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전주국제영화제 고사동 영화의 거리

25회 전주국제영화제 고사동 영화의 거리 ⓒ 전주영화제 제공


윤석열 정권의 영화제 예산 삭감으로 국내 영화제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10개 지원영화제에 포함된 전주국제영화제가 지난 10일 폐막식을 끝으로 무난히 마무리됐다. 국내 영화제들의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예산 삭감 폭이 덜했던 전주영화제였으나, 지난해보다 줄어든 살림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결과는 성공이었다. 영화제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관객 수는 지난 9일까지 6만6800명으로 지난해 6만6028명을 넘어섰다. 폐막일 집계를 포함하면 최종 관객은 6만7천 명에 달한 수준으로 코로나19 이후 관객 증가세가 이어진 것은 긍정적이다. 전주영화제의 평균 관객은 6만5천에서 7만 정도다.

"전주에서 신작 제작" 발표한 차이밍량 특별전

올해 전주영화제는 여러 부문에서 성과가 돋보였다. 특히 대만의 거장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 전편 전 세계 최초 상영은 단연 주목받았다. 2012년 <무색 無色>으로 시작해 202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열 번째 작품 <무소주 無所住>까지 이어진 '행자 연작' 10편은 18회 차 상영 중 12회가 매진될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차이밍량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 이강생 배우는 영화제 초반 흥행의 주요 키워드였고, 차이밍량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행자 연작의 열한 번째 신작을 전주에서 촬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주영화제의 예우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기념전에 맞춰 발간된 책자는 감독에게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차이밍량 특별전은 문성경 프로그래머가 긴 시간 꾸준히 접촉하고 공들인 기획이었다. 프로그래머와 감독 간의 신뢰가 쌓이며 멋진 성공을 이뤄낸 것이었다. 관객들이 참여한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는 주말 영화의 거리에서 관심을 집중시킨 이벤트로 차이밍량 감독과 이강생 배우가 거리에서 관객과 호흡한 행사라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 4일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에 몰린 관객들

지난 4일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에 몰린 관객들 ⓒ 전주영화제 제공

 전주영화제 골목상영

전주영화제 골목상영 ⓒ 전주영화제 제공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 역시 의미를 잘 살린 기획전이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 개최된 전주영화제는 침울한 분위기에서도 무능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영화인들의 분노가 치솟던 시간이었다. 이후 화제가 됐던 <다이빙벨>의 제작과 부산영화제 상영 논의 출발점이 전주영화제였을 만큼 세월호 참사 이후 영화인 행동의 바탕이기도 했다. 세월호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 건 전주영화제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기획이었다.

골목상영도 연차가 쌓이며 관객의 관심을 끌게 했다. 영화에 집중하기 좋은 장소를 선택하면서 거리에서 보는 영화의 맛을 즐기게 해 관객의 만족도를 높였다. 지역영화를 선정한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 프로그램도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창작자들에게 힘이 됐다.

영화 해방구 알린 독립영화인 시위
 
 폐막식 레드카펫에 선 (왼쪽부터)박영완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폐막식 레드카펫에 선 (왼쪽부터)박영완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 전주영화제 제공

 독립영화인들의 영화예산 삭감 항의 시위에 동참한 정지영 감독(가운데)

독립영화인들의 영화예산 삭감 항의 시위에 동참한 정지영 감독(가운데) ⓒ 전북독협 제공

 전북 독립영화인들과 함께 영화 예산 삭감 항의에 동참한 민성욱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

전북 독립영화인들과 함께 영화 예산 삭감 항의에 동참한 민성욱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왼쪽) ⓒ 전북독협 제공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것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영화예산 삭감 등에 대한 토론의 장이었다. 영화계 주요 현안에 대해 전주영화제가 좋은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이하영 운영위원이 제기한 객단가 문제는 순식간에 영화계의 이슈가 됐다. 불공정한 스크린 불균형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포럼을 활용해 지역영화와 영화제 예산 삭감 등에 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 것은 영화제의 긍정적 기능이었다.
 
개막식부터 시작된 독립영화인들의 항의 시위는 영화의 해방구로서 전주영화제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영화제 기간 내내 상영관 앞에서 진행된 피켓 시위에는 정지영 감독, 허진호 감독을 비롯해 국내 상영관 관계자들까지 동참하며 영화예산 삭감 문제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전주영화제 역시 민성욱 집행위원장과 문석 프로그래머 등이 동참하면서 연대했다. 폐막식에서는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과 박영완 전북독립영화이사장을 레드카펫에 세우는 방식으로 예우해, 영화제 예산 삭감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운영 과정에서 일부 문제점들이 지적되기는 했으나 매해 스태프들의 변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고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계속되는 정준호 논란은 부담
 
 전주영화제 개막 리셉션에서 공동 집행위원장 정준호 배우

전주영화제 개막 리셉션에서 공동 집행위원장 정준호 배우 ⓒ 전주영화제 제공

 
하지만 올해 성과의 빛을 바래게 만든 건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준호였다. 영화제 기간 중인 8일 대전 유성의 한 유흥업소에서 목격되어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 측은 협찬 업무였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국내외 영화제 관계자들은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관련기사 :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대전 유흥주점 간 정준호 집행위원장).

10년 넘게 전주영화제를 이끌었던 민병록 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영화제가 끝나가는 시점에 협찬 업무를 위해 대전 유흥주점에 갔다는 것은 집행위원장으로 자격이 없다"고 직격했다. 영화인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전에서 누가 비용을 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영화제 관계자들은 위원장이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요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개막식에서 발언은 집행위원장 수준을 의심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는 개막식에서 정준호 위원장이 인사말을 시작하며 "유지태 배우 등이 입장하고 마지막에 들어오는데 소녀팬들이 '정준호가 제일 잘생겼네'라고 하더라. 사람 볼 줄 아는구나(생각했다)"고 말한 것을 지칭한 것이다. 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이 자기 자랑을 내세우며 가볍게 처신한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영화제 기간 중 예산 삭감 항의 시위를 벌인 전북독립영화협회 관계자도 "많은 영화인들이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데 정준호 위원장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정 위원장이 독립영화의 저항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전주영화제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윤석열 정권의 예산 삭감 문제가 실질적인 문화계 탄압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태도는 영화제와 겉도는 정 위원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소속의 한 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집행위원장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주영화제 폐막 리셉션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과 정준호 배우

전주영화제 폐막 리셉션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과 정준호 배우 ⓒ 전주영화제 제공

 
전주영화제는 20년 넘게 이어져 오며 국제적 위상을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우범기 전주시장이 영화제 성장과 거리가 먼 배우를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하며, 영화계의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당시 영화계의 반대를 묵살한 우범기 전주시장이 전주영화제의 걸림돌이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송희일 감독은 정준호 위원장의 대전 유흥주점 출입 논란에 대해 '우범기 매직'이라고 비판했다. 전주시장에 의해 영화제 독립성이 훼손된 부담감을 전주영화제가 계속 안고 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독립성 확보는 전주영화제 발전의 필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주시의회 내에서도 전주영화제가 별도의 독립 법인인 만큼 독립성을 지킬 수 있게 전주시의 개입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주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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