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1 11:59최종 업데이트 20.12.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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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대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스물세 살에 교사가 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적어도 신규 교사 시절까지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어린 나이에 교사가 되었으니, 부자는 아니어도 생활고에 시달릴 일은 없었다. 어디 가서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고, 개인적 성취의 일환으로서 교사라는 직함이 썩 좋았다.

내 관심은 우리 반 아이들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를 향했다. 여러 교과를 가르치는 초등 교육의 특성상 음악, 미술, 컴퓨터 할 것 없이 다양한 분야의 연수를 국가 비용으로 들을 수 있었다. "돈을 받아가며 교양을 쌓다니, 신의 직장이 바로 여기로군!" 그렇게 약간 들뜬 기분으로 삼사 년을 보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나는 한국 교육의 수혜자였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 이준수

 
급식 먹는 횟수가 늘고, 내가 작성한 통지표가 쌓여가는 사이 차츰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해서 학교 밥을 엄청나게 들이삼키는 친구, 엄마가 걸핏하면 집을 나가서 도저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친구, 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할머니의 폐지 손수레가 부끄러워서 하굣길을 돌아가는 친구.

교직 오년 차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덜떨어진 교사라는 걸 자각했다. 정해진 길을 무난하게 밟아,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나는 한국 교육의 수혜자였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주거 환경이 안 좋거나, 힘든 아이들이 많은 학교를 전전했다. 수능에 관심이 없고, 표면적 관심은 있을지 몰라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대비를 해야 하는지, 실질적으로 자녀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 학부모와 만났다. 수능은 둘째치더라도, 어떻게 해야 아이가 행복한지, 가정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부모뻘 되는 학부모가 애송이 선생인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라고 별 수 있나. 수능 고득점이 지상 최대 과제인 줄 알고 살았던 범생이에 불과한데. 가벼운 위로와 공감의 말로 학부모를 돌려보내고서, 얼굴이 화끈거려 터질 것 같았다. 교육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프로답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등과 어깨를 짓눌렀다.

무능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그간 학생과 학부모의 어려움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는 직업윤리적 부끄러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만일 그때 <삶을 위한 수업> 같은 책을 읽고 고민했다면 조금 더 나은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을까. 

덴마크 교사들의 삶을 위한 수업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교육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감히 교육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시스템을 바꾸는 건 거대한 작업이고, 몹시 번거롭다. 시스템에 순응하여 보통의 삶을 꾸려나가기도 버거운 세상에서 흐름에 반하는 사람은 역풍을 맞는다.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의심받고 손가락질당한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온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씩 움직이게 된다. 지금 한국 교육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처럼.

<삶을 위한 수업>은 행복을 위한 움직임이 잘 구현된 국가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덴마크 저널리스트이며 작가인 마르쿠스 베른센이 쓰고, 오연호 오마이뉴스 기자가 옮겼다. 나는 예전에 오연호 기자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읽은 적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런 사회가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부러워서 그렇기도 했다. 마지막 챕터를 읽고 나서는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출세나 경제적 성공 말고도 다른 삶의 양식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건 안개처럼 희미하고 불확실한 희망이 아니라, 크기가 작을지언정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희망이었다. <삶을 위한 수업>에서도 비슷한 감각이 이어졌다. 

<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다양한 사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나는 동종업계 종사자라 문장이 뼈로 와 닿았다. 교육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다음의 문장에 동의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공감하며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만큼 간결하고 솔직하며, 실체적 진실에 기반한 글이다.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부를 잘하는 소수의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나머지 다수는 뒤처진다. (중략)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능력 밖에 있다. 결국 지쳐 절망하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16-17쪽)

학교에서 지치고 힘들어, 마음에 멍이 든 채 귀가한 나는 책을 읽다 말고 눈물이 핑 돌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하루도 걸리지 않는 덴마크에서는 아이와 학부모와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수학도 즐거울 수 있다, 시험과 점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춤춰라, 세계시민으로 산다는 것, 민주주의를 게임으로 배우자, 학교는 삶을 위한 공간이다.' 이런 메시지를 가운데에 두고 각양각색의 교사들이 소신껏 수업한다.

교육행정기관과 지역사회는 그런 선생님을 믿고 지원한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상생 풍경이었다. 교직에 몸 담은 지난 십여 년 동안 냉소와 좌절에 익숙해진 나는 그저 얼떨떨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의 열쇠가 학교라니, 이 무슨 역설적이고 기만적인 말인가. 

학교는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
 

이미 방법은 알고 있고, 수십 년간 쌓아온 현장의 데이터가 있다. 이제는 교육 혁신을 실천하는 교사들을 지원하고, 경험을 나누면 된다.?사진은 코로나로 텅 빈 교실. ⓒ 이준수


같은 편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며 수업 혁신과 학급 운영 개선에 삶을 바치는 선생님이 정말로 많이 있다. 이 사람들이 없으면 학교는 돌아가지 않는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렇지, <삶의 위한 수업>에 나오는 선생님만큼이나 개성과 강점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격려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대학 입시와 같은 의미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표준화 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리려면 문제풀이와 유형 분석을 주요 활동으로 한 주입 반복 수업이 효과적이다. 만일 어떤 선생님이 대입에 유리해 보이지 않는 수업을 할 기미가 보이면 특이한 교사, 개똥철학으로 애들 상대 야매 실험하는 선생, 위험한 담임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모두들 겉으로는 행복 교육, 인성 교육 강화를 외치지만, 일상의 학교 풍토에서 삶의 이해도를 높이고 행복을 탐구하는 수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삶을 위한 수업> 4장에 민주주의를 보드게임으로 가르치는 교사 킴 륀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덴마크 학교가 정말 잘하고 있는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로 협력을 잘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초중등학교에서 9년을 보낸 우리 학생들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일을 매우 잘합니다. (107쪽)

결국 한국의 학교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 학력을 높인다고 하면 남보다 더 잘해서, 앞장설 수 있게,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결과는 의사 파업 사태에서 보듯, 능력주의 맹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배운다는 건 일류 대학에 입학하거나, 고소득 일자리를 얻기 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행위다. 나는 학교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도움을 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미 방법은 알고 있고, 수십 년간 쌓아온 현장의 데이터가 있다. 이제는 교육 혁신을 실천하는 교사들을 지원하고, 경험을 나누면 된다. 

<삶을 위한 수업>을 누구보다도 학교 선생님이 읽으면 좋겠다. 한 번 읽으면, "와 덴마크 사람들은 저렇게도 사는구나" 싶고, 두 번 읽으면 "저거 사실 옆 반 선생님이 하는 거잖아" 하는 게 보인다. 부작용도 있다. 덴마크 시민 사회가 학교에 보내는 따스함과 신뢰를 섣불리 기대해서는 안 된다.

30년간, 20평 남짓한 교실에 인생의 절정기를 쏟아부어도 개인적인 보람 이외에는 특별한 보상이 없을 수 있다. 이것이 먼저 교실을 지켰던 선배들과의 대화에서 마주한 현실이다. 그래도 학교가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이라고 가정하면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

혹시 아는가? 30년 쯤 뒤에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식의 연봉이나 직장의 안정성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걸 걱정합니다. 내 아이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과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244쪽)"라고 말하게 될지. 헛된 바람이라고 해도 좋다. 원래 교육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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