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가 올해부터 시험 도입한 피치클록(Pitch Clock)를 둘러싼 잡음이 개막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야구의 특성과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는 회의론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제재가 없다고 해서 구성원들의 합의로 도입된 제도 자체를 무시하는 일부 구단들의 행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3월 25일 지난 주말 열린 2024 신한은행 SOL뱅크 KBO리그 개막 2연전(23-24일)에서 집계된 피치클록 위반 현황을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틀간 9경기에서만 무려 96회에 이르는 피치클록 위반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팀별로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개막 시리즈에서 격돌한 롯데와 SSG의 경기에서만 무려 54회의 피치클록 위반이 쏟아지며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롯데가 30회, SSG가 24회로 나란히 팀별 1,2위를 기록했다. 23일 경기에서 양팀 합쳐 23회(롯데 14회, SSG 9회)를 기록했던 두 팀은 24일 경기에서는 31회(롯데 16회, SSG 15회)로 오히려 위반 횟수가 더 늘어났다. 이 정도면 사실상 피치클록을 그냥 무시한 수준이다.
 
그 뒤를 이어 한화가 13회, 두산이 10회, NC가 8회, LG가 6회, 키움과 삼성이 각 2회, KIA가 1회를 기록했다. 가장 피치클록 준수 모범 구단은 KT로 단 한 차례의 위반도 범하지 않았다. KT와 삼성(합산 2회)의 수원 시리즈, 키움과 KIA(합산 3회)이 맞붙은 광주 2연전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더 속도감 있고 클린한 경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포지션별로는 예상대로 공을 가장 오래들고 있어야 하는 투수가 62회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타자는 33회, 포수는 단 1회 위반을 기록했다.
 
 1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 경기. 잠실야구장 피치 클록 전광판에 숫자가 표시돼 있다.

1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범 경기. 잠실야구장 피치 클록 전광판에 숫자가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내년으로 잠정 연기한 피치클록 규정
 
KBO는 올시즌부터 야구 규정과 운영방식 대한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하며 자동 볼판정 시스템(ABS),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등과 함께 피치클록 규정을 도입했다. 경기시간 단축을 통하여 더욱 속도감있고 박진감넘치는 경기를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피치클록 규정에 따르면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18초, 주자가 있을 때 23초 안에 투구을 던져야 하고, 포수는 잔여시간 9초, 타자는 8초가 남았을 때까지 플레이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를 위반시에 공격하는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 수비하는 투수에게는 볼이 주어진다.
 
다만 피치클록은 올해 후반기부터 시행을 고민하다 일단 내년으로 잠정 연기했다. 시범경기를 치르는 동안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많은 규정이 바뀌면서 어렵고 혼란스럽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2024시즌에는 규정을 위반해도 경고만 하고 직접적인 제재는 하지 않는다.
 
일단 피치클록으로 인한 시간단축 효과는 분명히 드러났다. KBO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피치클록이 적용된 2024년 총 46회의 시범경기에서는 전년도 대비 평균 경기시간이 19분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프로야구 정규리그 9이닝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 12분이었다. 올해는 아직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이틀간 9경기의 정규이닝 평균 시간은 3시간 6분(연장전 포함 3시간 9분)으로 단축됐다.
 
하지만 피치클록에 대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도 여전히 적지 않다. 물론 불필요하게 경기시간이 늘어지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단순히 시간만 단축한다고 해서 야구경기의 '품질'도 좋아진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기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끊임없이 빠르게 공방을 주고받는 축구나 농구같은 스포츠와는 달리, 야구는 매 타석마다 변화무쌍한 벤치의 수싸움과 선수들간의 심리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이어서 매력포인트가 다르다.
 
KBO리그가 피치클록 제도를 도입한 것은 메이저리그(MLB)의 영향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지난해부터 피치클록을 가동하며 2023시즌 평균 경기시간이 2시간 40분으로 전년(3시간 4분)보다 24분이나 단축되었다고 발표했다. 제도에 적응이 끝난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감독들은 피치클록 위반 사례가 지적되어도 이제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만 한국야구는 메이저리그와는 상황이 다른 면도 많다. 스몰볼과 작전야구의 비중이 훨씬 높고, 그 점이 바로 한국야구만의 아기자기한 매력이기도 하다. 반대하는 이들은 한국야구의 선수층이 미국-일본보다 얇은 데다, 선수 개개인의 템포차이나 루틴을 고려하지 않은 피치클록 제도는 오히려 선수들의 부상위험을 높이고 플레이스타일의 다양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트렌드를 무조건 따라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행한다고 해도 결국 우리만의 현실에 맞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고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견제구 제한같이 비현실적인 규정들을 보완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피치클록 내년 정식 도입을 아예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
 
일부 구단들의 노골적인 반대 의사

한편으로 피치클록에 대한 찬반 여부와는 별개로, 일부 구단들의 노골적인 제도 무시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다. 피치클록 도입 당시부터 몇몇 구단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롯데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함께 피치클록에 반대의사를 보였던 KT는 일단 제도가 결정되고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한번도 위반을 저지르지 않았다. 반면 롯데는 개막 2연전만에 전체 위반 횟수의 1/3가까이를 차지한 팀이 됐다.

단순히 적응이 덜 되었다고 변명하기에는, 롯데는 2연전 내내 피치클록을 신경쓰고 최대한 지키려는 의지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정작 경기 역시 2연패를 당하며 성적도 잃고 명분도 잃었다.
 
어쨌든 피치클록은 KBO 구성원들의 논의로 거쳐 도입된 제도다. 규정상 제재가 아직 없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무시해 버린다면 리그의 원칙 자체가 무너진다. 정작 손해를 감수하면 제도를 충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한 팀들만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일부 구단들이 피치클록 제도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싶다면, 일단 주어진 제도하에서 최선을 다하여 적응하려는 노력부터 보여준 그 다음에 대안을 찾는 게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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