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9 12:29최종 업데이트 22.04.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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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 아무래도 주의력이 산만한 거 같아서 상담 선생님이 코스모스 교실에 좀 다녀야 할 것 같다고 하는데, 들어가는 걸로 한다?"

코스모스 교실은 셋째 준이 올해 들어간 공립 중학교가 마련한, 조금은 특별한 클래스이다. 보통 아이들보다 다른 느낌을 주는 학생들 몇몇을 모아 한 주에 몇 시간씩 별도 학습을 진행한다. 정규 교과 과정을 빼고 가야 하는 경우가 있어 반 아이들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따돌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당사자인 준은 물론 아내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준의 중학교 입학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과 부모들. ⓒ 박철현


'특별한' 아들

준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고집을 좀처럼 꺾지 않고, 주위 환경을 배려하지 않긴 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남의 이야기를 잘 안 듣는 성향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여전했다. 나는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뭐" 하며 별로 걱정하지 않았지만 24시간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아내는 고기능 자폐성 장애,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사회관계 형성 장애)을 의심했다. 인터넷에 나오는 아스퍼거 증후군 증상을 보면 확실히 준이 평소 보여주는 모습과 일치하는 항목들도 있었다. 하도 걱정하기에 작년에 시가 운영하는 기관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기관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아이큐 검사를 했다. 아이큐가 매우 높게 나왔는데, 항목별로 편차가 심했다. 준을 담당했던 이시카와 선생이 결과가 나온 날 우릴 불러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능력은 상당히 좋은데, 표현 및 어휘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물론 표현력 부분도 평균보단 높지만 계산능력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그걸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도 정 걱정되면 중학교에서 실시하는 특별교실에 다녀보는 건 어떨까 한다."

그가 말한 특별교실이 준이 들어간 중학교에선 코스모스 교실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시카와씨는 오피니언 리포트도 작성해 주었다. 한국적 관점에서 보자면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클래스를 추가로 다니는 것이니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는데, 상담소 선생은 물론 아내, 당사자인 준까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4월초 입학식을 마친 준은 지금 코스모스 교실을 아주 잘 다니고 있다. 나 혼자 내심 걱정했던 따돌림 문제도 없는 것 같다. 13명이 다니는 코스모스 교실에는 증상만 보자면 준보다 훨씬 심한 친구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와 준이 그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월감 등은 전혀 느낄 수 없고 다른 부모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특수학교나 장애인학교를 따로 만들거나, 혹은 그런 학교가 들어선다 하면 주민들이 반대집회를 하거나 님비현상이 생겨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

그 이유는 아마 유아기 교육환경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준이 나온 사립유치원 '어린이의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나머지 세 아이들이 다녔던 도쿄가쿠게이대학 부속 유치원은 정신적·물리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 정원이 따로 있었다. 매년 서너 명은 들어왔다. 즉 우리 아이들, 아니 이 유치원에 들어오는 모든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함께 3년간 생활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적 생각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다 같이 초등학교에 진학했고, 중학교도 같이 입학했다. 실제로 준과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보내고 중학교도 같이 입학한 이웃 아이는, 초등학교 때 '히키코모리' 증상으로 1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학교가 인정하는 통신교육을 잘 이수해 유급 없이 졸업했고 지금은 많이 나아져 매일 준과 함께 같이 등교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교육도시'라는 우리 도시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것일 수 있다. 실제 문부과학성의 통계를 보면 '따돌림'의 정의를 단발성의 욕설, 나쁜 단어, 외모 비하 등으로 확대시킨 2015년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초등학교를 보면 2015년 11만 8748건이었던 따돌림 인지 건수가 2019년 48만 4585건으로 네 배 이상 늘어났다.
 

따돌림의 학년별 인지 건수를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가 가장 많고 점점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문부과학성

 
눈에 보이는 따돌림 건수는 늘어났을 수 있지만, 절반 이상이 초등학교의 따돌림이고 이러한 따돌림 사례는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확연히 줄어든다. 중학교는 2015년 5만 5천여 건, 2019년 10만 6천여 건으로 집계됐고 고등학교는 1만 1천여 건(2015년)에서 1만 8천여 건(2019년)으로 나온다. 학년별 그래프를 보더라도 초등학교 저학년의 따돌림이 가장 많다가 고학년,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올라갈수록 대폭 감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따돌림을 해소하기 위한 학교 내 교육과 가정의 연계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초등학교에 진학해 거친 말을 쓰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그러한 행위가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알게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일본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교내 서클 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실시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따돌림이 예방되는 효과도 있다. 주 3일에서 5일 정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레 서클 활동을 통해 친구들, 선배들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의 학내 이지메(따돌림) 연도별 통계. 따돌림의 정의가 확대된 2014년부터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비대면 수업 등의 영향으로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 문부과학성

 
내 경우 큰 딸, 작은 딸, 그리고 이번 셋째 아들까지 같은 지역 공립 중학교에 갔고 각각 소프트볼부, 미술부, 국제이해부에 들어갔는데 동급생들이 혹시라도 따돌리는 낌새가 보이면 선배들이 나서서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동네 축제 및 이벤트 영향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최근 2년 동안은 치러지지 못했지만 2019년 이전에는 매년 갖가지 동네 축제가 열렸다. 학교에 상관없이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이므로 타 학교 학생들과 다양한 교류가 이뤄진다. 처음부터 아이들 위주로 진행되는 마쓰리(祭り)도 있기 때문에 대놓고 누군가를 따돌리기 힘들다.

정치의 본분, 시민의 상식

이런 류의 교육과 사회 분위기가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정착됐기 때문에 일본사회에선 장애인 이동권 문제 같은 걸로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으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셋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해, 한국으로 치자면 특수장애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스모스 교실'에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유년기 때부터 '장애/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길거리에 하반신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이나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우대받게끔 한다. 하루에 몇 사람 이용하지도 않는 시골의 무인 전철역이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고, 승강장에 점자 블록을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일본의 거리에선 몸이 매우 불편한 사람들, 이른바 중증의 장애인들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은 말할 것 없고 일반인도에도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통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도쿄 이리야 쇼와도오리 인근) ⓒ 박철현

 
최근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논의로 한국사회가 떠들썩했다. 차기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난하며 공개토론을 하자고 달려드는 행태도 저열하기 짝이 없었지만,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휠체어 체험을 하는 것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권의 당연한 의무라 생각했다면 굳이 그런 퍼포먼스는 필요 없었을 테니까. 정치의 본분, 시민의 상식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봤으면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오른쪽)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 출연해 일대일 토론을 앞두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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