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 채널 <예랑이 점심> 메인 화면 캡처본

쑤 채널 <예랑이 점심> 메인 화면 캡처본 ⓒ 유튜브

 
'유튜브 쇼츠'를 아래로 아래로 무심코 내리다가, 귀에 콕 박히는 목소리와 리듬이 있다.

"예랑이~점심!"
  
경쾌한 인사에 깜짝 놀랄 새도 없이 1분 남짓한 길이의 요리 영상이 빠르게 재생된다. 영상에는 채널주인 '쑤'가 도시락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다. 프라이팬에 두르는 기름, 끓는 물에 입수하는 파스타면이 항공샷으로 지나간다. 요리를 끝낸 '쑤'가 유리 락앤락 용기 5개에 나눠 담는 메뉴를 보면 도시락이 아니라 상다리 휘어지는 한상 차림이라고 해도 믿어진다. 소갈비찜, 바람떡, 꽃게된장찌개, 낫토 등 도시락의 핵심인 간결함과는 거리가 먼 요리가 뚝딱뚝딱 완성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먹는 예랑이가 누구지?' 유치원생 자녀일 것으로 추측하며 영상을 끝까지 보다가 마지막 멘트에서 얼얼한 반전을 만났다. 예랑이는 다름 아닌 '예비 신랑'의 줄임말이었다. 도시락 양이 많아서 중·고등학생인가 싶었는데 남편인 것을 알고 '뇌에 정지'가 왔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 꾸준히 성장하는 요리 실력과 예상치 못한 반전 덕에 첫 영상을 올린 지 약 2주 만에 1만 구독자를 달성했고 현재 약 27만 명이 '예랑이 점심'을 구독한다(2023년 8월 4일 기준). 

'현모양처, 참된 아내' 칭찬이 불편한 이유

유튜브에 '도시락 만들기'를 검색하면 '자취생 도시락'부터 '다이어트 도시락'까지 비슷한 콘텐츠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레드오션 생태계 속 '예랑이 점심'의 차별성은 '여성이 예비 신랑의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만든다'에 있다. 외식 문화의 정착과 편의점 도시락의 눈부신 발전을 거스르는 수제 도시락의 등장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영상을 뚫고 나오는 부부의 사랑을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잊고 살았던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떠올라 오늘은 아이가 아닌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겠다는 댓글도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이 다른 이에게 주는 파급력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힘을 잘 들여다보면 '내조하는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치켜세우는 모순이 있다. '현모양처', '참된 여성'이라는 말이 칭찬 댓글로 달릴 때마다 여성의 요리가 바깥일 하는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로 고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튜브에 등장한 남편 도시락 만들기 콘텐츠, 어떻게 읽어볼 수 있을까. 

여성과 도시락, 그 유구한 상관관계 

'도시락'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많아진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각자 집에 있는 식재료로 요리해 와 한데 꺼내놓고 먹는 '포틀럭 파티', 밥상 물가 상승의 대안으로 떠오른 '점심 도시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에야 도시락이 1인 가구에 적합한 식사 방식이 되어 만드는 주체가 넓어졌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도시락과 뗄 수 없던 관계에 있던 주체는 여성이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남성 노인 4명 중 3명이 아내 등 배우자가 조리한 식사에 의존한 것으로 밝혀졌다. 혼자 사는 남성 노인일수록 식사 질 불량 가능성이 배우자와 함께 사는 노인보다 2.5배 높은 이유다. 이처럼 여성의 요리 그리고 도시락에는 바깥일 하는 남편을 보필해 왔던 유구한 맥락이 있다. 

그렇기에 '예랑이 점심' 콘텐츠 속 '자발적 사랑'과 '행복한 부부' 너머에는 다른 맥락이 숨어 있다. 부부의 사적인 사랑도 사회 구조 안에 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는 남편에 맞춰 새벽 5시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각종 제철 음식으로 채운 도시락은 사실 익히 봐왔던 '가부장제'의 단면이다. 

남성은 일과 존중, 여성은 요리와 정성이라는 단어로 애정을 표현하는 게 이상적인 부부 모델로 굳어진다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가부장제가 회귀할 것이다. 천사 혹은 참된 아내라는 말이 칭찬이 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 채널을 보고 살뜰히 내조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게 되지 않을까. 요리 실력에 대한 감탄이 좋은 아내 프레임에 여성을 가두고 내조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죄의식을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새벽6시 도시락싸는 주부' 채널이 말하는 것 
 
 <새벽6시 도시락싸는 주부> 채널. 조회수 높은 영상순 캡처본

<새벽6시 도시락싸는 주부> 채널. 조회수 높은 영상순 캡처본 ⓒ 유튜브

 
'예랑이 점심'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또 다른 채널도 생겼다. 채널명이 <새벽6시 도시락싸는 주부>다. 부부가 맞벌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격렬한 반응이 일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여성 노동권의 표어가 되는 현실에서 맞벌이 여성 배우자의 도시락이란 초과 노동의 초과 노동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랑은 계약이 아니다', '요즘 시대엔 없는 귀한 여성'이라는 말로 반박하며 갑론을박을 키웠다. 

논의는 또다시 여성 배우자의 내조와 마음씨를 찬양하는 것으로 덮였고 이럴수록 시대가 고팠던 것은 가부장제 회귀라는 게 명확해진다. 결국 여성의 밥상을 받는 남성이 최고라는 말, 결혼해서 '큰아기·큰아들'이 되는 남성은 언제나 돌봄과 가정일에 무지해도 된다는 시그널이 유튜브를 통해 침투하게 된다. 

여성과 요리, '성역할 가두기' 넘어 전문성으로 뻗어가길 

현모양처, 돌봄과 요리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가치 있는 것을 가치 없게 여기는 현실에서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은 더욱 빛난다. 식재료를 고르고 레시피를 고민하며 한 끼를 만드는 일,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은 무엇도 대체 못 하는 품을 가진 행위 아닌가. 그러니 여성의 요리를 다시 가정 안에,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로 축소하는 흐름에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예랑이 점심'의 남성 배우자는 '요리하는 배우자의 모습이 작업실에서 몰두하는 화가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창조의 주체가 남편 본인이라고 말했지만, 영상을 거듭할수록 그 주체가 확장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늘어가는 요리 실력과 레시피에 대한 코멘트가 더 많아진다면 요리하는 여성이 참된 아내를 넘어 화실에서 골몰하는 예술가로 보이지 않을까. 여성의 요리가 성역할로 국한되지 않고 전문성으로 뻗어갈 때 가부장제와 결별한 새로운 차원의 논의가 열릴 것이다. 
유튜브 숏 콘텐츠 예랑이 점심 새벽 6시에 신랑 도시락 싸주는 주부 가부장제 남편 도시락 만들기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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