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6 06:07최종 업데이트 22.01.0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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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해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4차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결정에 대해 '내가 바로 사각지대다'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민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소속 없이 글을 쓴 지 2년이 됐다. 그런데 어디다 직업을 쓸 때면 속으로 자문한다. '프리랜서 맞나?' 소득이 거의 없으니 그 말이 어색한 거다. '백수'라고 쓸 수는 없고, '작가'라고 쓰기도 어쩐지 부담스러워서 결국 선택은 프리랜서. 그런데 제도가 이런 내 마음을 꿰뚫었는지, 특고·프리랜서 대상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4차 신청 기간에는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 듯했다. 먼저 정해진 다섯 달 사이에 5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기에 계좌를 샅샅이 훑었다. '23만 원, 5만 원, 17만... 5만!' 글을 기고하고 편집디자인을 도와 받은 돈에, 작은 공모전에 얻어걸려 받은 원고료 5만 원이 얹히니 딱, 50만원.


아싸!!! 이건 하늘의 뜻이다. 나를 긍휼히 여기신 게지! 턱걸이로 걸려 놓고 좋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은 내가 용역을 제공한 기관에서 수당지급명세서나 용역계약서를 받으면 됐다.

그런데, 어떻게 얘기를 한다... 한두 번 일 얘기 나눈 게 전부인 사이에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꼴이다 보니 영 민망했지만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렸다. 공모전에 뽑힌 원고를 낭독하러 갔던 라디오방송국 PD님께 전화를 걸 때는 특히 의심스러웠다. '방송국이면 수당지급명세서에 누가 날인해 주려나? 5만 원 때문에 방송국을 뒤질 수도 없고.'

연락을 받은 분들은 담당자가 아님에도 적극 노력해 주셨다. 그런데 미안한 목소리로 전화가 되걸려왔다.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용역 방식이 전형적이지 않아서 서류 발급이 안 되는 거였다. 별 수 있나. 한 군데만 실패해도 증명 가능한 수입이 50만 원 아래로 내려가서 쉽게 게임 오버였다. 

사각지대의 사각지대,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니 비슷한 사연으로 지원을 못 받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부탁할 곳이 열 군데가 넘어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해당 기간 안에 50만 원도 벌지 못하는 극빈층은 정작 지원에서 소외되는 것에 실망하는 일도 허다했다. 나만은 아니구나. 잠시의 위안, 그리고 긴 한탄.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고 줄기차게 소외되는 사람들은 생계 유지가 아닌 '생명 부지'가 필요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코로나 유행 이후 예술인의 상황도 그렇다.

지난해 12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년 예술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전업 예술인의 비율은 55.1%이며 한 해 예술활동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는 전체 예술인의 41.3%였다. 3년 전의 28.8%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그러니까, 수입이 없어서 지원을 신청하는데, 증명할 수입이 없어서 지원을 못 받는다니. 이게 무슨 모순인가?
 

2021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 예술인의 예술활동 개인 수입 ⓒ 문화체육관광부


2011년 1월 월세방에서 숨진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최고은씨의 사례는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사망 상황에 대한 선정적 가십에 치우쳐 예술계에 만연한 임금 체불, 그가 앓던 지병 등 중복적 어려움이 잘 조명되지는 못했지만, 예술인의 생활고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2012년 일명 '최고은법'이란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이에 근거해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된 예술인을 대상으로 창작지원금, 생활안정자금(융자), 산재보험, 사회보험료와 의료비 지원 등의 사회보장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수년 간 투자금 문제로 작품 전시나 공연, 음반 출반 등에 실패한 경우 예술인 자격마저 잃기 때문이다. 가장 절실한 사람이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지원을 해 줄 수는 없으니 자격 심사는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대안을 마련해줄 필요는 있다. 그런 차원에서 자본금 부족으로 결과물을 내지 못할 때는 이를 소명해 예술인 자격을 연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면 어떨까.

다른 문제도 있다. 창작지원금 지원은 일회적이고 대상이 한정적이어서 도움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수입이 전혀 없어 보험료를 낼 수 없는 입장에서는 각종 사회보장 제도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한계다. 

그래서 나는 '예술인 기본소득' 정책을 환영한다. 일부에게 일회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소액이라도 모두에게 매달 지급한다면, 지속적으로 예술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고르게 지원할 수 있고 더불어 사회보장 제도로 보호받는 사람들도 늘 것이다.

예술인 기본소득, 특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추진한 '경기도 예술인창작수당 지급조례안'이 지난해 7월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술인 1인당 분기별로 지역 화폐 25만 원을 지급하고, 이후 매달 지역 화폐 10만 원을 지급하는 '예술인 기본소득' 형태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그 후 8월 내내 각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지지선언문이 이어졌다. 이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예술인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정책에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는 11월에도 웹툰 작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문화예술인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왜 예술인에게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을 특혜로 보는 것은 타당할까?
 

이재명 대통령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 이재명 열린캠프


여기서 우리 문화예술계가 해외 문학상과 영화제, 넷플릭스에서 얻은 성과를 근거로 드는 건 좀 진부할 것 같다. 예술은 국위선양과 산업 성장의 수단으로서만 가치 있지 않으니.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을 나눌 것 없이 우리가 만나온 음악, 그림, 시와 소설 등은 경험을 넘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된다. 예술은 우리 일상에 스며 있는 삶의 일부다. 우리는 생활에서 예술을 두루 누리고, 국제적 성과가 있을 때는 '국뽕'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혹시 결과물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쉽게 생각하며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예술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는 예술하기를 선택했을 뿐, 그 사회가 예술가가 살 만한 사회인가는 다른 문제다.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대입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먹고살기 힘든 분야가 있음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어떤 분야의 종사자라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게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걸을 수 있는 신발 하나

나도 선입견이 있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예술'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워낙 거창한 탓에, 인정받은 작품 몇 개는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렇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술인'으로 나를 소개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투입과 산출의 경제논리를 떠나기 힘든 이 사회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갈 내 자리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예술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겠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꽃길만 걸을 수는 없을 거다. 그래도 계속 걸을 수 있게 신발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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