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9 10:08최종 업데이트 20.12.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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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2020년 6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시선거 2차 투표에서 승리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지난 15일 너무 많은 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했다는 이유로 9만 유로의 벌금을 내게 되었다. 이달고 시장은 "파리시가 너무 많은 여성 고위공직자를 임명하여 9만 유로의 벌금을 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파리 시의회 연설을 통해 알리며 수표를 직접 들고 여성 부시장 및 여성 국장들과 함께 벌금을 내러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달고 시장은 2018년 여성 11명, 남성 6명 등 총 16명의 고위직 공직자 중 69%를 여성으로 임명했다. 2012년 통과된 성평등 법은 인구 10만 이상의 지자체와 정부 고위 공직에 특정 성(性)을 60% 이상 임명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관료주의의 '매력'은 상황에 따른 분별력을 전혀 발휘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이 벌금은 물론 불합리하고, 불의하며,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우린 앞으로도 계속 여성들의 승진을 멈추지 않고 추진할 것이다. 프랑스는 성 평등이라는 이상에서 여전히 아주 많이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완전한 평등에 이르도록,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비율로 고용되고, 중요한 직책을 함께 맡을 수 있도록, 우리는 더욱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나는 평등을 향한 투쟁을 함께해가는 파리시의 공무원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다른 지자체들도 모두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


이달고 시장은 이렇게 호소하며 이번 벌금 사건을 예기치 않은 대대적인 성 평등 캠페인의 기회로 삼았고, 그의 발언은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성 평등, 공허한 슬로건에서 현실로

이달고 시장이 조소의 뉘앙스를 섞어 격앙된 어조로 연설했던 이유는 지나치게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여성에게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법의 취지를 정부가 지나치게 경직된 방식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직 사회의 저울은 남성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 중 여성의 비율은 장관 47%, 국장 27%, 팀장 35%로 여전히 평등을 말하기엔 아득한 상황이다.
   
더욱이 2019년 개정된 안에 따르면 전체 고위공직자 수가 특정 성(性) 60% 초과 금지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 신규 임명한 수가 이 규정을 어기더라도 벌금은 부과하지 않는다. 현재 파리시의 여성 고위 공직자 비율은 47%로 법이 규정하는 조화로운 상태에 있다. 그러나 소급 적용되지 않는 법의 특성상 파리시는 2018년에 어긴 사안에 대해 지금 벌금을 물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남성을 초과 임명했을 때에도 같은 벌금이 부과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2017년에만 18개 지자체와 6개 정부 부처가 '균형적 임명'이라는 이 법규를 준수하지 않아 각각 9만 유로의 벌금을 냈다. 이 중 두 군데를 제외한 모든 경우가 남성을 60% 이상으로 임명한 탓에 낸 벌금이다.

2012년 이 법안을 제출한 사람은 당시 사르코지 정부의 공직관리부 장관 프랑수아 소바데다. 남성이며 우파 정부에서 추진한 법안이라는 면에서 두 배로 놀랍다. 그는 "나는 객관적이고자 하지 않고 벌금 부과도 거부하겠다는 공무원들의 팔을 비틀어 버려야 했다"라며 이 법을 만들기 위해 완고하게 가부장적인 공직 사회와 싸웠던 자신의 모습을 회고한다.

그러나 이 법의 등장으로 공직사회에서의 성 평등이라는 공허한 슬로건이 구체적 현실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간부급 공직자 중 여성의 비율이 2013년 32%에서 4년 뒤 4% 포인트 오른 36%로 다소나마 상승했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부 고위공직자 중 여성의 비율은 36%, 지자체는 34%, 공공병원에서는 49% 등의 분포를 보인다.

이 같은 성 평등 규정은 공직자뿐 아니라 정당에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프랑스는 모든 정당에 여성과 남성 동수 후보를 낼 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을 부과한다. 그런데도 어떤 정당은 규칙을 지키기보다 벌금을 내는 편을 선호한다.

가장 많은 벌금을 낸 정당은 우파인 공화당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들은 178만 유로(약 24억 원)의 벌금을 냈다. 극좌로 분류되는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당'은 25만2517 유로(3억 4천만 원), 녹색당은 5만4626 유로(7300만 원)을 냈다. 총 17개 정당 가운데 이 법규를 어겨 벌금을 낸 정당은 모두 6개. 집권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과 사회당, 공산당, 극우정당 RN 등 11개 정당은 이 원칙을 준수했다.

벌금뿐 아니라 정당 지원금 삭감이라는 불이익도 있다. 성평등 법에 따르면 남녀 후보의 수 차이가 전체 후보 숫자의 2%를 넘으면 정당 지원금은 남녀 후보 숫자 차이의 3/4만큼 줄어든다. 

이토록 강력한 규정에도 여전히 불평등의 관성을 버리지 못하는 정당들이 있는 까닭에 2019년에 당시 성평등 정무차관이던 마를렌 시아파는 벌금을 5배로 늘일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연합뉴스

 
마크롱의 대척점에 선 파리 시장

코로나19 외 다른 소식이 특종이 되는 일이 드문 요즘, 파리시가 물게 된 벌금에 쏠린 언론의 관심은 안 이달고라는 인물의 인기와 그녀에게 집중되는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이달고 시장이 파리시에서 연설한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 기사 밑에는 그녀가 2022년 대선에 출마할지 점치는 기사들이 따라다녔다.

마크롱 대통령이 11월 초 2차 이동 통제령을 결정할 때 이달고 시장은 이 같은 결정이 아마존 같은 대규모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의 승리로 끝나지 않게 골목 상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자며 아마존 보이콧 캠페인을 제시했다. 특히 서점들이 새로운 봉쇄령으로 완전히 문을 닫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자며 수도권 지역의 지자체장들에게 연대할 것을 촉구하며 서점이 문을 열 수 있게 하는데 앞장 섰다.

그녀의 이같은 목소리는 시민들에게 작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반 아마존 운동이 코로나19 시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시민 저항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달고 시장은 정부를 향한 전면적 불복종은 아니지만 파리 시민들의 저항 DNA가 작동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화두를 던져왔다.

특히 법을 위반해 벌금을 물게 된 지자체장이 그것을 성 평등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는 캠페인으로 바꿔버리는 모습은 그의 돌파력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했다.

지난 6월 지자체장 선거에서 가볍게 재선에 성공하면서 안정적인 정치력을 확보한 안 이달고 시장은 "내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달며 "내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일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파리시장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말해왔던 이전의 태도에서 확연히 달라진 이달고 시장의 태도에 언론은 크게 흥분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각) 마크롱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SNS에선 이를 기쁜 소식으로 반기는 프랑스 누리꾼들의 반응이 넘쳐났다. 난세 속에서 성큼성큼 정치적 키를 키워가는 이달고 시장을 향해 프랑스인들이 보내는 시선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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