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1 11:54최종 업데이트 21.12.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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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나는 가족과 스위스 취리히에 갔다. 그 여행의 주목적은 알프스가 제일 잘 보인다는 창문이 천장까지 이어진 베르니나(Bernina) 기차 타기였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 도착,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밀라노 성당(Duomo di Milano) 등 중세 문화를 둘러 본 후 기차로 취리히로 이동했다. 스위스 계획은 별도로 세우지 않았던지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취리히 국립 박물관(Landesmuseum Zurich)에 도착했다.

박물관 전면에는 "1917 혁명: 러시아와 스위스"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현수막을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그 해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임은 알고 있지만, 스위스가 저런 대규모로 러시아 혁명전을 기획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국립박물관(Landesmuseum Zurich) 전면에 걸린 '1917 혁명: 러시아와 스위스'라고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 ⓒ 권신영

 
별 뜻 없이 난 아이에게 물었다.

"왜 스위스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기념하지? 이상하지 않니?"
"엄마, 레닌이 러시아 혁명 전에 스위스에 있었어."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레닌을 아는 것도 의외인데, 1917년 레닌의 위치를 안다고?
"뭐?"  
"제정 러시아 탄압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스위스로 넘어와 활동했어."
"어디서 들었어?"
"학교에서 배웠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박물관에 들어갔다. 아이 말이 맞았다. 레닌은 1917년 4월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로, 배를 타고 스웨덴으로, 다시 기차를 타고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로 귀국하기까지 약 10년간 스위스에서 망명자 신분으로 체류했다. 유럽 역사학계가 깔끔하게 결론 내리지 못한 지점이지만 러시아 사회의 내부 동요를 원했던 독일이 고의적으로 길을 터주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레닌뿐 아니라 레닌의 동료이자 경쟁자인 트로츠키(Leon Trotsky), 러시아 여성 사회주의자, 그리고 이들의 유럽 사회주의자들과의 교류까지 상세히 볼 수 있었다.

1917년 혁명 전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주요 거점이 스위스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어떤 경로로 영국에서 중등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아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을까. 제대로 된 책가방을 메고 역사라는 과목으로 수업을 들은 건 고작 2년이 넘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뭘 배우는 거니. 

영국 중등 교육

영국은 초등 교육이 끝나면 5년 과정의 중등 교육(secondary education)으로 들어간다.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대략 한국의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1에 해당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중등 과정을 끝내고 A-level이라 불리는 2년 과정을 더 밟아야 한다.  

초등학교의 통합 교육이 영역 넘나들기였다면 중등 과정부터는 세분화된 교과목과 시간표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이가 가져온 시간표는 1주가 아닌 2주 단위로 짜여 있었다. A주와 B주로 나누고, ABABAB로 반복된다. 학과목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영어 I과 II, 수학, 생물, 화학, 물리, 역사, 지리, 라틴어, 불어, 컴퓨터, 체육, 종교(철학), 예술과 디자인, 음악, 디자인과 기술, 글로벌 스터디(Global studies)가 있었다.

초등학교의 통합 교육에서 15과목은 급작스러운 팽창이다. 학교는 첫 1-2년은 각 학문의 특성을 소개하고 기초를 다지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3년차로 올라갈 때 과목수는 다시 줄어든다. 학생들은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을 합쳐 9과목을 공부,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GCSE 시험을 마지막 5년차에 치른다. A-level에서는 학부 전공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이 있다는 전제하에 4과목만 선택, 난이도를 확 끌어 올려 학부 전공 기초 수준으로 배운다. 다시 한 번 시험을 치고 대학에 지원하게 된다(영국 대학은 3년이다).

중등학교 입학 후 시간표는 생겼지만, 아이는 여전히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사용하고 학생들도 볼 수 있는 책이 있는데, 너무 두껍고 전문적이라고 했다. 학교가 나누어준 과목별 폴더에 선생님들이 나눠주는 복사물을 날짜별로 차곡차곡 구멍을 내어 끼어 넣을 뿐이었다. 교과서 없는 교육에 익숙해진 터라 관심을 껐다.

1차대전에 1년 치 역사 교육 할애

"레닌이 러시아 혁명 전에 스위스에서 활동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역사 교육이 정말 궁금해졌다. 내가 생각한 중학교 역사 교육은 통사적인 방식, 다시 말하면 영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기별로 배우는 것이다. 통사적 시각으로 본다면, "1910년대 레닌의 스위스 거주"는 시기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아이 머리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역사 수업을 들은 기간을 고려할 때 20세기가 아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언저리를 배우고 있어야 했고, 공간적으로도 영국과 상관없는 스위스나 러시아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영국의 역사 교육은 주제별 접근이었다. 그 해의 주제는 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1차 대전 발발 배경으로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 제국주의와 국제 관계를 배웠다. 전쟁의 진행 방향을 각 전투별로 세세히 배웠고, 미국의 개입 과정 및 시민 사회의 반전 운동도 다루었다. 종전 후 독일에게 과도한 배상금을 요구, 결국 대공황 이후 1930년대 독일 사회를 극단화시키는 베르사유 체제까지 다뤘다. 베르사유 체제는 2차 대전 발발 배경으로 언급된다. 1917년 레닌의 귀국과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1차 대전의 맥락에서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 pixabay

 
아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영국 교육부 지침을 따른 것이다. 2014년 역사 교육 지침에 의하면, 역사 교육에서 영국 역사(British history)는 40퍼센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머지 60퍼센트는 어느 지역, 어느 시기의 역사도 상관없다는 의미이다. 첫 2년에 40%에 해당하는 영국 역사를 통사적으로 빠르게 배운 후, 아이 학교는 3년차부터는 나머지 60% 교육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60% 교육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심화 학습(depth study)으로, 예를 들면 1930년대처럼 기간으로는 짧으나 전환기, 정치 경제적 변동이 큰 시기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관계, 종교, 과학까지 영역별을 충분히 배우고 이들의 상관관계를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시대 학습(period study)으로, 50년 이상의 시기를 선택해서 역사적 흐름을 읽는 훈련이다. 마지막은 주제별 학습(thematic study)으로 장시간에 걸쳐 주제별 역사적 변화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가족 제도, 형벌의 역사, 지도의 역사, 학교의 역사, 도시 발달 등 비교적 변화가 느린 영역을 주제로 해서 몇 백 년에 걸친 추이를 살피는 방식이다.  

영국의 다른 학교들은 알 수 없지만, 1차 대전은 아이 학교가 선택한 심화 학습(depth study)의 하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기를 1년 동안 집중적으로 파고듦으로써 지역을 유럽 전체로 넓힌 후, 제국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등 서로 경쟁하는 20세기 정치 이념과 경제 체제들의 길항 관계를 입체적으로 배웠다.

애국심보다 시민성

1년 치 역사 수업을 제1차 대전에 할애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1차 대전이 그만큼 중요했다가 아니다.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영국이 자국의 통사 교육을 일정 정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사는 근대 국민국가 모델에 기초한 역사 인식이다. 한국의 국사 교육이 한 예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고려-조선-식민지-현대사까지 쫙 훑어 배운다. 풀어 말하면, 공간을 고정시키고 그 고정된 공간 내에서 시간적 추이를 따라 올라간다.   

통사적 역사 교육은 대단히 세련되게 사회 정체성을 형성시킨다. 무의식적으로 교과서가 다루는 공간은 나와 제도적 문화적 공감을 이루는 '우리'의 공간이 된다. '우리' 안에서 보이는 차이는 다양성 혹은 지역색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밖의 공간과 역사는 동양사, 서양사, 혹은 세계사로 불리며 외부에 놓이게 된다. 지식 역시 주어진 공간을 우선으로 축적된다. 통사적 접근을 택하는 한, 교과서가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보이지도 않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이 막강한 효과를 어느 사회가 포기할 수 있을까. 동시에 자신이 구성원으로 속한 사회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이 아닌 중등 교육 단계에서 통사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낮은 영국의 40%에 대한 답은 영국 역사 교육 지침서에 나타난다.
 

영국 역사 교육 지침서에는 "사려 깊고 적극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본인의 정체성과 살고 있는 세계의 중요한 측면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라고 나와있다. ⓒ pixabay

 
"사려 깊고 적극적인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본인의 정체성과 살고 있는 세계의 중요한 측면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떤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과 상이한 해석이 형성되는 이유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개발한다."
 
이에 따르면 영국 역사 교육의 주안점은 나라 사랑보다는 시민성에 있다. 여기에서 시민성이란 주어진 것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열려 있는 가치다. 주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 다양한 해석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고 각 개인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가 시민이다. 역사 교육은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시민의 탄생을 위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지적 엄격함을 견지하라

역사를 단순 암기가 아닌 열린 영역으로 접근할 때 아이 학교가 요구한 것은 지적 엄격함 (intellectual rigour)이었다. 이것은 숙제에서 드러났다. 그 해 숙제는 1차 대전과 관련해 자기주장을 하나 만들고 그 주장을 1차 사료로 뒷받침하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군대사(military history)를 택했다. 무기 기술이 1차 대전의 승패를 가르는데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을 세우고 19세기 말에 개발된 기관총(machine gun)과 20세기 초의 탱크에 집중, 기병대(cavalry)에서 참호 중심의 기관총 위주로 변화하는 군사 전략과 실제 적용된 전투 사례를 조사했다.

과제물 평가는 주장의 옳고 그름이 아닌, 학생들이 보여준 '지적 엄격함'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준은 1차 사료를 통해서 큰 역사적 개념(아이의 경우는 근대전)으로 접근해 들어가는가, 큰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했는가, 그리고 논리를 비약하지 않고 근거에 따라 탄탄히 쌓아올렸나 였다.

아이의 역사 교육을 보며 나는 영국 초등학교의 통합 교육과 중등 교육이 확장 관계에 있음을 알았다. 지적 자극은 지적 엄격함으로, 읽기를 통한 개인에 대한 탐구는 개인성에 기반한 시민성으로 팽창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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