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땅에 쓰는 시> 포스터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드니 빌뇌브의 <듄: 파트2>에서 가장 뇌리에 새겨지는 장면들은 복수를 위해 사막 행성 '아라키스'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원주민 '프레멘'의 조력을 끌어내기 위해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가 '초인'으로 각성하는 전환점들이다. 한편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생존자들과 프레멘 부족의 결합을 우려하는 제국 황실의 공주 '이룰란'의 통찰 역시 그런 전개와 대구를 이루며 인상적으로 남는다. 프레멘에겐 구세주가 불모의 사막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강렬한 신앙이 있었고, 폴은 초인의 능력을 인정받아 그들의 구원자 '마흐디'로 자리를 잡는다. 그 마지막 단계에서 추종자가 길을 묻자 폴은 답한다. '녹색의 낙원'으로 그들을 이끌 것이라고.
 
<듄>의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중동 사막의 민족 베두윈이나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 유목민에게서 프레멘의 이미지를 얻어와 구현했다. 물이 귀하고 온통 모래벌판인 사막에서 현세의 고초를 견디는 전사부족들에게 '낙원'은 곧 물이 풍부하고 초록빛 숲이 우거진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강렬한 열망은 훗날 예언자 무하마드가 창시한 이슬람 신앙을 통해 사방으로 팽창한 거대 제국으로 실현되었다. 물론 무수한 전쟁을 통해서이지만. 그런 꿈의 구현 이전에는 어떻게 낙원을 상상했을까. 천상의 낙원을 미니어처 모형처럼 압축한 '정원'을 통해서였다. 사막 한복판에 공들여 수로를 파고 꽃과 과일나무를 옮겨 심어 작지만 아름다운 이상향을 구현하려 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렇게 정원이 발달했다.
 
'낙원'을 희구하던 이들이 현세에 구현한 조경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어릴 적 즐겨 읽던 세계사 입문서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안티파트로스가 기록한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이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로도스의 거상 같은 당시 기술을 초월한 거대한 위업 사이에서 특이했던 건 바빌론의 '공중정원'이었다. 성서에도 '느부갓네살'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대왕이 동맹국 메디아 출신의 왕비를 위해 수도에 건설했다는 이 정원은 고대인들에게 경탄의 대상이던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14미터 높이)보다 20미터는 더 높은 7층으로 구성되고 각 층마다 정교하게 연결된 물길을 따라 꽃나무와 과실수, 그에 꼬여드는 새와 나비로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숲이 우거진 고향에서 사막의 땅으로 와 향수병에 시달리던 왕비를 위한 배려였다. 엄밀하게는 옥상정원이지만 사막 한복판에 마치 거대한 숲처럼 자리한 거대한 정원은 마치 공중에 부유한 것처럼 보였을 테다. '인공적인 유토피아'가 최초의 정원 콘셉트였던 셈이다.
 
고대국가가 확립된 이후로 제왕들은 자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도성을 꾸몄고 건축가와 정원사들이 전문직으로 등장했다. 도시계획에서 조경은 그렇게 공공건축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전통을 축적하게 되었다. 이제는 제왕의 궁전 대신 대도시의 복잡한 공간구획과 도시 기능 제고가 주요 관심사로 변했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도심 공원은 시청이나 도서관 못지않은 기능을 발휘하는 중이다.
 
한국은 그런 현대적 도시계획과 공간 관리 노하우 면에서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에 속한다. 이미 19세기 후반에 서구 열강의 대도시들이 시도한 것들을 거의 1세기가 지나서야 고민한 것이다. 그중 조경 차원은 특히 더뎠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에 몰두하던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이 지상과제였던 대한민국에서 국토를 말 그대로 '갈아엎는' 경제개발계획과 대토목공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는 전대미문의 격변으로 이어졌다. 지맥이 끊어지고 마을이 수몰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자연 파괴를 줄이고 균형 개발을 목적으로 몇 가지 시도가 출발한다. 그린벨트를 만들고 식목일을 지정해 민둥산을 없애려 했다. 대규모 공공건축에는 반드시 외관을 조화롭게 자연과 접목하는 조경이 수반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에도 전통적인 조경과 정원에 대한 사례가 꾸준히 계승되어왔다. 우리가 겸재 정선의 수묵화나 조선시대 왕궁의 정갈한 후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사막이나 황무지가 아니라 온대 4계절 기후의 수혜를 입은 색채가 풍부한 자연조건을 이용해 자연의 원 상태를 가능한 살려 인공물과 조화를 구현하는 게 전통 조경의 '이데아'였고 1세대 조경가들 역시 그런 계승에 집중했다. 그중에도 최초의 조경전문가로 반세기 넘게 활약해온 정영선 선생의 활약은 특기할 만하다.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 시대의 '장인'이 개척하고 다듬어온 한국 조경의 현재와 미래 전망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려는 기획이다.
 
봄-여름-가을-겨울-다시 봄... 사계와 연결된 조감도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는 정영선 선생의 손길이 닿은 조경 사례와 선생의 요새와도 같은 경기도 양평 산중의 자택 풍경이 교차한다. 그런 반복이 주거니 받거니 하지만 지루할 틈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건 4계절을 거치며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풍경의 힘 덕분일 것이다. 온통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떡칠이 된 위압적인 도시가 아니라 색이 살아 있고 생명이 느껴지는, 손이 퍽이나 많이 간 흔적이 역력한 현세의 낙원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봄
 
양평의 고즈넉한 산야 속 자택은 자연의 일부처럼 풍경에 녹아들어 있다. 그 속에서 여든이 넘은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땅을 돌본다. '풀또기', '돌단풍', '조팝나무', '이스라지', '병아리꽃나무', '하늘매발톱'... 도시인이 다 된 현대 한국인들에겐 생소한 식물의 이름들이 차례로 선생의 정원 여기저기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다. 선생은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사방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찬찬히 들어보니 마치 손주를 대하듯 자상하게 정원의 식구라 할 식물들과 나누는 대화다. 어릴 적에는 '시인이 될 줄 알았던' 선생은 그렇게 자연과 인간들을 이어주는 '연결사'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도시로 돌아온 정영선 선생은 대규모 건축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원에 심어야 할 나무를 다루는 인부들에게 타박을 던지고 공사 담당자에게 '내 앞에서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억세게 주문한다. 듣는 이의 곤혹스러운 표정은 덤이다. 하지만 선생은 타협하거나 양보할 기미는 바늘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사명에 단호한 책임감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한국 현대건축의 '랜드마크'들이 차례로 화면에 등장했다 사라진다. 1970년대 초반에 공인 조경사 타이틀을 획득한 정영선 선생의 수많은 프로젝트가 곧 한국 대도시 풍경의 일부로 자리잡았음을 화면 속 이미지가 입증하는 순간들이다. 그가 담당부서 공무원들의 전유물이던 공공건축물 조경을 최초로 설계 계약을 통해 담당한 1984년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부터 예술의 전당, 광릉수목원, 88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의 조경이 속속 출현한다. 관객은 이런 데에도 정영선의 이름이 각인되는 것에 살짝 놀라고 말 테다.
 
개척 시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가 지나면 조금 더 성숙하고 야심에 찬 프로젝트들의 시간이다. 도시계획에 생태 개념이 접목되는 효시에 해당되는 1997년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풍광이 펼쳐진다. 가로등이나 벤치 같은 도시공원에 당연히 따라붙을 것으로 의심치 않던 것들이 최대한 절제된 가운데 천변의 환경에 사람이 녹아드는 설계 구조를 시도하면서 공무원들과 겪었던 갈등이 담담하게 증언으로 그려진다. 그런 도전은 2007년 서울아산병원 지하주차장 위에 만들어진 도시 숲 공원으로 이어진다. 아픈 사람과 그들을 돌보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공히 숨 쉴 틈을 만들어주려는 인간에 대한 배려심이 기반이 된 설계다. 그런 고민이 차츰 인정을 받아가며 호암미술관이나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같은 대기업과도 제휴해 요즘 유행하는 가치경영과 일맥상통하는 시도를 이어간다.
 
그렇게 반세기 동안 발주받은 프로젝트는 곧 국내 최초의 조경전문가이자 여성조경가로서 일가를 이룬다. 그런 선생의 작업은 그가 작업 과정에서 스케치했을 도면의 파스텔 분필 소리로 생동감을 더해간다. 16세기에 구축된 담양 소쇄원으로 완성된 한국적 정원의 전통과 특징이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풀이되기 시작한다. 인공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연에 덧대어 두 세계의 경계가 섞여지면서 연결되는 특징은 곧바로 정영선 선생의 조경 철학으로 해석되는 순간이다. 극적 몰입을 위해 투입된 사운드트랙이 소멸하고 자연음만 남자 공감각적 효과로 그런 조경 철학의 진가가 화면 가득 구현된다.
 
김수영 시인의 명시 '풀'의 시구와 함께 선생의 대표작 중 하나일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풍광이 귀환한다. 오직 초목과 흐르는 물만 남겨놓은, 관리사무실도 화장실도 주차장도 보이지 않는 공간이 시선 가득 들어온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여름
 
여름의 양평 자택 주변은 또다른 색깔로 다가온다. 호미질을 하고 손으로 솎아주면서 선생은 다양한 식생들을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다. '향나무', '잔대', '오이풀', '참억새', '꽃양귀비', '좀목형', '큰산꼬리풀', '부처꽃', 개미취'가 어떤 형상을 한 식물인지 비로소 관객은 식별할 수 있게 된다. 관리에 손이 덜 들어가고 철 따라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것들로 골라낸 것이란 소개가 이어진다. 그런 해설에 이어 화면이 점프해 제주도로 향한다.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원료식물원이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자연산 재료 1500여 종이 빼곡하게 들어찬 해당 공간의 설계 이념과 선생의 자택 주변 정원의 기획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어서 선유도 공원이 돌아왔다. 겸재 정선의 화풍을 재현한 개념으로 원래 해당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 용도가 다한 저수시설을 활용한 설계 기획을 듣고 있자니 이 공간이 어떤 배려로 재생될 수 있었나 새삼 깨닫게 된다. 무조건 때려 부술 생각부터 하지 말라며 툭 던지는 선생의 육성이 왜 이리 무겁게 들리는 걸까?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면 서귀포의 티뮤지엄 설계에서 구현되듯, 제주 특유의 지형인 곶자왈을 정원으로 재현한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외래종 없이 자생종만으로 식물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튀는 개별 식물을 넘어서는 시야로 조망할 때 가능한 구현일 테다. 그렇게 제주도 곳곳에 간직된 정영선 선생의 작업이 하나의 순환고리처럼 연결된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 해설에서 대표 제품 '설화수' 재료 중 색깔과 키 등을 일일이 세심하게 따져 축조된 정경이 조금씩 확인되기 시작한다.
 
#가을
 
어느새 나뭇잎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가을이 온 것이다. 산책에 안성맞춤인 절기인 만큼 도시공원을 따라 시민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노원구에 구현된 경춘선 숲길의 풍경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서 그 기원이 비롯된 경춘선 철길을 어떻게 현대 서울에 녹여낼 것인가 공공건축과 도시계획 측면에서 일가를 이룬 야심작이 풀이된다. 일단 역사유물이 된 경춘선 궤도를 유지한다는 전제로 선형 구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범인은 상상하기 힘든 고심의 발로다. 철길 주변 거주민들에게 시민 텃밭을 배분하고 인근 시장과 동선을 연동하는 배려 덕분에 일어난 변화상이 흐뭇하게 그려진다. '높으신 분들'은 주민들이 부동산 가치 증대나 주차공간에 집착할 것이라 예단했지만, 조경 설계의 진가를 깨달은 주민들이 어떻게 호응하고 연동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나 해설되는 순간은 한국의 모든 도시계획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단풍잎의 향연과 함께 이번에는 감독의 전작에서 세세히 구현된 파주출판도시의 정경 차례가 돌아온다. 정영선 선생이 파주출판단지의 2단계 조경에 참여하면서 시도한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그 수혜를 누리는 출판도시 구성원들이 차 한 잔과 함께 증언 겸 찬사를 나눈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중앙정원의 설계가 어떤 효과를 불러왔는지 수다는 보는 이도 흐뭇하게 만든다. 다시 양평으로 돌아온 선생은 겨울을 대비해 정돈해야 할 정원의 식물들에게 마음이 아파서 과격하게 손대지 못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솎아내야 식물들에게도 좋은데 차마 그럴 수 없다며 손주의 응석을 받아주듯 식물들과 소통하는 풍경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선생이 반세기 동안 노고에 대한 평가와 인정을 어떻게 얻어왔는지 수상내역이 화면 가득 등장한다. 살짝 과유불급 느낌도 들지만 이렇게 대단한 분이었던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뒤를 이어 (선생의 고향인) 대구경북 일대에서 시도된 소소한 개인주택 작업들이 소개된다. 소나무숲과 새소리 가득한,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 정원을 보는 듯한 착시의 공간들이다. 전통조경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뒤뜰이며 배산임수의 풍수지리학에서 뒤편 산과 주거공간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이는 개념을 충실하게 따르는 조경가의 철학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포항 바닷가 해안주택 석축 틈에도 씨앗이 날아와 거센 바닷바람을 견디며 억세게 번식한다는 웃음과 함께 나희덕 시인의 '여'가 화면에 그려진다. 북쪽으로 향하자 완연히 초겨울의 기색 가운데 강원도 언덕빼기 여기저기 선생의 손길이 닿아 있다. 선비들이 유람하며 풍류를 즐기던 명소의 현대적 재현이 곧 커다란 하나의 정원이 된다는 설파는 끊이지 않는다. 물론 그저 방치하는 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옮겨심어도 세심한 안배는 필수다. 사서 고생할 선생의 팔자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겨울
 
겨울의 양평,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지만 선생은 용케 정원의 식물 손주들을 알아본다. '목수국', '층꽃나무', '참억새', '황금국수나무'들을 소개하며 눈을 털고 씨앗을 털어내 챙긴다. 겨울에 아름다워야 여름에도 봄에도 아름다운 법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런 철학이 구현되어 폐허를 생명으로 채워낸 선유도 공원 사례는 도시인들에게 삶을 성찰하고 회복시켜주는 영감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콘셉트가 광릉수목원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이식되어 있었다.
 
#다시 봄
 
마침내 돌고 돌아 사계절이 한 바퀴 순환을 마쳤다. 선생의 근래 작업인 서울 식물원의 디자인에 이어 '딸기꽃'과 '흰꽃잔디', '할미꽃', '미나리아재비', '물싸리', '별수국'이 봄을 맞이해 부활하듯 등장한다. 미나리아재비에 대한 추억은 꽤 소상하다. 제왕이건 백성이건 어릴 적 간직한 추억 속 아름답던 인상이 광의의 고향 풍경으로 자리하고 끊임없이 이를 재현하고자 시도하게 마련이듯 선생 역시 미나리아재비의 샛노란 색감이 조경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게 확연한 대목이다.
 
입지를 굳건히 한 선생의 최근 대규모 프로젝트 현장이 등장하고 고집스러운 풍모가 연이어 드러난다. 프랑스의 경관관리제도인 '경관아틀라스'처럼 인문학과 철학에 바탕을 둔 조경 경관 설계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는 행정과 관료주의에 집착한다는 쓴웃음은 역설적으로 선생의 비타협적 태도와 연결된다. 클라이언트의 주문을 받아서 구현하는 기본구도 때문에 온전히 하고픈 걸 다 하진 못해도 지킬 건 지키려는 자세가 굳세다. 그 못지 않게 한 고집하는 클라이언트와 설전을 벌이면서도 최상의 결실을 위해 나아가려는 치열한 기운이 여든 넘은 저 작은 체구 어디에 숨어 있나 궁금해진다.
 
자연주의 철학의 대가 소개하는 방식의 아쉬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영화가 시작되면 북아메리카 원주민 나바호 족의 노래 구절과 함께 선생의 생태 철학을 상징하는 선유도 공원이 등장한다. 콘크리트 기둥을 감싼 나무 주변을 아이가 뛰어다닌다. 그런 모호하지만 상징적인 이미지는 후반부에서 양평 자택을 찾은 손주와 함께 손에 흙을 묻혀가며 수선화 구근을 심는 풍경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연과 공명하는 생태사회를 향한 열망이 그렇게 작은 완성태를 그려낸다. 그런 반세기 동안의 분투와 활약은 변방의 조경가에게 세계조경가협회가 수여하는 큼지막한 수상 장면들로 연결된다. 어찌 보면 사족에 가깝지만 선생의 활약상을 몇 년간 쫓으며 목격한 제작진으로선 헌사의 마음으로 밸런스 균형을 살짝 훼손하면서라도 넣고 싶었을 테다.
 
<땅에 쓰는 시>는 두 시간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데이터가 넘쳐나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근본적으로 반세기 동안 정영선 조경가가 수행한 광활한 프로젝트를 속성으로 소화하는 게 어렵기 때문일 테다. 감독 또한 과욕을 부려가면서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픈 욕망에 넘어갔음직한 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긴 하다. 시대의 장인이 일평생 일궈온 거대한 산 같은 성과를 어찌 두 시간 만에 날로 먹을 수 있을까?
 
필자도 욕심을 좀 부려보자면, 조금 더 선생의 랜드마크가 된 작업들을 추출해 선택과 집중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선유도 공원과 샛강 생태공원으로 도시 생태계 고찰에 착목하거나, 경춘선 숲길로 표상되는 도시공공성에 주목하거나 했더라면 조금 더 접근하기 쉬웠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영선 선생이 우직하게 평생 도전해 왔고 이제 제자들이 뒤를 잇는 자연주의 조경철학을 다루는 방식에서 마치 바빌론의 공중정원 같은 인공적 유토피아가 떠오르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봐버려서 더 욕망이 발현되는 것일 테다. 한국의 건축 다큐멘터리에서 일가를 이뤄가는 도상의 감독과 제작진의 다음 도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영화 관람으로 소화불량에 달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달부터 진행중인 정영선 선생의 전시로 해소할 찬스를 권해본다.
 
<작품정보>
땅에 쓰는 시 Poetry on Land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04.17. 개봉│113분│전체관람가
감독 정다운
출연 정영선
PD 김종신
촬영 박명진, 정다운, 김종신
음악 김선
편집 정다운
음향 장준구(Luke Sound 12:3)
제작 기린그림
배급 영화사 진진
 
2023 2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2023 남도영화제 시즌1 순천 개막작
2023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쇼케이스 부문 공식초청
땅에쓰는시 정다운감독 정영선 건축다큐멘터리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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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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