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5 10:04최종 업데이트 22.08.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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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동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실력은 기본, 친절함까지 갖춘 의사 덕분에 병원 대기실엔 빈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지루함은 끝이 없었다.

바닥을 내려다 보다가 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쓸데없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던 나는 결국 TV 소리에 멍하니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거친 발소리에 이어 코뿔소의 화난 콧김이 느껴지더니 약간은 경멸적인 여자 분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이봐요, 아저씨, 날 아세요? 왜 내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당황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막 엉덩이를 붙이려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 뛰어왔다.

"아, 죄송해요. 이 사람이 앞을 못 봐서요. 미안합니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나도 손에 든 하얀 지팡이를 들어 보이며 거듭해서 사과했다. 다행히도 그 여자 분 역시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내게 사과까지 한 덕분에 잠시 싸늘했던 분위기는 흐뭇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 고정미

 
나도 사진과 이름 그리고 주민등록번호가 선명한 신분증, 일명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난 또 하나의 다른 신분증도 필요하다. 내가 중증 시각장애인임을 증명하는 신분증, 바로 복지카드다. 복지카드가 없다면 아마도 날 시각장애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외견상 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니까. 더군다나 망막이 문제인 나는 눈동자도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날 그 여자분도 기다림이 안겨주는 지루함과 짜증을 억지로 참고 있었는데, 하필 그 자리가 TV 소리를 좇은 내 시선과 마주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인가 확인해 봤을 것이고, 아니다 싶어 시선을 피해도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웬 아저씨가 자기 얼굴을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으니 기분이 어땠을까? 그것도 표정 하나 없는 멍한 얼굴로 말이다. 그 자리에서 찰지게 뺨을 한 대 얻어맞지 않은 것만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마흔을 갓 넘긴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도 예쁜 얼굴을 보고, TV를 보고,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보고, 뭉게구름 가득한 파란 하늘을 보며 감탄할 수 있었다. 얌전하던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놈이 느닷없이 위력을 발휘해서 내 망막 기능을 망가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15년 전쯤부터 급격히 시야가 흐려지고, 세상의 색깔이 옅어지는가 싶더니 기어코 10년 전쯤에는 사실상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거의 보지 못한다. 이제는 전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 그렇다고 그 새로운 세상이 아주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란 뜻은 아니다. 약간 불편하기도 하고, 조금 힘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 줄기의 빛도 없이 어둠만이 가득한 그런 세상은 결코 아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고, 흥미도 있다. 그냥 약간 다른,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일 뿐이다.

새롭게 살게 된 세상에서, 나는 눈으로 보는 걸 잃었지만 오히려 다르게 보는 법을 알게 됐다. 손으로도 보고, 소리로도 보고 느낌으로도 본다. 그리고 기억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흥미로운 일을 많이 경험한다.

나는 이제부터 그 세상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그냥 부담 없이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수다 떠는 동네 아저씨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지인들

나와 같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눈앞이 아무런 이미지나 무늬가 없는 커튼으로 항상 가려져 있는 건 아니다. 외부 자극에 따라 끊임없이 이미지가 생성되고, 마치 보고 난 영화를 회상하거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듯이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좀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내가 새로 살게 된 세상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 얼굴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성인이라면 10여 년 전 젊음을 그대로 간직할 것이고, 그 사람이 아이들이라면 미안하지만, 결코 자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그들을 모두 기억과 느낌으로 보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그 기억은 최소한 10여 년 전부터 더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누구에 관한 소식을 듣거나,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내 기억과 감각은 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여준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게 좋은 느낌을 준 사람이거나 친한 사람이라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예쁘고 멋진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것도 수십 년 전 젊은 모습으로 말이다.

물론 그때의 대화 내용이나 분위기로 인해 간혹 얄밉거나 화난 모습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그건 진짜 한순간이다.

반대로 그 사람이 좀 부정적 이미지였거나 별로 친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것이 떠오른다. 기억 속 그 많은 이미지 중에서 하필이면 가장 못났거나 이상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냥 뿌옇고 희미해서 누구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미 잊힌 사람이리라.

간혹 다시 좋은 인상을 받거나 친해져서 예쁘고 멋진 이미지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이미 정해진 그 이미지를 떨쳐버리려면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끊임없는 감정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도 예쁜 얼굴을 보고, TV를 보고,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보고, 뭉게구름 가득한 파란 하늘을 보며 감탄할 수 있었다. 얌전하던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놈이 느닷없이 위력을 발휘해서 내 망막 기능을 망가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 pixabay


시력을 잃은 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과정을 거쳐 이미지가 완성된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의 목소리와 매너, 심지어 풍기는 내음까지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내 새로운 눈 역할을 한다. 목소리가 예쁘고 매너까지 좋은데, 향긋한 비누 냄새나 화장품 향기까지 더해진 여성을 만난다면 나는 여지없이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 연예인과 비슷한 모습을 떠올린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만남이 계속되고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나 뒷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내가 새로운 눈으로 본 그 사람의 이미지는 계속 변한다. 심지어 그 변화가 너무 심해서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만남이 여러 차례 지속되었는데, 내가 받은 좋은 느낌이 유지되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다고 느껴지면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몸매는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모습으로 확정된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이겠지만 만날 때마다 정말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떠올라 나는 결국 그 이미지를 그 사람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혹시 내가 다시 볼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된다면 십중팔구 못 알아볼 얼굴이겠지만 말이다.

출근하듯 다녔던 도서관의 어느 퇴직을 앞둔 여자 직원분, 언제나 반겨주던 도서관 앞 커피숍과 중국집의 여사장님과 직원들, 우리 쌍둥이와 이 아이들 때문에 모임을 갖게된 성당의 형제·자매님들, 부담 없이 손을 잡고 웃어준 아내의 동창들, 뒤늦게 만난 형수와 제수, 그 밖에도 내 기억 속에서 주연 배우 뺨치는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반대의 경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못생긴 연예인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속 최악의 등장 인물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이건 사람뿐이 아니다. 건물, 바다, 계곡, 산, 유원지 등등 난 소리와 느낌으로 그림을 그린다. 목이 컬컬하다. 막걸리 한잔하고 이야기를 계속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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