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1 07:28최종 업데이트 21.06.0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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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 연합뉴스

 
"지난해 위기 속에서 세계 10위 경제 강국에 진입했고, 1인당 GDP에서 사상 처음으로 G7 국가를 제쳤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G7에 연속으로 초청되는 나라가 될 만큼 국가적 위상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두 문장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4주년 연설(2021년 5월 10일) 전문의 일부로 한국 내 G7의 권위를 보여준다. 현 경제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언급되니 말이다. 여기서 제쳤다는 국가는 이탈리아고 초청받은 회의란 영국 맨 남서쪽 콘월(Cornwall)에서 6월 11~13일 사흘간 열리는 제47회 G7 회의를 가리킨다.  


정치학자 치아라 올다니의 말을 빌리면, G7은 "산업화된 국가들 중 마음이 통할 것 같은 멤버를 자체적으로 뽑아 결성한 클럽(self-selected club)"이다. 마음이 통할 만한 가치란 자유·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번영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 추구로, 대체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중세에서 근대 사회로 전환한 서구 사회의 가치이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공식 회원 역시 전형적인 서구로 여겨지는 유럽의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와 북미의 미국·캐나다다. 결국 G7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서구 사회 기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뜻으로 한국은 여기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서구 사회란 무엇일까. 서쪽은 동쪽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방향이 기준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 형태의 지구에서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서'로 묶인 데는 대서양 중심의 공간 의식이 있다.

대서양 중심의 세계관

지도의 역사는 인간 공간 의식의 확장과 성장을 보여준다. 지금이야 인공위성으로 어느 외딴 마을의 가로수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어 그 의의가 많이 희석되었지만, 인간은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고 청동기 시대부터 고군분투했다.

지리학적 지식은 곧 권력이었다. 정치권력이 뻗치는 영토와 세금을 부과하는 토지와 경제 활동 공간을 표시한 지도는 통치에 필수적 도구였다. 지도에 담긴 지형에 대한 정보는 군사력에 버금가는 무기였으며, 항해에 있어서는 생사를 결정했다. 

객관적 정보가 일차적 요소지만, 지구를 평면화시키는 과정에서 주관성이 발생한다. 대륙을 자르지 않기 때문에 지구를 평면화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아래에 보다시피 대서양을 자른 태평양 중심의 지도와 태평양을 자른 대서양 중심의 지도가 있다.

한국은 태평양 중심의 지도(위)를, 유럽과 미국은 대서양 중심의 지도(아래)를 사용한다. 대륙의 배치는 꽤 의미심장하다. 양쪽 모두 자국 중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대외 관계의 범위, 문화권도 가늠할 수 있다.
   

태평양 중심의 세계지도 ⓒ 위키커먼스

대서양 중심의 세계지도 ⓒ 위키커먼스

 
어느 지도에서든 객관적 거리는 똑같다. 문제는 상대적인 공간 개념이 언어로 표현될 때 발생하는 지적 헤게모니다. 동경과 서경, 서구(the west), 극동(Far East)과 같은 어휘가 그 예로, 이들은 19세기 근대 지리학을 주도한 영국이 형성한 대서양 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태평양 중심의 지도에서 보면, 한국이 굳이 극동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영국과 유럽이 극서 (Far west)가 되는 것이 옳다. 또 태평양 시각에서는 서쪽의 유럽과 동쪽의 미국을 서구로 같이 묶기가 곤란하다. 한국과 아시아는 19-20세기 초 지식 헤게모니에서 밀렸기 때문에 태평양 중심의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서양 중심의 지리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동-서의 기준

현재 동-서 구분의 국제적 기준은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로, 이 과정의 숨은 공신은 철도다. 산업 혁명 이후 석탄 및 광물을 신속히 운반할 기술 개발 노력 끝에 영국은 1804년 증기 기관차를 개발해 19세기 주요 산업 도시들을 철도로 잇기 시작한다.

영국의 증기 기관차와 철도 기술은 1830년대 미국·프랑스·독일 등으로 수출된다. 영국은 1850년대부터 식민지인 인도·이집트·남아프리카에도 철도를 부설해 식민지 사회로 좀 더 깊이 침투했다. 철도로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 극복한 19세기 후반에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인적 물적 교류가 수월해지고 우편과 체신 산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철도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지역 간 시간차였다. 당시 각 지역들은 고유의 시간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가령 런던·맨체스터·버밍햄의 시간은 몇 분 혹은 몇 십분 간격으로 달랐다. 이것은 기차의 출발·도착 시간 표시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결국 영국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시간 개념을 도입해 런던과 중서부 도시 간 철도 노선 시간표를 1840년에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철도 시간표지만, 사실은 지역 시간(local time)에서 전국적으로 통일된 시간(national time)으로의 전환이라는 의의가 있다.
 

1852년도에 제작된 그리니치 표준시 ⓒ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

 
당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인 영국은 국내 시간 통합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의 시간을 표준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의 핵심 인물이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소속 왕립 천문학자 조지 비덜 에어리(George Biddell Airy, 1801-1892)다. 1835년부터 그리니치에 재직한 에어리는 기존 자오선(천구의 두 극과 천정을 지나 적도와 수직으로 만나는 큰 원, 시각의 기준)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1851년 그리니치 자오선을 발표했다. 미국과 영국 식민지들이 에어리의 그리니치 자오선를 사용하면서 이후 항해 및 각종 지도 제작에 이용되었다.

항해 무역과 전신 전보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19세기 후반 나라별로 존재하는 자오선이 혼란을 일으켰고, 표준화된 국제 기준을 원했던 미국은 1884년 워싱턴 D.C 에서 국제 자오선 회의를 개최했다. 세계 26개국이 참가해 그리니치 자오선을 전 세계 시간 체계의 기준으로 정했다. 파리 자오선을 사용하던 프랑스가 중립성을 문제 삼으며 유보 입장을 보였지만, 프랑스도 1911년에 받아들인다.

G7의 이면

19세기 영국의 지식·권력·자본이 만들어낸 대서양 중심의 동-서 개념은 한국에 수용되지만, 시대적 가치에 따라 함의하는 바는 바뀌었다. 19세기 말까지 서구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처음 청나라를 통해 소개되는 서구 문물은 그저 낯설고 새로운 것이었지만, 서학(천주교)의 평등사상이 신분제 질서를 기반으로 한 성리학과 충돌하면서 천주교 박해나 쇄국 정책 등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주의가 팽배했던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동-서는 전통(구)과 근대(신)를 의미했다. 서양과자, 단발, 서양식 교육, 유럽식 주택, 핵가족, 육아 등 대중 소비문화와 모더니즘이 유행했다. 전통적 젠더 질서와 부딪친 신여성과 자유연애는 사회적 논란을 빚기도 했다. 

서구 근대 문물의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공황 이후인 1930년대부터 2차 대전이 끝나는 1945년 사이 동-서는 각각 공동체주의와 개인 이기주의를 상징했다. 이 담론을 주도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로 개인의 권리를 기반으로 한 서구 법질서를 아시아와 맞지 않는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일제는 그 대안으로 가족 공동체주의를 외치며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과 도덕적 국가를 이상화했다. 경제적으로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통제 경제를 주장하며 서구와 맞설 수 있는 대동아 공영권을 구상했다. 공영권의 지도자로 일본 자신을 설정한 후 조선과 대만에서 황국 신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해방 후 동-서 관계는 후진국과 선진국의 관계로 전환된다. 1950년대 서구 사회는 소비에트와 동유럽의 사회주의화 속에서도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사적 소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사회로 그려졌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안정적 실행과 서구식 경제 발전을 목표로 세운다.

1970년대는 여기에 하나 더 보태진다. 동-서를 정신과 물질로 구분해 한국의 전통적 가치, 특히 효와 충에 기반을 두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경제적으로는 더 강화된 국가 중심의 경제 발전 논리, 정치적으로는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인 유신 체제로 귀결된다.

이후 1990년대 민주화, IMF 금융위기, 국제화를 거치며 서구의 제도는 '발달된' 혹은 '합리적' 국제 기준으로서 환기되고 주요 참고 자료로 인용되었다. 2021년의 'G7을 제쳤다'와 'G7 연속 초대'에서 보이는 G7의 권위는 이 흐름 위에 있다. 

결론적으로 G7의 권위는 동-서 관계 해석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영국의 비영리 환경단체인 워터에이드(WaterAid) 회원들이 25일(현지시간) 런던 타워브리지 앞 포터스 필즈 공원에 3.5m 높이의 모래시계를 설치하고 있다. 이 모래시계는 내달 11~13일 런던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물 부족을 초래하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설치됐다. 2021.5.25 ⓒ 연합뉴스

 
상대성을 인정했을 때 한국은 G7이 현재 불평등과 환경 문제에 지대한 책임이 있음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매년 회의장 근처에서 대규모 반 G7시위가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위대는 G7이 지난 수십 년간 남미와 아프리카의 자원을 이용해 환경을 희생시켜 자국 이익을 극대화했고, 불평등을 악화하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해 왔다고 비판한다. 다행히 올해는 환경, 코로나 백신, 다국적 기업 세금 등이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초청국까지 합치면 세계 경제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이 어떤 합의를 도출해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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