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말]
 영화 위대한쇼맨 메인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정확히 1년 전, 배우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출연한 영화 <라라랜드>(2016)는 많은 관객들에게 전율과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서울의 한 영화관은 이 작품을 1년 내내 상영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두 남녀의 꿈과 사랑이 담긴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관객들의 마음 속에, 또 귓가에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로 남았다.

배우 휴 잭맨이 주연으로 참여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은 <라라랜드>의 뒤를 잇기 위해 탄생한 작품이다. 기획 당시 일반 전기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은 뮤지컬 영화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당연하게도 음악이었다. 이에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벤지 파섹, 저스틴 폴이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됐고, 이들은 조금 더 완벽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무대 공연을 준비하는 방식을 차용한다. 각 넘버신의 음악과 댄스 리허설을 각각 따로 진행해 추후에 합을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특히 줄을 타거나 공중 곡예를 보이는 등의 장면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물론 음악에만 신경을 쓴 것은 아니다. 서커스 단원으로 등장하는 기인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가운데서도 각각의 매력이 드러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상과 의상으로 캐릭터를 구축했다. 북미의 중심 뉴욕에서, 진정한 대중문화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인물의 사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전통을 따르기 보다 동서양과 신구 문화의 융합을 시도했다.

02.

 영화 초반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인상적이다.

영화 초반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인상적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실제로 영화는 시작부터 흥미로운 장면을 내놓으며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내달린다. 작품의 오프닝 넘버신 OST인 'The Greatest Show'는 작년 <라라랜드>의 오프닝 넘버신에서 등장했던 'Another Day of Sun'만큼이나 뜨거운 무언가를 선사하며 기대감을 높인다. 오프닝 크레딧 전 '리더 필름'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오프닝 넘버가 시작된다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OST를 활용하는 장면들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늘어질 법했던 P. T. 바넘(휴 잭맨 분)의 어린 시절과 채러티(미셸 윌리엄스 분)와의 관계, 서커스단을 만드는 초반부의 이야기를 넘버신으로 상당 부분 압축해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 사회에 대한 열등감이라던가 채러티와의 관계 등 후반부에서 이어지는 내용 때문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모두 늘어놓느라 전반부에서 힘을 빼버리기엔 바넘의 업적을 후반부에 그려낼 때 관객들의 집중력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컸다. <위대한 쇼맨>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그의 업적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일부 갖고 있다. 연출가로서 적절한 선택을 한 셈이다.

03.

 젠다야 콜맨은 공중곡예 연기를 위해 오랜 시간 연습을 거듭했다고 한다.

젠다야 콜맨은 공중곡예 연기를 위해 오랜 시간 연습을 거듭했다고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뛰어난 전문가들과의 협업,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와 함께 <위대한 쇼맨>을 받치고 있는 것은 배우들의 대단한 재능이다. 특히 2004년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휴 잭맨은 이 영화에 꼭 맞는 캐스팅이었다. 앞서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2012)에 출연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경험적인 측면을 떠나서도 휴 잭맨은 <위대한 쇼맨>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와 짝을 이루는 필립 칼라일을 연기한 잭 에프런 역시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 영화 <헤어 스프레이> 등 작품에서 뮤지컬 장르를 소화했던 적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휴 잭맨의 묵직한 목소리 위에 얹히는 그의 높으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또한 하나의 완벽한 오락적 요소로 자리한다.

또 극중에서 공중그네 곡예를 선보인 젠다야 콜맨은 대역 없이 수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며 그 장면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하니 그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04.

이처럼 다양한 매력의 <위대한 쇼맨>은 눈을 즐겁게 해주지만 심장이 떨릴 만한 감동은 주지 못한다. 전반부의 'A Million Dreams'와 후반부 'From Now On' 넘버신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문제는 드라마다. 지나친 속도감으로 인해 인물 각자의 스토리가 인종차별 문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조금 더 입체적일 수 있었던 바넘의 이야기는 단순히 실패를 딛고 일어난 사업가로만 그려진다. 이 부분에 대해 북미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의 칼럼들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와 달리 실제 바넘은 그들의 핸디캡을 사업적으로 이용했을 뿐,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

인과 관계의 원인은 상당 부분 제거되고 결과만 남아 수동적으로 나열되고 있는 점도 아쉽다. 일반 계층이 아닌 상위층의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분)를 미국으로 데려오고 월드 투어를 기획하는 내러티브가 삽입되면서, 상대적으로 서커스 단원들의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단원들의 이야기는 'This is Me' 넘버신을 통해 조명하지만 후반부 'From Now On'에 도달할 때까지 그 이야기의 힘이 전달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스토리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투어를 다니는 상황에서 생긴 제니 린드와의 갑작스런 스캔들과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린 서커스 단원들의 모습, 둘 모두를 제대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많은 관객들은 서커스 단원들의 지위와 인권을 회복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감동받는 것과 달리 영화 <위대한 쇼맨>은 원래부터 바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이 영화가 직면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는 셈이다.

05.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화려함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고자 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화려함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고자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또한,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넘버신 이후의 감정과 여운을 제대로 삭힐만한 지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많이 비교되는 <라라랜드>를 예로 들어보자.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과 미아(엠마 스톤 분)가 언덕 위에서 함께 춤을 추는 장면, 이후 미아는 먼저 차를 타고 떠난다. 세바스찬은 조금 전에 느꼈던 흥과 여운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홀로 남아서도 아스팔트에 발끝을 긁어내고 춤을 춘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빠지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 장면으로 인해 관객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세바스찬이 느끼게 된 아쉬움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전에 있었던 탭댄스 장면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위대한 쇼맨>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들이 넘버신이 끝나자마자 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에서 관객들이 감정적 공유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넘버신에서 클로즈업이나 타이트한 숏이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방해적 요소다. 제작사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풍부한 감정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질적으로 생각보다 빈약한 무대 장치를 메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넘과 칼라일이 처음 손을 잡는 술집 장면은 최근 제작된 뮤지컬 장르의 영화들 가운데 최악이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에서 최고의 넘버신은 잔재주 없이 오롯이 배우들의 몸짓으로만 가득 채워지는 'From Now On'의 술집 댄스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야 비로소 바넘이라는 캐릭터가 입체화되기 시작하고, 소외당하던 인물들의 진심이 그에게 전달된다.

06.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객이 원하는 만큼 오락적 요소들을 갖고 있고, 각각의 넘버신 역시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며 합을 이루어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시 기대의 문제였던 것 같다.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캐스팅이니 만큼, 영화 <물랑루즈>(2001)의 화려함 혹은 <라라랜드>의 가슴 저리는 여운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전 제작진이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에 올리는 것을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드라마 속에 뮤지컬 넘버들이 차용된 것이 아니라, 뮤지컬 넘버에 극이 이용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어쩌면 진한 드라마가 녹아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아닐까.

영화 무비 위대한쇼맨 휴잭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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