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8 18:48최종 업데이트 21.01.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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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 워싱턴 EPA=연합뉴스

 
"우리 버몬트에선 옷을 입을 때 어떡하면 추위를 막을까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버몬트 사람들은 패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그냥 따뜻하게 입을 뿐이지요,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미국 46대 대통령 취임식의 의미를 듣기 위해 CBS 앵커와 연결된 버니 샌더스는 인터뷰 마지막에 취임식장에서 입었던 자신의 복장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두터운 회색 외투와 검은 정장 바지, 낡은 갈색 구두 그리고 큰 코바늘로 떴음직한 커다란 장갑과 파란 덴탈 마스크가 취임식이 시작된 아침부터 누리꾼 사이에 화제였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한 답변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던 앵커는 마지막 샌더스 의원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아 그런 거였군요.... 미션 어컴플리쉬드(Mission Accomplished, 임무 완수)!"

하루 종일 미국인들이 얘기하던 그의 패션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는 소리다.

수십만 개의 밈이 된 버니 

"좋든 싫든, 취임식은 정치 이벤트의 오스카 레드 카펫이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옷을 주목하고 그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버즈피드 뉴스는 '그런 이유' 때문에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버니 샌더스의 '할아버지 패션'이 더 주목받았다고 얘기한다. 레이디 가가의 붉은색 드레스도 아름다웠고 카멀라 해리스의 보라색 코트도 멋졌지만,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투박한 샌더스 의원의 모습이 TV를 보고 있던 수십만 미국인들에게 밈(Meme, 우리말로 하면 '짤')을 만들게 했다고. 

"버니가 낀 장갑은 버몬트 에식스 지역 교사 젠 엘리스가 만든 겁니다. 그녀는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그가 탈락한 것을 보고 뜨개질을 시작했다고 해요. 스웨터를 풀어 만든 재활용 아크릴 털실로 말이죠."

누군가 그의 소지품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풀어놓으면 금세 수십만 명이 그 내용을 퍼갔다. 덕분에 뜨개질의 주인공도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섰다. 샌더스 의원이 자신의 선물을 애용하고 있어 너무 기뻤다고 말한 그녀는 지금은 너무 바빠서 더는 뜰 수 없다고 인터뷰했다. 
 

버니 샌더스 밈 현상을 다루는 뉴스 ⓒ 글로벌 뉴스 화면캡처

 
샌더스 의원이 옆구리에 끼고 온 노란색 서류 봉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왈가불가했다.

"버니는 우체국에 가려던 중이었던 것 같지?" 
"아냐, 그 속엔 우리 미국인들에게 나눠줄 재난 지원금 법안이 들어 있을 거야."
"그린 뉴딜에 관한 법안이 분명해. 대통령 취임 첫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전달하려고 갖고 온 거야."

문제의 봉투 속엔 취임식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희망을 이 백발의 상원의원에게 이입하며 즐거워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트래비스 앤드루 기자는 의사당 계단 의자에 혼자 팔을 포개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샌더스 의원의 모습을 이번 취임식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중 하나라 기록했다. 프랑스 언론사 기자가 찍은 이 사진으로 샌더스 의원은 취임식 다음날 아침까지 트위터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 인기를 자랑했다. SNS 속에선 새 대통령이나 유명 가수보다 더 핫한 '트렌드'가 된 것. 

사람들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그림에 그의 사진을 끼워넣었고, 무하마드 알리가 KO를 빼앗은 링 위에도 올려놨다. 명화 '최후의 만찬', 미국 드라마 '프렌즈'와 '섹스 앤 더 시티'에도 그의 짤을 삽입하고 즐거워했다.
 

250m가 넘는 맨해튼 고층 빌딩 난간의 아슬아슬한 휴식 순간을 담은 '마천루에서의 점심'이란 사진 속의 버니 샌더스는 브루클린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답게 100년 전 건설 노동자들과 감쪽같이 어울렸다. ⓒ 트위터 @EugeneGlukh

 
250m가 넘는 맨해튼 고층 빌딩 난간의 아슬아슬한 휴식 순간을 담은 '마천루에서의 점심'이란 사진 속의 그는 브루클린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답게 100년 전 건설 노동자들과 감쪽같이 어울렸다. 자신이 사는 곳의 주소를 넣으면 버니가 집 앞에 앉아 있는 앱이 만들어졌고, 어느 금손(재주 많은 사람)이 뜨개질로 만든 인형이 경매 사이트에서 금액을 경신중이다. 지역 방송의 뉴스 기상 캐스터는 일주일 예보를 하며 완전무장 버니를 가장 추운 날 표시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인기는 공식 사이트에서 판매한 버니 밈 티셔츠를 동나게 했다. 개당 45달러로 순식간에 매진된 이 티셔츠 판매로 사이트는 며칠 만에 200만 달러를 모았다. 수익금 전액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과 독거 노인에게 식사를 배달하는 곳(Meals on Wheels)에 기부하겠다고 샌더스 의원은 말했다. 

"굉장히 재밌는 일이 엄청 좋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평소 차림으로 취임식 구석에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이었던 그는 이런 열풍이 쑥스러운 듯 껄껄 웃으며 즐거워했다. 
 

경매사이트 ebay에 올라온 버니 인형. $20,300에 낙찰됐다. 인형 수익금도 자선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 이베이캡처

 
젊은이들에게 영감 주는 여든 노인 

작년엔 코로나19 때문에 기회가 없었지만 2016년 대선 경선 때 나는 여러 번 버니 샌더스 유세를 직접 봤다. 2016년 3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시작으로 내가 사는 뉴욕 인근에서 그의 연설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시간을 내 찾아가곤 했다. ( [관련기사] "조지 부시 찍은 내가 샌더스 지지하는 까닭은..." http://omn.kr/fumm )

오랜 내공에서 나온 감명 깊은 연설과 현장의 뜨거운 에너지,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였다. 1941년생이면 내 아버지보다 많은 나이였지만 그는 오랜 세월 단련된 쉽고 명료하고 깊이 있고 유쾌한 언어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상사 시큰둥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Z세대 10대, 20대 젊은이들을 뜨겁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This is Democracy. 이게 바로 민주주의야."

지역 한 주립대에서 질서 있게 버니 샌더스를 기다리던 젊은이들이 외치던 '민주주의' 구호를 들었을 때 난 좀 감동했다. 미국 땅 젊은이들에게서 광화문 촛불광장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1세기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연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엄혹한 60년대, 전쟁 반대와 흑인 인권을 외치다 경찰에 끌려가던 20대 청년이 머리 하얀 상원의원이 되어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연설의 아우라로 빛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전설을 보는 듯한 젊은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민주당의 샛별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의원은 당시 버니 샌더스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처럼 그들 중 상당수는 지방과 연방 의회를 비롯해 각자의 자리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탄탄한 기반이 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버니 샌더스는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민주당 주류가 지지한 조 바이든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러자 그는 기꺼이 트럼프 연임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쳤다. 그를 위해 유권자 집 대문을 두드리던 젊은이들은 조 바이든을 찍자는 캠페인에 동참했고, 결국 그를 46대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지금 민주당은 팬데믹으로 힘겨워하는 서민들을 위해 서둘러야 합니다. 대통령과 상·하원까지 민주당을 찍어준 유권자들을 실망시킨다면 2년 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주장할 겁니다. '것 봐, 민주당이 당신들을 실망시켰잖아.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를 찍어야 해!'라고요."

1월 24일 CNN에 출연한 버니 샌더스는 92년 클린턴과 2008년 오바마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2년 뒤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으로 돌아선 사례를 제시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에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마치고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 새 정부가 기대되는 이유 

버니 샌더스 덕에 유명해진 밈이란 말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단어라고 한다. 하지만 책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금의 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전파되는 정보나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하나의 놀이가 되고 현상이 되어버린 버니 샌더스 밈 속엔 일관된 그의 인생에 대한 존경과 두 번이나 낙선한 짠함, 그리고 기득권 세력이 아닌 젊은이들과 서민들의 편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런 기대가 바탕이 돼 27일부터 버니 샌더스는 미국 예산을 책임지는 상원 예산위원회 의장을 맡게 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극복을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공약한 구제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부양책 통과까지 몇 달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인은 고통받고 있고 정치가 그 고통에 적극적으로 화답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정부가 서민들의 고통 해결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믿음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예산위원장이 된 미국의 상원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조 바이든의 새 정부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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