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25 15:49최종 업데이트 17.06.07 10:28
지난 1일, 제1기 '오마이뉴스 꿈틀 비행기'가 떴다. 행복 사회 덴마크를 돌아보며 행복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동력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스태프를 포함한 32명의 참가자들은 인생 학교와 교육 단체,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의 흔적 등을 돌아봤다. 첫 번째 '꿈틀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의 단편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덴마크 시청사에서 뉘하운 운하 방향으로 가는 길목,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거리라고 할 만큼 다양한 덴마크의 문화를 볼 수 있는 거리다. ⓒ 김민수


이제 '꿈틀 비행기 탑승기'를 정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기사를 작성하면서 때가 어느 때인데 '자랑질'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와 말레네 뤼달(Malene Rydahl)의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서 묘사된 행복사회 덴마크를 직접 눈으로 보니 너무 부러웠다. 물론 여행이 주는 감흥도 더해졌겠지만 그곳은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

지난해 이맘때 난 사표를 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지만, 아내도 나를 응원해 줬다. 26년을 결산해보면... 평균 연봉 4천 정도였으니 넉넉하게 잡는다해도 10억 정도를 급여로 받아 세 자녀를 키워내며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고마웠으나, 내 삶을 저당잡힌 대가로는 너무 쌌다. 그리고 마음이 맞지 않은 상사와 일을 해야할 때의 비애감과 상실감은 더했다. 유난히 힘들었던 지난해, 다섯 번의 사표를 낸 끝에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나이 50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제, 조금 덜 풍요롭게 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나이가 되었음을 직감했고,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 둔 이후, 거짓말처럼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해서가 아니라, 직장생활 할 때와 견주어보면 하루하루가 훨씬 더 행복했고, 돈으로 환산하면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더 이익이었다. 물론, 수입이 더 많았던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이 늘 날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직장에 매여 있지 않은 덕분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여행도 많이 다녔고, 무엇보다도 병환 중인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었다.

치매와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 병수발도 하고, 임종 순간까지 곁에서 지켰다. 직장에 매여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고,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도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행복한 삶, 잘 사는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모자랄 인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나는 신앙적인 면에서 결단을 했다. "공중을 나는 새도, 들에 피는 백합화도 먹이시거늘...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필요한 만큼은 채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사진찍는 일은 직장에 매여 있지 않으니 더 탄력을 받았고, 그만큼 글쓰기와 사진과 관련된 고료와 강의도 더 많아졌다. 아직은 안정적이진 않지만, 이제 비로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조금만 더 일찍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더라면... 지금도 늦지는 않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가기에도 짧은 인생이 아닌가?

로젠보르 궁전 1600년대 초반 크리스티안 4세의 건축계획에 따라 지어진 왕궁으로, 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 김민수


그러던 차에 '꿈틀 비행기' 소식을 들었고, 행복사회와는 별도로 덴마크라고 이미지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뉘하운 운하'를 눈으로 직접 보고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신청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덴마크와 관련된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공부는 필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덴마크처럼>, <유럽여행> 등의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이런 나라라면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닐까 싶었고, 이런 나라라면 지상천국이 아닐까 싶은 환상까지 갖게 할 정도로 덴마크는 행복사회였다. 물론, 다른 모습도 있겠지만 덴마크는 유엔에서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지수 1위를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한 나라가 아닌가? 한국은 2012년에 56위를 했는데, 도대체 한반도의 1/5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 인구 560만 명밖에 안되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된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그들의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간들이었다

덴마크의 청년 새벽 산책길에 만난 덴마크 청년, 낯선 이방인에게도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 김민수


코펜하겐에 도착한 첫 날은 저녁이었고, 그곳 지리도 알지 못하니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뉘하운 운하를 찾아갔다. 정말, 책과 인터넷에서나 보던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한국과는 시차가 8시간이 나는 덴마크, 마침 그 새벽시간은 노동절 다음날이었는데 노동절은 이른바 '불금'이었고, 그 '불금의 밤'을 보낸 청년들이 여기저기 술집에서 나왔다.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덴마크 현지인인 셈이다. 거리낌없이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더니만 너도나도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참, 이국적이다 싶었다.

그리고 일정에 따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행복하냐?"는 질문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행복한 이유를 열거한다. 그러다가 "혹시, 걱정거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은 없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버벅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왜, 불행해야하고, 왜 걱정을 해야 하지?" 되묻는 이들도 있었다.

뉘하운 운하 '새로운 항구'라는 뜻으로 1637년에 개설되었다. 이곳에는 한때 안데르센이 집세를 내지 못해 방황화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 김민수


도대체 이런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는 6가지 키워드로 이것을 설명했다. 그것은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이다. 그리고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서는 신뢰, 교육, 자유와 자율성, 기회균등, 현실적인 기대, 공동체 의식, 가정과 일의 균형, 돈에 초연한 태도, 겸손, 남녀평등으로 설명했다(자세한 내용은 독자들의 읽을 몫으로 남겨둔다).

이런 것들이 사회시스템으로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고, 각 개인은 그런 시스템에 만족하며,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자신들이 한 몫을 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런 사회라면,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무덤에서 요람까지, 그들은 덴마크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다.

뉘하운에서 만난 청년들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는 31살의 청년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 김민수


그룬트비, 키에르케고르, 안데르센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1783-1872), 덴마크가 낳은 세계 최고의 동화작가 안데르센(1805-1875)과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해 일일이 말하자면 각 인물별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기에 안데르센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누고자 한다.

뉘하운 운하를 걷다가 안데르센이 최후의 4년을 보냈던 18번지를 찾았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은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더욱 더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 열다섯 살에 연극배우를 꿈꾸며 코펜하겐에 입성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다. 안데르센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때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나중에 요나스 콜린의 후원으로 정규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낸 안데르센은 1843년 <미운 오리 새끼>가 히트를 치면서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등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안데르센이 거주했던 집 뉘하운 운하 18번지, 안데르센이 최후의 4년을 보냈던 곳이다. ⓒ 김민수


물론, 그 당시에는 자금같은 사회시스템이나 교육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행복사회 덴마크를 경험해 보니 안데르센의 동화가 그냥 동화가 아니라 덴마크인들의 심성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미운 오리 새끼>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백조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고, 자기 안에 있는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꿈을 찾아 나서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요, <벌거벗은 임금님>은 자기 주체성을 갖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백조 덴마크 호수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백조, 이 백조들이 <미운 오리 새끼>라는 작품의 모티브가 아니었을까? ⓒ 김민수


현재 덴마크 공교육이나 인생학교(애프터스쿨)에서 치중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안에 내재한 자아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며, 사회에서 독립적인 주체로 자리를 잡아가게 하는 것이며, 자기 주체성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안데르센의 동화와 많이 닮지 않았는가 싶다.

나 혼자 행복하면 무슨 재민겨?

나는 지금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사회의 시스템 문제 때문이다. 힐링 선생들은 이런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이 행복하려고 하면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류의 싸구려 힐링에 반대한다.

인어공주상 코펜하겐의 상징, 안데르센 동화작품 중에서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인어공주뿐이다.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 김민수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시스템도 중요하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행복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의미있는 꿈틀거림을 보았다. 그것은 단지 개인뿐 아니라 지자체와 공공기관, 교육단체, 협동조합 등이 행복사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꿈틀거림이 있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사회도 행복사회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전우익 선생의 책 <나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겨?>가 있다. 행복도 그렇다고 본다. 행복은 내 안에서 차고 넘쳐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 행복이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더불어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꿈틀 비행기 탑승기' 마지막 회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사회 덴마크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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