14배, 에너지 사용량은 13배가량 늘었다. 인간 문화가 이렇게 전에 없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면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의 영향 역시 당연해 보인다. 요컨대 환경으로부터의 영향에서 환경으로의 영향을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환경으로의 영향

환경문제와 관련해 20세기 새롭게 등장한 인식은 이처럼 자연과 인간은 상호적 또는 변증법적 관계의 긴장 상태 속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과거에 비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범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인간으로부터 전례 없는 유린을 당한 자연의 역습 또한 그 못지않게 엄중했다.  


환경(環境)은 이제 더 이상 병풍 마냥 인간의 뒤에 늘 그렇게 '둘러싸고 있는(環) 영역(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인간 속으로 들어와 이제는 자연(nature)의 영역뿐 아니라 문화(culture)의 일부가 되었다. 환경문제와 관련한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의 접근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환경은 인간 밖에서 배경으로 주어져 있는 단절된 그 무엇이 아니라 인류가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끝없는 소통을 해야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서유럽에서의 환경에 대한 접근은 학문적 대상일 뿐 아니라 사회 운동, 정치 운동의 활발한 장으로 전개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문제는 온전히 인문학적(人文學的) 영역이다. 초월적 대상이 아닌 인간의 응접(應接) 양식에 따라 그 모습과 운명이 결정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환경문제는 인간이 환경 전반에 걸쳐, 또는 특정 영역의 개별 대상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전제를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는 환경문제에 대한 접근에는 다양한 인식의 오류 위험이 따른다. 그리고 그 위험은 인식의 오류를 넘어 행동의 오류, 때로는 정책의 오류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다.
 

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번화가인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의 전광판들이 어둠에 싸여 있다. 이날부터 시행된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절감 조치로 네온사인과 전광판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끄게 돼 있다. ⓒ 연합뉴스


인식의 오류

올해 전 세계 환경문제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유럽연합은 오랜 논의과정 끝에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탈 원전, 친 원전 진영을 대변하며 대립했지만 유럽의회는 표결과정을 거쳐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일찌감치 2000년대 초반 탈 원전을 목표로 했던 독일은 올해 2022년까지 단계적인 원전 폐쇄를 결정했다. 2002년 기준으로 32년이라는 모든 원전수명 시한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한 탈 원전 대원칙은 올해 논쟁의 장이었던 친환경 분류체계에 원전을 불포함하겠다는 기본 입장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에 오스트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등이 동참해 탈 원전 대열에 섰다. 

반면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는 원전을 친환경 분류체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했다. 이 대열에는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주로 동유럽 국가들이 동참했다. 이들의 친 원전 원칙에는 원전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경제적 이유 또한 한 몫 한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원전의 친환경 분류 찬성 입장이 유럽연합 평의회와 의회의 논의를 거쳐 최종 관철됐다.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된다는 유럽연합의 공식 결정에는 앞서 말한 여러 국가들의 투자 가치 이유 외에 또 하나의 경제적 변수가 작용했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을 포함한 다수 유럽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 문제에 직격탄이 됐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제한 또는 중단이 이들의 현실을 옥죄게 된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8월 21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통제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독일의 숄츠 총리는 사흘 일정으로 캐나다를 방문, 액화천연가스(LNG)의 독일 공급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독일 정부는 러시아 편중의 에너지 수급 정책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신재생 에너지로의 가속 전환, 그리고 에너지 수입원의 다각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적 비전과 중장기 정책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지금 당장 써야 할 에너지 확보였다. 전쟁 발발 직후 독일의 에너지 담당 장관은 전 세계를 돌며 구걸하다시피 에너지 확보에 나서야 했다. 

독일정부의 탈 원전 보류, 그리고 유럽연합의 친환경 에너지에 원전 포함 결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과연 원전이 친환경적인가? 이 문제는 애초에 유럽연합이 친환경 분류체계를 논의하는 시점의 맥락을 함께 살피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모든 인간의 이해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인식의 방법에 따라 이해돼야 한다.

택소노미(분류체계)란 하나의 원리(Identity)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수의 결정체(Unity)를 엮는 지적 행위를 말한다. 그 체계에 엮인 다수의 결정체들은 또 다른 하위 원리를 매개로 다수의 하위 결정체들을 엮는 결과물들이다. 분류된 일련의 결정체들은 이처럼 잘 짜인 위계적 원리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흔히 회자되는 격언을 빌려 "분류해봐, 그럼 네가 누군지 맞춰볼게.(Dis-moi comment tu classes, je te dirai ce que tu es)"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분류는 분류의 주체가 누군지, 어떤 맥락에서 분류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분류했는지에 따라 결과를 달리 한다.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인가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의 육상인입시설이 있는 독일 루브민에서 4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숄츠(총리)와 하베크(경제장관)는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시위대는 노르트스트림2를 가동할 것을 촉구하고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비난했다. ⓒ 연합뉴스

 
유럽연합이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시켰던 이유는 전쟁이라는 특수 환경, 전시 에너지 수급 비상상황,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 유럽연합에 요구되는 응집력의 필요성 등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원전이 친환경 분류체계에 들어가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엄격한 조건들 역시 잊지 않았다.   

원전이 유럽의 친환경 분류체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새 원전을 짓기 위해서는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2050년까지 구체적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핵연료봉이 녹지 않게 하는 새 기술 적용도 조건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친환경'에 대한 정확한 정의 안에 놓여 있다. 원전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원자력 발전은 화석연료들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이 현저히 적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내기까지의 과정만 놓고 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후 방사능 폐기물을 저장하는 등 발전소 폐로 과정까지 전 과정을 포함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원전 운영 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화석연료보다 적지만 원전 건설, 운영, 연료 생성, 해체 등 전 과정을 고려하면 이산화탄소의 배출 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산화탄소 외 CH4, N20 등 다른 주요 배출가스까지 포함한다면 원전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더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탄소배출 제한이 친환경과 동의어인지 역시 살펴봐야 한다. 환경문제는 대기오염뿐 아니라 수질오염, 토양오염, 일조방해, 소음공해, 시각공해 등 인간의 건강과 자연의 보존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환경정책기본법 제3조 4항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한 다방면의 환경문제 가운데 기후변화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라는 구체적이고 기형적인 형태의 흐름으로 나타나며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탄소배출이 꼽히고 그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에너지 생산 체계의 전환이 거론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탄소중립은 환경문제 전체 가운데 (물론 아주 중요한) 한 부분에 해당될 뿐이다. 단지 발전 단계의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으로 묘사하는 것은 따라서 무리한 환원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착시의 책임에는 유럽연합도 한몫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2022년이라는 특정 맥락에서 원전을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시켰다. 그 맥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수 맥락에서 만들어진 분류체계에 원전을 넣음으로써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가 된다는 엄청난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은 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에너지문제, 환경문제, 경제문제 등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하는 것은 옳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어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에너지 생산 단계의 경제성과 제한적 탄소배출이 바로 친환경적이라고 소급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엄밀한 용어 선정과 정의가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첫 단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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