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7 05:38최종 업데이트 22.06.27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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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자료사진 ⓒ 픽사베이


53세 주부 권아무개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로 빌딩 바닥 청소를 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가슴 부위에 통증을 느꼈다. 권씨는 평소 고된 집안일로 허리와 어깨도 늘 쑤시고 아팠기 때문에 평시에도 자주 인근 한의원에 가서 침구(針灸) 치료를 받았다.

이번에 발생한 흉통 역시 담(痰)이 들어서 생긴 일시적인 근육통이라고 생각하고 단골 한의원에 갔는데, 담당 한의사가 진찰을 하더니 아무래도 갈비뼈(늑골) 골절로 의심되니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나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어서 확인해 볼 것을 권했다.


이에 권씨는 서둘러 정형외과를 방문하여 방사선 촬영을 하니 한의사의 예상대로 갈비뼈 골절이었다. 정형외과에선 갈비뼈 골절은 부상 부위의 특성상 깁스도 안 되기에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이후 다시 단골 한의원에서 골절 치료를 꾸준히 받았지만, 권씨는 몸은 아파 죽겠는데 괜히 이리저리 뺑뺑이를 돌면서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하고 돈은 돈대로 이중으로 날렸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단골 한의원에 처음부터 엑스레이나 CT가 구비되어 있었다면 시간과 돈을 이중으로 낭비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많다. 걷다가 넘어져 발목을 삐었다고 생각해 한의원에 침(鍼)을 맞으러 갔다가 한의사로부터 발목 골절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은 뒤, 정형외과에 가서 방사선학적 골절 진단을 받은 다음 다시 한의원으로 와서 병행 치료를 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요통이 심해 허리에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갔다가 척추 압박골절 의심 소견을 한의사에게 듣고, 정형외과에 가서 방사선학적으로 척추 압박골절 진단을 받은 다음 다시 한의원으로 와서 병행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나이가 젊은 분들이야 이 정도 돌아다니는 것을 감내할 수 있겠지만, 고령인 경우에는 그 중간 이동 과정에서 해당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국민의 기대

왜 한의원에서는 현대 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의료법' 및 '의료기기법' 등의 의료관계법률을 살펴보면 의사, 한의사 등 종별의료인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명시적 제한은 없다.

다만, 의료법 제2조(정의)를 보면 종별의료인의 임무가 명시되어 있고, 제27조(무면허의료행위)에서는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두 조항을 참조하여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는 행정해석이 내려져 있고 이 해석으로 인해 그 사용이 제한되는 것이다.

의료기기법 제2조(등급분류 및 지정에 관한 기준 등)를 살펴보면 의료기기의 등급분류 및 지정에 관한 기준과 절차를 정하고 있고, '의료기기법시행규칙'에서는 의료기기의 사용 목적과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의 정도에 따라 4개 등급으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한의사가 환자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의료기기 중에서 범용초음파영상진단장치의 경우 잠재적 위해성이 낮은 2등급 의료기기 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이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앞서 소개한 주부 권씨와 같은 불편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국민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2022년 5월 23일 대한한의사협회(회장 홍주의)에서 공개한 '한의사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84.8%가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될 경우 ▲ 의료비 부담 감소 ▲ 환자 시간 절약 ▲ 환자 만족도 제고 등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지 이용 전화면접 및 온라인 혼용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1.79%P였다).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의 세부를 보면, '한의사가 현대 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는 문항에서 '찬성한다'가 84.8%, '반대한다'는 13.5%로 집계됐다. '잘모름'은 1.6%다. 이는 지난 2017년에 실시한 동일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비해 찬성률이 9%P 높아진 것이었다.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 시 ▲ 의료비 부담 ▲ 시간 ▲ 환자 만족도'는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도 각각 약 80%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것(75.3%)',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79.7%)', '환자 만족도가 높아질 것(80.6%)'이라고 응답했다.

'한의사가 현대 진단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진단만을 위해 양방의료기관에 방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료비를 절감하고 중복 방문의 불편함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설문에도 83.9%가 '동의한다'를 선택했고,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전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문에도 84.1%가 '동의한다'를 선택했다.

즉, 대다수의 국민들은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이 환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의료서비스 발전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는 것이다.

규제 개혁을 넘어
 

자료사진 ⓒ 픽사베이

 
이미 한의과대학에서는 한의사가 현대 진단의료기기 활용을 위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의과대학에서는 해부학, 진단학, 영상의학, 방사선학 등의 교과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 진단의료기기의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과, 침구과, 부인과, 피부외과, 이비인후과, 신경정신과, 재활의학과 등의 관련 과목 교육에는 현대적 의료기기 실습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론과 실습을 통해 얻은 전문지식을 현장에서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하는 의사협회의 연구물(의대와 한의대의 통합을 통한 의료일원화 방안 연구, 2012.4)에서도 한의과대학에서 의과대학 커리큘럼의 약 67.2~86.7%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의사들에게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에 사용을 허용하면 위험하다는 의구심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한의사들이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에서 배제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은 법적으로도 점점 더 인정받는 추세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12월 한의사가 5종의 현대 진단의료기기(안압측정검사기, 자동시야측정검사기, 세극등검사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청력검사기)를 진료에 활용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2016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뇌파계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한의사에 대해 '의료기기의 용도나 작동 원리가 한의학적 원리와 접목되어 있는 경우 등 한의학의 범위 내에 있는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며 보건복지부에 행정처분(면허정지)을 취소할 것을 선고했다.

2020년 1월에는 검찰이 '체외충격파치료기와 CO2 레이저를 진료에 활용한 한의사의 행위는 적법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사용에 또 하나의 중요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체외충격파치료기를 진료에 활용한 한의사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한의사협회(양의사 단체)가 고발했었던 사건에 대해서, 대검찰청은 최종적으로 '혐의없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한의사가 영상진단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매우 보편적이다. 과거 한방병원에 중풍 환자가 많이 입원했던 시절에는 한의사가 X-ray(엑스레이), CT, MRI(자기공명영상) 필름을 보는 것은 한의사의 진료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참고 자료였다.

척추관절질환을 전문 진료하는 많은 한방병원에서 한의사가 MRI를 보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고, 추나요법 급여화로 인해 추나 진료가 대폭 증가하면서 한의사가 X-ray 등 영상 필름을 참고해서 진료하는 것은 매우 보편화되고 있다.

추나 급여의 행위 정의에서도 영상 필름의 진료 참고를 진료 과정에 명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한의사 국가고시 문제 출제에서도 영상진단 정보는 매우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인 영상진단 정보 활용은 과거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서도 충분히 확인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원하고 있고, 한의사들은 이미 교육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며, 법적·제도적 흐름도 시대와 상응해 점점 변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국민건강권 증진을 위해 초음파·엑스레이 등으로까지 보다 확대된 한의사의 현대 진단의료기기 전면적 사용에 대한 정부의 실천 의지이다. 윤석열 정부가 단순히 보건복지 분야 규제 개혁 차원을 넘어 'K-메디슨(Medicine)' 발전(한의학의 과학화·표준화·산업화·세계화)에 있어 역사적 발자취를 남기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칼럼니스트 황만기는 사회복지사(1급, 사회복지학석사)이자 한의사(한의학박사)이다. 서강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한림대학교 의과대학·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등에서 교수(겸임)와 강사로서 한의학을 꾸준히 강의했다. 보건복지부장관상·동의보감상·연세대학교 사회봉사상을 수상했으며, SCI 논문 4편, KCI 논문 7편 단행본(번역서 포함) 14권을 발표했다. 현재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이며, 서초아이누리한의원 대표원장이다. 최근(2022년 5월) 국내 최초 골절·골다공증 한의학 연구·치료 서적인 <현대과학적 논문 근거를 갖춘 골절 골다공증 비수술 한약 치료 이야기 : 특허한약 접골탕의 모든 것>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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