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7 08:21최종 업데이트 20.10.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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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보건교사 안은영 > 스틸 컷 ⓒ Netflix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봐야 할 드라마를 추천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보건교사 안은영>을 고를 것이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 욕망의 흔적인 '젤리'를 보는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의 모험담이다. 안은영은 알록달록 불이 들어오는 플라스틱 칼과 BB탄 총으로 유해한 젤리들을 무찌르고 사람을 구한다.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독특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함 속에서도 이상함을 포착해 그걸 더 이상하게 묘사하는 이경미 감독의 연출을 만나 독보적인 개성을 얻는다.

최근 한국 드라마들은 도깨비에 좀비에 이면 세계까지 아무리 멀고 낯선 소재를 가지고 와도 결과물이 너무도 익숙해 보이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 나는 사람들이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접근법이다. '안은영-홍인표' 콤비도 여느 드라마에서 보기 쉬운 여남(女男) 듀오지만, 부여하는 역할과 묘사 방식이 달라지니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 원고 전체를 '안은영' 이야기로 채울 수 있을 만큼 나는 이 드라마의 모든 요소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의아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주인공 무리 중 하나인 성아라(박혜은 분)가 안은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사실 '방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성아라가 '젤리 퇴치사' 안은영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크게 고민하는 장면조차 이 드라마에는 없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당연한 듯이 성아라는 안은영의 계획에 동조자가 되거나 '젤리'에 대한 안은영과 홍인표(남주혁 분)의 대화에 끼어든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가운을 휘날리며 허공을 향해 플라스틱 칼을 휘두르고 비비탄을 쏘는 '이상한 여자'를 봤다면 일단 거리부터 두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나는 성아라의 행보가 '보건교사 안은영'이 가진 유일한 구멍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아라의 행동을 납득시킬 이야기가 있어야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들이 낯섦을 대하는 방식

하지만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고 곰곰이 고민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이 홀린 듯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투신을 시도하고 갑자기 학교에 원인 모를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는 일을 경험하고 나면 젤리를 보는 안은영의 존재가 특별히 이상하게 여겨질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다 보면 어디서 낯선 존재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고 한들 그렇게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도 같다. 거기다 안은영은 이상하긴 하지만 유해한 사람은 아니며 심지어 사고를 막고 사람을 구할 궁리를 매일 하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에 사는 성아라에게 '익숙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사람을 포용하는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차라리 '해로운가 아닌가'가 척도라면 모를까.
 

넷플릭스 < 보건교사 안은영 > 스틸 컷 ⓒ Netflix

 
이러한 상황은 주인공들이 옴잡이 '백혜민'(송희준 분)을 만나면서 다시금 반복된다. 혜민은 주인공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딱 스무 살까지만 살고 다시 태어나길 반복하며 '옴'('재수 옴 붙었다'고 할 때의 그 옴이다)을 잡아온 캐릭터다. 표면적으로는 '부모 없는 아이'인 혜민을 배척하는 인물들도 있지만, 주인공들은 별다른 편견 없이 자신들의 무리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옴잡이로 살아왔다는 혜민의 이야기도 믿는데 여기에 대한 장래디(박세진 분)의 설명이 일품이다. 혜민처럼 자기도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 새로운 가족을 만나 살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래디는 자신의 '기구함'을 혜민의 '낯선 기구함'을 받아들이는 자원으로 삼는다.

이상한 것들은 사실 평범한 것이다

물론 '안은영 월드'는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재미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발 디딘 현실에서도 낯설고 이상한 일은 계속 벌어졌다. 단지 우리의 삶이 속한 곳에서 그 일이 벌어지기에 드라마를 감상하듯 거리를 두고 보기 어려웠을 뿐이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라. 별다른 조짐도 없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뜬금없이 벌어진 전대미문의 일로 점철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의 탄핵이 그랬고(그것도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질문하게 만들 만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정을 이유로), 북미 정상회담이나 친서교환도 그랬다(딥페이크 기술로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좋고 나쁨을 떠나 현실감각이 옅어지고 세상을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계속 발생해왔다. 이전 10년도 20년도 돌아보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다못해 작년의 내가 해외여행은커녕 사람도 인터넷으로 만나고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올해를 상상이나 했을까.

허완수(심달기 분) 무리의 행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과 다르고 낯선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어떻게 저런 이상한 애를 자기 무리에 수용하지. 세상을 잘 모르고 지나치게 순진한가. 하지만 우리가 실제 현실에서 보았듯 난데없고 전례 없는 일들이 왕왕 발생하는 것이 사실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래 그러하다면 '낯선가 익숙한가', '평범한가 특이한가'는 사실 그리 쓸모 있는 기준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이상한 게 이상한 게 아니게 되어버린다. 안은영도 홍은표도 허완수 무리도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쓸모없는 판단기준을 버리고 거기에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는 불필요한 소요나 유해한 충돌이 없다.

불필요한 낭비가 없는 '현실적인 판단'을 바라며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퀴어(Queer)는 본래 '이상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이름에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없는 존재처럼 치부하며 손쉽게 혐오를 표해온 역사가 담겨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상한 존재들에게 사회는 자주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시대가 점점 달라지긴 하는 걸까. 좋긴 하지만 당사자가 보기에도 현실감각은 떨어지는 뉴스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 커플 시민 결합 지지 선언을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 BBC

 
동성애자들에게 포용적인 제스처를 취해온 교황이니 그가 동성결합법을 지지했다는 뉴스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소수자 차별발언을 이유로 CTS 기독교TV에 법정제재를 부여하는 결정을 했다. 인구주택총조사가 동성 배우자로 구성된 가족을 배제한다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비판에 통계청장은 조사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했고 개선을 약속했다(물론 이 답변은 문제를 정면으로 수용하지 않은 채 나왔기에 정말로 개선이 될지는 계속 날카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일들이 며칠 사이에 갑자기 일어나니 세상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동성부부에 대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동성부부 역시도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 결혼 생활을 이어왔지만, 법률혼이 인정되지 않아 의료, 사회보장, 직장복지 등의 영역에서 차별을 겪어왔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인 걸까. 하지만 <여성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동성 간 결합은 혼인으로 인정되지 않기에 피부양자 등록이 되어선 안 됐으며 사실 확인 후 추후 관련 조치나 입장을 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이미 동성 배우자와 함께 부부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면 기관과 법률이 그 현실을 모른 척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원래도 안 됐으니까 지금도 안 된다'는 입장은 타당할까.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질문하고 싶다.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쓸모가 있기는커녕 유해하기 짝이 없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구태의연하며 쓸모도 없는 기준에 기대어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 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유해한 사회적 낭비다. 현실적이지도 유용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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