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7 14:00최종 업데이트 20.09.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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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집에서 인터넷 신호가 사라졌다.

지난 3월 18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자택 대피가 시작되면서 그간 외부와 소통하고 '정상적인'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혹여 인터넷 신호에 문제가 생길까 늘 노심초사하던 참이었다. 여섯 달 동안 이어지는 고립 생활에서 숨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홀연히 신호가 사라졌다. 처음엔 눈앞이 캄캄했고, 그 다음엔 망연했다.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배운 조침문이 문득 생각났다. 콧구멍과 가슴이 울렁울렁 거렸고, 오호통재라!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신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2. 왜 사라졌을까?

멕시코 북쪽 사막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곳이 그러하듯, 내가 사는 이곳 또한 우기철이다. 게다가 9월은 1년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달이기도 하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그렇다고 한국의 장마처럼 지루하거나 습한 느낌은 없다. 오후가 되면 뭉게뭉게 먹구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오후 다섯 시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 스콜이다. 물론, 천둥과 번개도 동반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비를 쏟아내고 나면 밤하늘엔 다시 별이 총총 나오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강렬한 태양과 함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반짝거림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또 오후가 되면 한 시간여 비가 쏟아진다. 그런 하루 동안의 순환이 약 6개월 정도 이어진다.
 

번개 치는 멕시코 밤하늘 ⓒ 연합뉴스

 
우기철의 불편함이라면, 비가 오거나 번개가 칠 때마다 반복되는 정전과 전기 기구들의 고장이다. 그러니 일단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모든 전기 기구의 전원을 차단해 둔다. 전날 역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인터넷 모뎀 기기의 전원을 차단했다.

그리고 비가 멎은 후 다시 전원을 연결하고 작업을 하던 중, 예기치 않게 마른번개가 내리쳤고 정전이 되었다. 한참 후 다시 전기는 돌아왔지만, 인터넷 신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만 하더라도, 위안인지 위로인지, 아마도 우리 마을 어디쯤에서 인터넷 통신선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조만간 아니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인터넷 신호가 복구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지만, 현실은 바람과 달랐다.

3. 고장 신고

어느 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애써 위안을 삼아보지만, 멕시코에서 80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로 뭔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는 어지간한 인내가 필요하다. 때론, 미리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붙잡고 이 버튼 저 버튼 누르라는 대로 누른 후에도 30분을 훌쩍 넘겨서야 사람의 목소리와 연결이 되었다.

상황 설명을 듣더니 아마도 우리 집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지역 어느 선로상의 문제일 것이란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늦어도 당일 오후 혹은 익일 중으로 기술자를 보내겠다고 안내했다. 더불어 고장 접수 증명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고장 신고 접수를 '겨우' 마무리했다. 2020년 9월 8일 오전이었다.

4. 기다림

고장 신고 접수 시 당일 오후에 기술자가 방문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늦어도 익일까지 온다 하였으니, 차라리 마음 편히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다음 날에도 기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터넷 신호가 사라진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가 되면서 마음이 조금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 나는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 회의에 참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어쩌면 멕시코에서 살아온 그간의 세월이 내게 알려준 '촉'일 수도 있다. 우리 집이 있는 길목에 두 채의 집이 더 있긴 하지만, 인터넷 서비스를 받고 있는 집은 우리 집이 유일하다. 그러니 다른 집의 상황을 묻기 위해서는 아랫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서다 옆집 할아버지를 만났다. 엄청나게 커다란 TV 상자를 차에서 내리는 중이셨다.

우리 집 인터넷 단말기에 문제가 생긴 그 순간, 할아버지 집에서는 불과 몇 달 전 새로 산 대형 TV가 타버렸다고 했다. 마을에 TV가 타버린 집이 제법 된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줬다. 그때 까지만 해도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인터넷 수신 단말기가 탄 것이 비싼 TV가 타버리는 것 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아랫마을 첫 집 마당에 이르러 "인터넷 신호 들어와요?" 하고 물었고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집은 지금 한 달 넘게 인터넷이 안 되고 있어요. 전화국에 수백 번 전화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먹통이요." 다리에 힘이 살짝 풀리는 듯했으나, 다시 다른 이웃을 찾아 나섰다. 마을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갖춘 집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인터넷 서비스 사용 여부를 먼저 물어야 했다.

한참 아랫마을에서는 어젯밤까지는 인터넷이 먹통이었는데 당일 오전부터 신호가 잡힌다고 했다. 우리 집도 조만간 신호가 잡힐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집으로 올라오면서 또 다른 이웃을 만났다. 그 집의 경우 인터넷 서비스가 이유도 없이 먹통이 된 지 스무 날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전화국 기술자가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개학한 아이들은 숙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여 홧김에 멕시코 전화국(TELMEX) 인터넷을 취소하고 케이블 TV와 연결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공급자를 알아봤지만, 아직까진 우리 마을에 해당 회사의 통신선이 깔리지 않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우울해졌다.

5. 소극적 조치

집으로 올라오니, 늦은 오후였다. 당장 내일 오전 11시 온라인상 회의를 취소하기 위해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로 팀원들의 작업을 확인하고 챙겨야 할 사안들이 제법 있었지만, 상황을 설명하고 일단 1주일 뒤로 회의를 미루자고 했다. 네 명의 동료들은 흔쾌히 1주일 연장된 회의안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 것과 신경 쓰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간 회의가 있을 때마다 최소 2박 3일 일정으로 멕시코시티까지 왕복 약 2000km정도를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온라인 회의로 대체되면서 처음엔 조금 어색해 하다가 이제 겨우 그 편안함에 감동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세 번의 온라인 회의가 있었는데, 내일로 잡힌 네 번째 온라인 회의가 나의 개인적 사정 때문에 연기되었다.

이어 내가 속한 학과 학사업무 코디네이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는 지난 3월 18일 이후 완전히 폐쇄된 상황이니, 학사 코디네이터도 당연히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상황을 설명하고 당분간 이메일 확인을 할 수 없으며 또한 예정된 학과 회의에 참여할 수 없음을 보고했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뒤늦게 치러진 박사과정 입시 업무가 지난 주 일단락 된 상황이라 급한 불은 끈 셈이었지만, 여전히 두 달 이상 늦어진 온라인 개강으로 이러저러한 회의가 잡힌 즈음이었다. 멕시코시티의 프로젝트 동료들이 내게 말해준 것처럼, 학사 코디네이터도 내게 전혀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했고 급한 사안이 있으면 이메일 대신 전화로 연락을 주기로 했다.

6. 적극적 대응

집에서 인터넷 신호가 사라진 지 나흘째 되던 날, 여전히 전화국 기술자는 오지 않았고 나는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단 마을로 들어온 전화국의 수리 차량을 잡고 통사정해보라 했다. 그러지 않아도 나 역시 지난 십 수 년 동안 몇 번의 경험은 있던 터, 눈에 불을 켜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전화국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차량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늦은 오후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화국 차량을 만났다.

통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 왜 인터넷이 있어야 하는지 구구절절 읍소하듯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당장 업무를 위한 회의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고 다음 주부터 수업마저도 취소되게 생겼으니, 우리 집 인터넷 고장으로 인해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업을 잃게 생겼다는 읍소를 잊지 않았다.

요즘 같은 시절 당신들의 노고를 모르지 아니하나 부디 이 사정을 헤아리시어 전화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잠깐 우리 집에 들러 상황을 살펴 줄 것을 매우 간곡히 부탁했다. 대한민국이었다면, 내 스스로 그런 개인적 사정을 읍소해가며 통사정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필요치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멕시코는 여전히 개인의 사정과 상황이 어떤 절차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흔하기에 나 또한 개인 사정을 구구절절 쏟아내가며 최대한 전화국 사람들의 측은지심에 기대보았다.

물론, 그런 통사정에도 전화국 기술자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어쩌면 나 스스로도 전화국 기술자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미리 생각했는지 모른다. 일전에 뉴스에서 전화국 기술자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던 중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예가 상당하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게다가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하는 집들이 폭주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8월 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개학을 했고 9월 말이면 대학교들이 개강을 하게 된다. 모두 온라인이다.

그러니 아무리 측은지심이 십분 발휘된다 하여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최소 보름 혹은 한 달이 걸린다 해도 불평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탁이 갸륵하였던지, 전화국 기술자는 그의 작업 일지 말미에 내 전화번호와 우리 집 주소를 적어 넣긴 했다. 내가 고장 신고 접수 번호를 불러줬지만, 그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멕시코 연방정부와 보건부에서 만든 <집에 머물러라> 캠페인 포스터. 포스터 우측에 '나중에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 위에서는 지금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멕시코 보건부

 
7. 조언들

우리 집에서 인터넷 신호가 사라진 후 닷새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총 세 건의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나는 동료들에게 별도로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지만 동료들은 학사 코디네이터를 통해 우리 집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동료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조언들이 쏟아졌다. 그 중 가장 많이 중복된 조언은 내가 사는 도시의 시장님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전화국과 시장님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그간 듣고 본 여러 정황들을 회상하며 생각해보니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 같았다. 멕시코에서 지켜본 바, 절차보다는 '빽'이 우선했고 기왕 '빽'을 쓰려면 내가 댈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이어야 했다. 공화국의 대통령이나 내가 사는 주의 주지사 정도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내 처지가 거기까진 이르지 못함이 그저 안타까웠다.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픽 웃음이 나왔다.

멕시코에는 '폴더를 전하다'라는 말이 있다. 멕시코 전역 어디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뜬다는 소문이 돌면, 해당 지역뿐 아니라 멀리서도 사람들이 몰려온다. 일견 지역을 방문하는 정치인에 대한 환영 인파처럼 보이지만, 그들 대부분의 손에는 서류봉투 혹은 종이 파일이 들려있다.

봉투나 파일 안에는 도무지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잡다한 개인 신상의 문제들이나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혹은 그들의 바람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문제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아무리 십수 년 간 해결의 기미를 찾지 못한 채 묵은 사안일지라도 일단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에게 전달되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 일부 유명 정치인들은 지역을 방문할 때 서류 봉투나 폴더만 받는 전문 비서를 대동하기도 한다.

우리 집 인터넷 문제를 걱정하며 전화를 해온 동료들의 말인즉, 오지 않을 전화국 수리 기사를 그저 막연하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마을에서 가장 정치적 파워가 센 시장님을 직접 찾아가 우리 집 사연이 구구절절 적힌 폴더를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내 당장은 도무지 쑥스러워 가지 못할지라도 다음 주까지도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 때는 어쩌면 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마음 한편으로 굳이 다음 주가 되기 전에 우리 집 인터넷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인터넷과 시장님을 엮기에는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시장을 만나라는 내용 다음으로 많이 나온 조언은, 역시나 매일 마을 곳곳을 배회하며 전화국 차량을 붙잡고 통사정해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미 며칠 전 그 방법을 썼고 내 눈으로 작업자의 노트에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가 적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니, 그 시간 이후로는 언제 올 지 알 수 없는 기술자를 기다리느라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벌써 닷새째 집을 비우지 못한 채 오지 않는 전화국 기술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역시나 비중 있는 조언 중 하나는, 전화국에 찾아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전화국장을 만나보라는 것이었지만, 이 또한 집을 비울 수 없어 포기했다. 대신 기술자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여 800으로 시작되는 전화국 고장 신고 접수 번호로 전화를 해대라는 조언은 착실하게 받아 충실하게 실행하였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수화기를 붙잡고 기다린 끝에 사람의 목소리와 연결이 되었지만, 매번 듣게 되는 답은 한결 같았다. 전화국은 당신 집 인터넷 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당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당신의 고장 접수 비고란에 '응급' 메시지를 적어 뒀으며, 멕시코전화국(TELMEX)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8.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지금 이 순간 우리 집에 인터넷 신호가 들어온다면, 나는 가장 먼저 우리 집에 인터넷 서비스를 공급하는 텔멕스에 대해서 검색을 해볼 것이다. 지금까지 십 수 년 간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단 한 번도 그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다. 그나마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멕시코의 가장 대표적인 통신사라는 사실과 미국의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1·2위를 다투는 부호 카를로스 슬림의 회사라는 점이다. 원래는 멕시코 국영 통신사였으나, 1991년 카를로스 슬림에게 팔리면서 민영화되었다.

더불어 멕시코에서 전기국, 석유공사와 더불어 가장 선망 받는 직장이지만, 신입사원 선발을 위한 공채는 없다는 사실. 매년 퇴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이나 친인척을 입사 대상자로 지정할 수 있고, 이들은 아주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사실. '부모 찬스' 시스템이 매우 당연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회사에 비해 급여 수준과 복지가 매우 좋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한동안 인터넷 관련 설치나 고장 수리는 하청 기업들이 하였는데, 최근 다시 텔멕스에서 직접 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이후 멕시코전화국의 고장수리 기사들도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 작업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 집에 인터넷 신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한 달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굳이 논리적인 계산이 아니더라도, 이미 마을에 한 달 혹은 두 달 이상 오지 않는 전화국 기술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집이 허다했다.

생각해보면, 굳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시기가 아니더라도, 멕시코 최대 통신회사인 텔멕스의 인터넷은 늘 불안정하였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인터넷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문제는 매년 6개월간 우기가 이어진다는 점. 그 와중에 수리 담당자는 언제나 '오지 않기'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지난 세기부터 그랬다니 이쯤 되면 확고한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완벽한 독점이라, 나 역시 소비자지만 늘 약자였다.

다행히 인터넷 없이 살아가는 나의 삶이 초래하는 차질을 직장의 동료들은 큰 문제없이 너그러이 이해해줬고 오히려 위로해줬다. 문제는 바로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수업이다. 비대면 회의야 나중에 전화를 통해서라도 보고를 받을 수 있지만, 당장 수업에 대한 걱정에 이르면 막연해진다.

지난 3월 18일 학교가 전면 폐쇄된 이후 연구실이나 도서관에 대한 접근도 불가능하다. 아예 정문을 닫아걸었다. 그렇다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카페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인구 2만7천 명 정도의 소읍에는 아직 그런 카페가 없다. 물론, 주변의 더 큰 도시로 나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멕시코 내 코로나 현황을 나타내는 신호등 체계에서 여전히 가장 위험한 빨강불이 켜져 있는 이곳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한민국의 3단계 거리두기에 준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도무지 오지 않는 텔멕스의 기술자를 기다리며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날려 먹을 순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지난주 이미 시작된 수업에서 학생 한 명이 보여준 '열의'를 따라 하기로 했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집에 가서 그 집의 차고를 빌리고 그 곳에 차를 댄 채 인터넷에 접속하여 수업을 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 주 학생 한 명이 늦은 밤까지 캄캄한 차 안에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조마조마 하였다. 학생은 집에 인터넷이 없어 친척집에 가서 차와 차고를 빌리고 그 안에서 수업을 듣는 중이라고 했다.

9. 더 불공평해졌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시대가 그나마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더 공평한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다. 일단 학교까지만 오면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학교가 제공하는 인프라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학교가 폐쇄되고 학생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학기 어찌어찌 급조된 채 진행된 비대면 수업에 몇 명의 학생들은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집에 인터넷 서비스가 없는 일부 학생들이 친척집을 전전하며 수업을 받기도 하였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오히려 내가 나서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좋으니 각자의 집에 머물러 줄 것을 당부해야 했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전화를 이용해 수업 손실을 막아보고자 했지만, 그 중 일부는 거주 지역에서 인터넷은커녕 핸드폰의 송수신도 쉽지 않은 상황을 토로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지난 7월과 8월 별도로 대면 방식으로 집중 보충수업이 계획되었지만, 이 두 달 사이에만 약 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학교는 여전히 폐쇄 상태다. 결국 그 학생들에게 과제물 제출로 학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지만, 적어도 과제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자료를 찾든 인터넷 접근이 필수적인 상황이기에 이 또한 학생들에게 심적 부담을 지우는 꼴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어찌어찌 과제물 작성한다 해도, 학생들이 나에게 과제물을 전송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없다. 학교는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학교가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학생과 교수가 모임을 갖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물론, 도시라도 모든 집의 상황이 괜찮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터넷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하는 가구가 상당하다. 또한 인터넷 서비스를 공급받고 있던 상황이라도 매일 비가 오는 이 우기철에 고장 없이 양호한 수준의 인터넷 서비스를 공급 받기란 엄청난 신의 가호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8월 소셜네트워크 망을 통해 회자된 사진 한 장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농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 각자의 집에서 인터넷이나 교육방송 TV수신이 여의치 않자 선생님이 자신의 픽업트럭에 책상과 의자를 싣고 학생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수업 공백을 메워주는 사진이었다. ⓒ 멕시코 트위터 캡처

 
이 와중에 지난 8월 소셜네트워크 망을 통해 회자된 사진 한 장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농촌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 각자의 집에서 인터넷이나 교육방송 TV수신이 여의치 않자 선생님이 자신의 픽업트럭에 책상과 의자를 싣고 학생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수업 공백을 메워주는 사진이었다. 나는 여전히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국 수리 기사를 기다리면서 오매불망 인터넷 신호의 부활을 바라고 있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픽업 트럭 짐칸에 차려진 작은 교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집에서 인터넷 신호가 사라진 지 일주일이 되었다. 아마도 오늘 나는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된 이 기사를 인터넷 서비스 없이 어떻게 한국까지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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