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질투할 만큼 뛰어난 기타리스트였다. 그런데 하필 운명이 그를 질투했다. 그는 자신을 덮친 운명과 싸워야 했다.
 
가장 인기를 얻었을 시기에 그는 어둠 속에 있었다. 예민함과 고집, 약물 중독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뛰어난 음악은 누군가는 듣는 법. 중년이 넘어서 그의 음악은 재발굴되다시피 했고, 주목받았다. 비운의 아티스트 셔기 오티스(Shuggie Otis) 이야기다.
 
셔기 오티스는 195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리듬앤블루스 가수이자 밴드 리더인 조니 오티스(Johnny Otis)다. 유전인지, 셔기는 두 살 때부터 기타를 쳤다. 11살부터 프로 연주자로 뛰었다. 아버지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기 위해 어린이 셔기는 선글라스를 쓰고 잉크로 수염을 그렸다고 한다.
 
소문이 나자 당대 실력자들이 그를 모시려고 줄을 섰다. 1969년 오르간 주자 알 쿠퍼(Al Kooper)가 그를 초빙했다. 최고의 블루스, 록 연주자들이 합세한 <쿠퍼 세션: 슈퍼 세션, 볼륨 2(Kooper Session: Super Session, Vol. 2)> 음반이다. 바로 직전에 발매한 '쿠퍼 세션' 시리즈의 기타 주자는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 스티븐 스틸스(Stephen Stills)다. 축구로 따지면 메시나 음바페, 호날두 같은 이들이 뛴 경기 직후 만 15살짜리 초짜를 투입한 셈이다. 이 음반에서 오티스는 기죽지 않고 블루스 느낌을 진득하게 실어 연주를 한다.
 
오티스가 자기 이름으로 처음 낸 음반이 바로 <히어 컴스 셔기 오티스(Here Comes Shuggie Otis)>다. 오티스가 18살 때 냈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 데뷔할 나이에 그는 연주자이자 작곡자로 성숙해 있었다.
 
 Here Comes Shuggie Otis 앨범.

Here Comes Shuggie Otis 앨범. ⓒ Shuggie Otis

 
음반에는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록을 수록해 놓았다. 펑키하고 유연하면서 섬뜩한 플레이가 곡마다 녹아 있다.
 
첫 곡 '옥스퍼드 그레이(Oxford Gray)'는 블루스 록이다. 오티스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다. 헨드릭스가 공연장에서 들려주는 즉흥연주 같다.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하고, 여유 넘치면서도 긴장감을 내포한 연주를 들려준다.
 
두 번째 곡은 사이키델릭 팝 '지니 리(Jennie Lee)'다. 오티스는 수줍고 머뭇거리는 듯 노래를 들려준다. 후반부에 나오는 기타 솔로에서는 앨버트 킹(Albert King) 영향이 느껴진다.
 
리언 헤이우드(Leon Haywood)가 연주하는 오르간과 인터플레이가 돋보이는 '부티 쿨러(Bootie Cooler)' 블루스 명가 스택스 레코드 스타일의 '셔기스 부기(Shuggie's Boogie), 통통 튀는 펑크 '허리케인(Hurricane)', 가스펠 흥취 블루스 '가스펠 그루브(Gospel Groove)', 솔 느낌의 록 넘버 '베이비 아이 니디드 유(Baby I Needed You)' 등으로 이어진다.
 
당대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였던 B.B. 킹은 그의 연주를 듣고는 "내가 좋아하는 새로운 기타리스트"라고 말했다.

오티스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음반은 1971년 낸 <프리덤 플라이트(Freedom Flight)>다. 이 음반에 있는 '스트로베리 레터 23(Strawberry Letter 23)'은 빌보드 차트에 오른다. 오티스 여자 친구가 그에게 편지를 쓸 때 딸기향이 깃든 종이를 애용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브라더스 존슨(The Brothers Johnson)이 불러 유명해졌다. 이들 노래는 빌보드 리듬앤드블루스 순위 1위에 올랐고, 노래가 수록된 음반 <라이트 온 타임(Right on Time)>은 100만 장이 팔렸다.
 
1974년 오티스는 세 번째 스튜디오 음반 <인스피레이션 인포메이션(Inspiration Information)>을 냈다. 그에게 협업 요청이 쇄도했다. 이미 프랭크 자파(Frank Zappa)와는 레코드를 만든 바 있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Blood, Sweat & Tears),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퀸스 존스(Quincy Jones)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모두 거절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사이드맨(리더가 아닌 연주자)이 되고 싶지 않았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음반사들이 그를 외면했다. 거듭된 거절에 오티스는 지쳐갔다. 예민한 기질에 약물과 알코올 중독까지 그를 덮쳤다. 재능과 관련이 없는 신문 배달과 막노동으로 생활고를 해결했다. 어두운 터널 같은 나날이 계속됐다.

1990년대 들어 틈틈이 라이브 연주를 했지만, 음반을 낸 것은 2014년 <라이브 인 윌리엄스버그(Live in Williamsburg)>였다. 그간 녹음해놓았던 실황을 편집한 음반이었다. 다시 음악계가 그를 찾아냈다.

무대 복귀 의지를 다지며 오티스는 술과 약을 줄였다. 2018년 스튜디오 음반 <인터-퓨전(Inter-Fusion)>이 나왔다. 드러머는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 출신 카마인 어피스(Carmine Appice), 베이스는 펌(the Firm) 출신 토니 프랭클린(Tony Franklin)이 맡았다. <인스피레이션 인포메이션(Inspiration Information)> 발매 이후 자그마치 44년만이다.
 
젊음을 암흑 속에서 보내야 했던 천재의 귀환. 오티스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몸소 보여줬다. 그가 신동 시절 내놓은 음반.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셔기오티스 재즈블루스 SHUGGIEOTIS 데뷔음반 HERECOMESSHUGGIEO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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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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