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0 18:52최종 업데이트 22.06.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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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광복 70주년을 앞둔 2015년 8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내 8호 감방 앞에서 헌화를 한 뒤 예를 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퇴임 5년 뒤인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를 향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참회했다. 18세 나이로 일본제국주의에 꺾인 한국인 유관순에게 꽃도 바쳤다. 한국인들을 울컥하게 할 만한 장면이었다.

그런 그의 소신을 담은 화상 인터뷰가 10일 밤 10시 30분 아리랑TV에서 방영된다. 아리랑TV 보도 자료에 담긴 그의 발언 내용은 평소의 언급과 다르지 않지만, 한일관계 해결을 위한 그의 최근 열정을 보여준다.


인터뷰 속 하토야마는 지금의 한·일 두 정권으로부터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지난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한일관계의 선생님이 되어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한 그는 윤 대통령을 '미래지향적인 지도자'로 평가하며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려 한다.

민주당(지금의 입헌민주당) 출신 총리였던 하토야마는 자민당 소속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대해서도 그런 시선을 보낸다. 인터뷰에서 그는 기시다 총리는 진보적 인물이라며 아베 신조나 스가 요시히데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양국 정부가 상호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건 없이 대화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시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를 접견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이어 그는 '1965년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배척한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노라며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아직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 부분을 일본 정부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국민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 태도도 문제 삼았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아베 신조 총리가 사과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아베 신조의 태도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사과하고 난 뒤에 "이 문제를 다시는 들먹이지 말라"는 태도를 보인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언급한다.
 
"이미 해결된 일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은 결코 물질적인 배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를 원하고 있다."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마음을 전달해야."
"가해자는 피해자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일본에선 매국노·역적 취급

이 같은 그의 소신 발언이 일본인들의 환영을 받을 리 없다. 그의 발언이 한국에서 주목받는 모습을 불편한 시각으로 전하는 일본 보도도 있다. 2019년 4월 3일자 <FNN 프라임> 기사인 '무릎 꿇고 사죄한 일본 전 총리...한국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양심적 일본인이란?(ひざまずいて謝罪した日本の元総理…韓国メディアに消費される"良心的日本人"とは?)' 역시 그런 유형에 속한다.

후지뉴스네트워크가 발행하는 이 매체는 "이 양심적 일본인이라는 것은 한국의 미디어가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한 역사문제 등에서 한국의 주장에 찬동하는 발언을 하거나 일본의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일본인을 가리킨다"고 정의한다.

그런 뒤 "한국 미디어로서는, 하토야마 씨는 양심적 일본인의 필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의 전 총리라는 직함을 지닌 하토야마 씨만큼 한국 여론에 설득력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토야마가 한국 언론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 보도다.

SNS에서는 이보다 훨씬 센 비판들이 나온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트윗 글을 올린 2019년 9월 3일에는 그를 매국노나 역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토야마의 트윗은 마루야마 호다카 중의원 의원이 '전쟁을 일으켜 독도를 되찾자'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 차원이었다. 전쟁을 벌이자는 주장을 비판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은 '전쟁을 막자'는 취지보다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부분에만 분노를 표출했다.

2020년에 <한일군사문화연구> 제29집에 실린 최장근 대구대 교수의 논문 '일본인들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사고 연구 - 하토야마 유키오 전 수상의 독도=한국영토론을 둘러싸고'에서 그런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우익 성향의 네티즌들은 "정말 수치스럽다. 이 녀석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좋았던 국무총리가 옛날에 있었지", "전 총리라는 사람이 왜 일본의 국익을 무시한 발언을 계속하는지?"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꼭 이웃으로 귀화해주세요"라며 한국 귀화를 권하는 댓글도 있었다.

그를 응원하는 댓글, "형편이 나쁜 데에는 귀를 막는 일본인", "역시 총리 경험자! 발언에 무게가 있습니다" 등도 있었지만 이런 댓글은 대세가 되지 못했다.

일본 미래 위한 빅픽처

하토야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민당 정권이 붕괴한 뒤 정권을 인수해 9개월간 총리로 재직했다. 그 뒤 민주당 정권인 나오토 내각 및 노다 내각을 거쳐 2012년 12월에 이르러 향후 8년간 계속될 제2기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이 등장했다.

하토야마가 퇴임 뒤에 위안부·강제징용·독도 등의 문제에서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일본제국주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나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에만 기초한 것은 아니다. 자민당과 극우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지금 상황에서 올해 77세인 그가 재기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는 일본을 살리기 위한 빅픽처가 있다.

그의 구상에 따르면, 솔직히 사죄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한다. 미국이 지금의 위상을 항구적으로 누릴 수는 없으므로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쇠락해가는 미국과 거리를 두고 동아시아 이웃들을 가까이 하는 한편 역사문제에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일본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가 2018년 10월 3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방문하여 위령각을 참배하고 원폭자료관과 평화의 집을 방문했다. ⓒ 합천군청

 
이는 자위대 군사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며 역사문제에 강고한 입장을 보이는 방법으로 일본의 미래를 보장받으려 하는 아베 신조의 접근법과는 정반대다.

2010년에 소에야 요시히데 게이오대학 교수는 한국 학술지인 <전략연구> 제17권 제2호에 기고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안보정책: 하토야마 유키오와 간 나오토 정부를 중심으로'에서 하토야마의 외교노선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에 집중 배치되어 있는 현실을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일본의 평화는 일본인들에 의해 건설되어야 한다. 대미 안보 의존은 향후 반세기 혹은 1세기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시대가 금방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언젠가 다가올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슬로건 구현을 위해 한국 및 중국과 더불어 동아시아를 창조해야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유관순 열사 앞에서 무릎 꿇고 "죄송하다"며 사죄하고, 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며, 한국 땅인 독도에 욕심내지 말자고 외치는 것은 위와 같이 그의 나라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자신에 대한 냉소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일본의 미래를 위해 소신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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