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5 05:32최종 업데이트 22.07.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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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걸린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척결로 군부의 쿠데타 뿌리가 뽑힌 이후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실질적으로 무력을 가진 집단은 검찰밖에 없다.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등으로 중무장한 검찰은 때로는 정권에 충성하면서, 때로는 맞서면서 독자 권력을 누려오다 마침내 직접 정권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역대 정부가 저마다 검찰개혁을 추진했음에도 검찰의 조직과 인원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하나를 없애면 다른 하나를 설치하거나 간판만 바꿔 달았다. 총장이 대통령으로 직행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 위상과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많은 사람이 우려한 대로, 정권과 검찰이 한 몸이 돼가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출신 인사들이 당‧정‧청 요직을 꿰찼다.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은 정권 친위대가 돼버린 느낌이다. 인사는 메시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후 진행된 검찰 인사의 특징은 응징과 보답이다. 전 정부에서 친여권 성향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은 여지없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좌천됐다. 반대로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이거나 친윤석열 라인으로 찍혔던 검사들은 영전했다.

주축은 역시 특수통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선보인 특수통 우대 인사가 재현됐다.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과 함께 수사한 경험이 있거나 사적 친분이 있는 검사들이 중용됐다. 이들이 정권 입맛에 맞는 정치적 수사를 벌인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할 것이다.

언론은 대검 검사급(검사장 이상) 고위 간부는 물론 부장검사급 인사와 동정까지 시시콜콜 보도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진행할 수사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수사내용과 피의사실이 쏟아지면 곧바로 받아쓸 태세다. 국민의 알 권리인지 모르지만, 지나치고 치우친 면이 있다. 자칫 '검찰공화국 기관지'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수사·기소기관 인사가 이토록 뉴스거리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검찰이 우리 사회에서 직분 이상의 지위를 누리면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방증이다. 언론이 검찰 수사를 홍보하고 중계하는 데 열중하고 감시와 비판에 소홀하면 검언유착 논쟁이 재연될 것이다.

한동훈의 신기록
 

5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위해 대기해 있다. ⓒ 연합뉴스


소통령으로 불리는 한 장관은 사실상 검찰총장을 겸한다. 장기간 총장 자리를 비워둔 채 세 차례나 인사를 단행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함으로써 민정수석 권한까지 거머쥐었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의 검찰 재직 중 언행을 돌이켜 보면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윤로남불'에 이어 '한로남불'이라 할 만하다. 과거 검찰개혁에 저항한 검사들은 인사권 독립이야말로 진정한 검찰개혁이라고 강변했다. 일부 보수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윤석열 정부의 검찰 인사는 참사 수준 아닌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지독한 검찰주의자다. 검찰이 정의와 공정의 수호신이고,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똑똑한 검사 출신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건 당연하다. 이는 서울대 출신 중용과 더불어 윤석열 정부의 인사 편향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른바 엘리트주의다. 검찰 내부 인사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검사가 승진과 보직에서 우대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엘리트주의는 뒤집어 말하면 차별주의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부(富)와 학벌이 빚은 불공정한 능력주의와 통한다(<공정하다는 착각>). 거기에 권력자와의 사적 인연까지 작용하면, 실력을 떠나 기회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검사 50여 명의 줄사표는 그런 맥락으로도 읽힌다. 3년 전 윤석열 총장이 취임했을 때도 비슷한 인사 파동이 있었다.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요직을 독차지한 후 70여 명이 옷을 벗었다.

국민 절반이 검찰총장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그가 검찰이라는 엘리트 집단의 우두머리를 지내서가 아니다. 정의와 공정의 화신이라고 믿어서도 아니다. 그저 민주당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정권과 맞장 떴다는 이유로 그를 단죄 적임자로 여긴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검찰공화국을 세워달라고 요청한 국민은 없다. 검찰패밀리라는 특권층이 엘리트 행세하면서 국정 전면에 나서는 걸 반길 국민이 얼마나 될까?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인 통치론을 내세웠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는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 세 계급으로 구성된다. 수호자는 통치자를 보조하는 집단이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수호자의 자질로 지혜와 기백과 용맹을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수호자를 '혈통 좋은' 개에 비유한 점이다. 그 개는 친숙한 사람에게는 온순하지만 낯선 사람에게는 사납다. 검찰이 윤석열 정부의 수호자를 자임한다면 국가적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의 유착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정치보복 논란의 중심에 서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핵심은 과도한 권한의 분산이다. 그 점에서 수사‧기소 분리를 목표로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려 한 민주당의 전략은 옳았다. 다만 당리당략이 앞선 전술이 문제였다.

민주당의 검찰 공포증
 

지난 4월 26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의장실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파행 위기에 따른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주재한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박 의장,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 공동취재사진


대선에 도움 안 된다며 진작 발의된 법안을 한쪽으로 밀쳐놓았다가 정권 넘어가기 전에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혼란이 빚어지고 불필요한 비난을 자초했다. '국회의장 중재안'이라는 복병을 만나 우왕좌왕하고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듯이 법안 내용을 몇 번이나 바꾸는 모습은 신뢰성에 흠집을 냈다. 그러다 보니 법안 취지가 퇴색하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반쪽짜리 법안이 탄생했다.

당내 의견 수렴 과정에서 대놓고 검찰 공포증을 드러낸 것도 자충수였다.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지 않으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선후보가 보복수사를 당할 것처럼,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의 배지가 떼일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한 것은 검찰개혁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명분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방탄용이라고? 좋다. 이재명, 문재인의 중대한 불법 행위나 우리 당 의원들의 범죄가 발견되면 얼마든지 수사하라. 그와 상관없이 우리는 검찰개혁을 추진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니까"라고 말이다.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여론전에서 밀린 데 대해 민주당은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만 반성과 원칙은 별개다. 검찰개혁 회의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선진 형사사법체계 구축과 민생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면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이는 민주당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검수완박'이라는 이치에 맞지도 않는 용어를 남발하면서 그것이 지방선거 패배의 주요 원인인 것처럼 떠드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기회주의적인 행태다. 검찰개혁의 역사적 당위성과 제도적 효용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게 몰지각한 발언을 할 수 없다.

지방선거에 졌다고 해서 당론으로 채택해 밀어붙인 일을 비난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그런 점에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개인적 불명예를 무릅쓰고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의 복당 문제를 여론에만 내맡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뒤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우리만이라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름답지만, 공허하거나 무기력하다. 대안도 없이 반성만 내세우는 것은 '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저급한 논쟁과 볼썽사나운 권력 다툼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철 지난 금언을 떠올리게 한다. 전투 중 내부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피아를 구별하고 경중과 우선순위를 가려야 한다. 그 점에서는 국민의힘이 유능해 보인다.

'검로남불' 시대에 필요한 것
 

행정안전부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권한이 커질 경찰을 여러 방면으로 통제하기 위한 조직을 설치하는 방안이 가시화되면서 경찰 일선에서 독립성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6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동하는 경찰들 모습. ⓒ 연합뉴스


머잖아 정치권 사정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될 것이다. 검찰은 세 차례 인사로 출격 준비를 마쳤다. 요직에 배치된 특수·공안통 검사들은 마치 항공모함 갑판에 늘어선 전투기들 같다. 보복수사로 비칠 수 있겠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전 정부에서 비슷한 수사를 지휘했던 사람이 대통령이고 장관이니 말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친검언론이라는 든든한 우군도 있고.

대통령 측근이 장관으로 앉은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도 예사롭지 않다. 9월이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축소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시행된다. 검찰이 우선권을 가진 6대 범죄 수사권 중 부패와 경제, 선거를 뺀 나머지 분야, 즉 공직과 방위산업, 대형참사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다. 다만 선거 범죄는 예외적으로 연말까지만 검찰이 수사한다. 경찰 역할이 실질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은 이에 대비한 포석인 셈이다.

검찰은 그 기간에 최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려 들 것이다. 대통령령과 법무부령 등으로 개정법 취지를 희석하고 실효성을 떨어뜨리면서 9월 초까지 수사 화력을 집중하고, 연말까지 허용된 선거 수사를 한껏 활용할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 의석수가 줄어들 개연성이 크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는 거대 야당의 몸집을 쪼그라뜨려 2024년 총선 때 입법 주도권을 쥐려는 집권여당의 전략에 이바지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검찰천하요, '검로남불' 시대다. 민주시민은 검찰이 어떤 수사는 표범처럼 달려들고 어떤 수사는 뭉그적거리는지 지켜보고 있다. 눈 밝은 국민은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와 검언유착이, 그리고 검찰의 유별난 조직이기주의와 제 식구 감싸기가 정의와 공정의 개념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잘 안다.

거대 야당이 할 일은 검찰정권의 폭주를 막음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새 정부 발목 잡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반대할 건 반대하더라도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 다 나라와 국민 잘되자고 하는 싸움 아니겠는가? 민생전선은 드넓고, 국회가 할 일은 많다. 검찰개혁 완성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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