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8 05:21최종 업데이트 22.08.1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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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입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김 전 대통령의 발자국은 명징합니다. 13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 국정관리 능력을 재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 정치권이 김대중의 유산에서 배울점을 찾자는 겁니다. <오마이뉴스>는 각 분야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정책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기고를 싣습니다. 그 첫 번째는 <새벽, 김대중 평전>저자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2003년 2월 24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에서 사저로 출발하면서 환영 나온 인파들에게 차 안에서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생 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사)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힘을 쏟고 동교동 집으로 돌아왔다. 긴장이 풀어지자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다. 결국 신장 투석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 번 투석으로 이틀 또는 사흘치의 생명을 얻었다. 그럼에도 극우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김대중은 빨갱이'라며 구호를 외쳤다. 그들의 고함이 담을 넘어왔다.


김대중은 낙담했다. 자신을 음해하는 무리와 지상에서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리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미래인들과 교감했다. 그들이 한반도를 경영할 때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찾을 것이라 믿었다. 김대중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역사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의 시간'이 빨리 찾아왔다. 세상을 떠난 지 13년, 다시 김대중이다. 삶과 사상을 재평가하며 김대중의 리더십과 정책, 업적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마 시국이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는 없고 정치 해설만 난무하는 천박한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보수와 진보 모두 김대중에게 길을 묻고 있다.

철저한 정치인, 김대중

김대중은 철저한 정치인이었다. 정치와 정치인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 잡는 일은 역시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치인은 심산유곡에 피어난 한 떨기 백합화가 아니라 시궁창에서 피어난 연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은 국민이 내뱉은 울음과 한숨을 삼켜야 한다. 흙탕물에서 공동선을 피워 올려야 한다. 김대중은 자신의 말대로 현실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어떤 현안에도 나름의 답을 찾으려 했다.

김대중은 대통령수칙을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사랑과 관용, 그러나 법과 질서를 엄수해야' '인사정책이 성공의 길, 아첨하는 자와 무능한 자를 배제' '현안 파악 충분히, 관련 정보 숙지해야' '국민의 애국심과 양심 믿어야, 이해 안 될 때 설명방식 재고' '국회와 야당의 비판 경청, 그러나 정부 짓밟는 것 용납 말아야' '청와대 이외의 일반시민과 접촉에 힘써야' 등이다. 이렇게 준비된 정치인은 일찍이 없었다.

김대중은 늘 민심을 살폈다. 정권 말기에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오고 민심이 돌아서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2년 새해 연두회견에서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섯 차례나 했다. 민심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것을 정치인 김대중은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마지막에 가장 현명하다."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취임식장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너머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인다(왼쪽부터). ⓒ 연합뉴스

 
김대중의 용서와 화해는 피의 보복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바꾸었다. 대통령이 되어 약속대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세상 끝까지 찾아다니며 죽이려 했던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로 바뀜)와 검찰에 대해서도 어떤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새 출발을 당부했다.
 
"과거 불행했던 안기부 역사의 표본은 바로 나다. 납치, 사형선고 등 안기부의 용공 조작 때문에 별일을 다 당했다. 내가 당했던 일을 안기부가 다시 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요 행정 수반으로서 받드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받들 필요는 없다."(1998년 안기부 업무보고)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 복권을 건의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반발이 거셌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는 더 이상 정치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박정희기념관도 건립토록 했다. 국민 다수의 정서를 감안하면 용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이를 허용했다. 자신의 최대 정적인 박정희와의 화해였다.

통합과 소통 그리고 탕평 인사

김대중은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민심을 세심하게 살펴서 국민보다 반걸음 이상 앞서가지 않았다. 국민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렸다가 국민의 손을 잡았다. 이렇듯 국민들을 설득하며 국론을 한 데 모았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금 모으기' 같은 거국적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4대 부문(기업·금융·공공·노동) 개혁도 참으로 지난했다. 군살을 빼고 환부를 도려내는 일은 국민들의 의식까지 개혁해야 하는 난제였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개혁에 동참했다. 이익집단의 불만은 있었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의 국민통합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집권 초기부터 동서화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이른바 '동진정책'이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민원은 각별히 챙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냉소뿐이었다. 이를 두고 동진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평하지만 지역화합과 국민 통합의 노력에 어찌 끝이 있을 수 있는가. 당시에는 속 보이는 어설픈 정책이라고 폄훼했지만 어떻게든 반대 진영의 마음을 얻으려는 김대중의 노력은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정치적 이해를 따져 민심 갈라치기를 서슴치 않는 요즘 풍토에 김대중의 포용정책은 귀한 유산임이 분명하다.

김대중은 지역차별을 극복하려 무진 애를 썼다. 특히 고른 인재 등용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지역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숨은 인재를 적극 발굴하면서도 탕평인사를 단행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1999년 9월 대통령 김대중은 대법원장과 감사원장 등을 새로 임명했다. 대법원장에는 최종영 전 대법관을, 감사원장에는 이종남 전 법무장관을 발탁했다. 그러자 대변인이 말했다.
 
"총리는 충청, 대법원장은 강원, 국회의장은 대구, 감사원장은 경기 출신으로 3부 수장의 전국화가 이뤄졌습니다."

듣고 있던 이희호 여사가 호남만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 김대중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대통령이 호남인데요, 뭐 어떻습니까."

실언이 없었던 지도자, 역사에 남을 연설문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은 일생동안 말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정제된 입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햇볕정책' '행동하는 양심'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 '철의 실크로드' '기회는 천사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등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대화를 할 때도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레토릭을 구사하지 않았다. 사안을 설명할 때도 쉬운 말로 논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또 상대의 말을 많이 들었다. 대화의 요체는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데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미문과 감성적인 문구는 극도로 자제했다. 말의 유희나 문장의 기교에 빠지면 철학과 의지가 엷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메시지가 분명했다. 중요한 내용은 반복해서 전달했다.

연설비서관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거의 살아남은 문장이 없을 정도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듬고 또 다듬었다. 역사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연설문을 작성했다. 대통령 취임사에는 향후 5년이 담겨있었다. 김대중은 취임사에서 천명한 구상들을 그대로 실천했다. 김대중이 연설문을 썼지만 결국 그 연설문이 김대중을 이끌었다.

정책의 동력은 대의에서 나왔다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대의를 앞세웠다. 햇볕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당위성을 내세웠고, 지식정보화 정책에는 눈앞에 지식정보화 혁명이 밀려오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그렇게 대의를 내세워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의 정부는 역대 최약체였지만 가장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끌어냈다. 한반도 주변 4대국과 선린의 외교망을 설치했다. 4대 부문을 개혁하여 경제체질을 바꾸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굶주림을 추방했다.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과 제주 4.3사건진상규명 특별법 등을 제정했다.

2700만 명의 인터넷 인구를 지닌 IT강국을 건설했고, 그렇게 해서 전자정부를 완성했다. 또 거센 반대에도 4대 보험을 도입했다. 시위현장에서 최루탄과 폭력이 사라졌다. 취임 당시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1200억 달러를 넘었다. 과거 50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246억 달러에 그쳤지만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는 무려 600억 달러의 자본을 유치했다. 온 국민의 열기를 뭉쳐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뤘다. 그리고 가장 귀한 상, 노벨상을 받았다." (김택근, <새벽-김대중 평전>)

그리고 정권을 재창출했다. 이는 정당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다. 진보진영이 불안하거나 불온한 세력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그렇게 해서 국민들로부터 다시 정권을 맡겨도 되겠다는 인증을 받은 것이다.

DJ가 본 윤석열 정부 100일... "검찰을 보내고 정치를 맞아야"
 

2006년 12월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대중도서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이종호

 
김대중은 퇴인 후 어림 3년(2007~2009년, 밝혀진 것만) 동안 일기를 썼다. 건강하게 우리 곁을 지켰다면 여전히 일기를 썼을 것이다. 그의 사상을 살피고 어록을 뒤져서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의 가상 일기를 써보겠다. 그가 남긴 일기의 문체를 흉내 내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지만 추상적이다. 정책이란 것도 나열에 불과할 뿐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별로 없다. 자유란 용어가 자주 등장했는데 낯익어 오히려 낯설었다. 전체적으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지 선명하지 않다. 좌표 설정을 제대로 안했으니 앞으로 헤맬 것 같다. 이런 불길한 상상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독차지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윤 대통령의 인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事後(사후)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그래서 그들을 설계하고 예측하는 事前(사전)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게 좋다.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세우겠다면 검찰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정치검사들을 증오했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정치검사들이 나올 것 같다. 검찰의 미래를 보더라도 불행한 일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 또한 최소한의 지역 안배마저 무시해버렸다. 오직 능력만을 보고 발탁했다는데 이는 망언이다. 소외된 지역민들의 공분을 살 뿐이다.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정치권에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입에 담기에 거북한 말들이 유통되고 있다.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실언이 잦다. 대통령의 말에는 모든 사안의 '최후'가 들어있다. 출근길 회견도 그냥 날 것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말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다. 특히 집권여당의 내홍이 극심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정치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근길 회견에서 실토한 '대통령 처음 해 봐서'라는 발언을 많은 이들이 조롱했지만 나는 유심히 들었다. 그의 고뇌가 느껴졌다. 쌓인 현안들이 산을 짊어진 것처럼 무겁고, 생각할수록 두려울 것이다. 그는 초보 정치인이다. 하루속히 검증된 정치인을 곁에 두고 지혜를 빌려 쓰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검증된 정치인을 얻기 어려우면 노회한 정치인이라도 좋다. 당장 흔들리지 않는 지휘탑이 필요해 보인다."

"집권 초기의 정책들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대의를 내세워 미리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란 마음을 얻는 고도의 기술이다. 그리고 희망과 꿈을 심는 예술이다. 이렇듯 새 정권이 활력을 잃어가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들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풀어가겠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나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당시의 한일관계를 떠올렸다. 대중문화 개방으로 생겨난 한류와 한류스타들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하지만 대북정책이 여전히 안개속이다. 취임사에서 '담대한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지원해주겠다며 여러 가지를 나열만 했을 뿐이다. 이런 당근책으로는 북을 설득할 수 없다.

얼핏 참담하게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떠오른다. 북한은 분명 거칠게 반응 할 것이다.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까 우려스럽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남북화해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는 작은 나라지만 지정학적으로는 중요한 나라이다.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평화의 바다에 고깃배의 노래가 떠다니지만 남과 북이 등을 돌리면 냉전의 바다에 강대국 군함이 물살을 가른다. 이는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우리에게 외교는 명줄이다. 국내정치는 실수하더라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재임 중에 내가 왜 그렇게 4대강국과의 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늙고 병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하며 적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택근은 오랜 기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경향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새벽, 김대중 평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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