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 18:22최종 업데이트 20.11.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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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만에 전국 검찰청 순회 간담회를 재개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9일 오후 대전지방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10.29 ⓒ 연합뉴스

 
지난 10월 28일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가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추 장관이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고 응수하면서 시작된 200여 검사들의 동참 댓글. <조선일보>는 일선 검사들까지 개혁대상으로 겨냥하는 추 장관의 검찰개혁이 역린을 건드렸다며, '평검사 회의' 소집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놨다. 또 다른 언론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검란(檢亂)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있다고 검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언론들의 용어 선택은 참 불편하다. 주권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용의 비늘은 검찰의 심기가 아니라 민심이다. 일부 검찰이 불편해 하는 검찰개혁을 두고, 역린을 건드렸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언론사가 민의보다 검찰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반증이라 하겠다.

검란(檢亂)이란 용어의 적절성도 의문이다. 정의를 바탕으로 어지러움(亂)을 바로 잡을 책무가 있는 검찰(檢)과 난(亂)은 상극의 언어고 함께 쓰기에 부적절한 조합이다. 검란보다는 집단 반발이나 집단 항명이 맞다. 정치군인들의 이런 집단행동을 군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대법원, 감사원 등에 대한 종합국정감사에 출석해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검찰개혁이 역린이라니
 
목적과 속내를 감추지 않은 채 인사권·지휘권·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면 한없이 치켜세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찍어 누르겠다는 권력의지도 느껴집니다. 이미 시그널은 충분하고 넘칩니다. 이로 인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검찰권 남용 방지라는 검찰개혁의 핵심적 철학과 기조는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이환우 검사의 글 중 일부

200여 명 이상의 동료검찰들이 댓글로 화답했던 제주지검 이환우 검사의 글은 단순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은 실패했으며, 법적·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해야 할 명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인사, 지휘, 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느낌'이다. 찍어 누르려는 권력의지도 본인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증명되지 않는 주관적 느낌을 나열하고 그 판단을 시그널로 확대해서 검찰개혁이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주장에서 중요한 건 객관적 사실이나 부인할 수 없는 증거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재판에 선 검사가 느낌과 시그널로 죄의 경중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추 장관이 행사한 인사·지휘·감찰권은 장관에게 주어진 권한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행위를 남용이라 할 수 없다'라거나 '검찰의 독선을 막기 위한 적법한 조치다'라는 주장도 얼마든지 있다. 찍어 누르겠다는 정권의 의지보다 검찰의 개혁 가로막기가 더 문제라는 시각도 넘친다.

'전교 1등' 홍보물을 만들어 퍼날랐던 예비 의사들과 '검찰개혁은 실패했다'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주장에 일선 검사들이 동조하는 것, 많이 닮았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잡고 의사 수 늘리기를 온몸으로 막아섰던 의사 집단과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지키려고 검찰개혁을 막아선 검사들. 국민들이 끼어들기 힘든 공간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비난하고 밥그릇과 권력 지키기 의지를 다지는 그들이 안타깝다. 의사 고시를 거부한 의대생이 다수라도 재시험이 가능하지 않듯,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있다 해서 검찰개혁이 중단될 수는 없는 일이다.

'커밍아웃검사 사표 받으십시오!' 청와대 국민청원이 11월 6일 현재 44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사표를 받으라는 주장이 타당한가 논란도 있지만,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의 시국선언에 정치적 중립 위반의 죄를 물었던 검찰을 생각하면, 검찰이라고 특별히 다른 잣대가 적용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국민청원은 대통령에게 임면권을 행사하라는 요구라기보다는 검찰 각성과 개혁 동참을 촉구하는 성격이 강하다. 죄를 증명해내는 게 아니라, 만들어서 억울한 사람들을 옥살이시켰던 과거 검찰. 권력자들의 명명백백한 죄를 덮어 면죄부를 주고 반대급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키워왔던 과거 검찰. 납득할만한 고해성사나 통렬한 반성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냐고, 그래놓고도 검찰개혁은 실패했다고 연판장 돌리듯 하는 게 맞는 처사냐고 따져보고 싶어서 국민청원에 몰리는 것이다.

MB와 김학의 유죄 판결을 보라. 당시 검찰이 있는 죄를 덮는데 급급한 잘못만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MB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김학의 성범죄 의혹이 공소시효를 넘기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체제 하에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시민단체의 숱한 고발도 무시했던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 관련 의혹이 훗날 검찰의 또 하나의 흑역사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가. 라임 관련 수사가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같은 기획 수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만 확신할 수 있나.

윤석열과 프랑스 혁명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3일 법무연수원 신임 부장검사 리더십 강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맞다. 윤석열 검찰총장 체제하의 검찰이 정권의 눈치나 봤더라면, 조국 전 장관 관련 전 방위적 수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수사가 무조건 공정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조국 전 장관과 나경원 전 의원 자녀 의혹에 대한 잣대가 다른 건 검찰이 권력 지키기에 수사권 기소권을 선택적으로 사용한 결과라는 지적도 충분하다. 검찰총장 본인의 가족 관련 의혹에도 공정성을 의심하는 여론이 크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공화국 정신에서 검찰 제도가 생겨났다는 검찰총장의 주장 또한 맞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의 의미는 절대 권력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는 것이지 검찰 제도가 만들어진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검란이라고 표현되는 검찰의 집단 반발은 오히려 혁명을 가로막고 절대 권력을 유지하려던 왕조 세력의 욕심에 가깝다.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검찰개혁에 실패를 확언하는 일선 검사들이나, 살아있는 권력 범죄 엄벌을 내세우며 검찰 조직 지킴이를 자처하는 검찰총장이나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이 나라는 검찰공화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임이라는 것. 국민이 검찰에게 위임한 권한은 공명정대한 법집행일 뿐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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