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천사의 시> 포스터

<베를린 천사의 시> 포스터 ⓒ Argos Films

심장 전문의사인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사망하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실의에 빠진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는 한 남자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그녀 곁을 지키며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준다.

그러나 그 남자를 볼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한 사람 뿐이다. 바로 심장 전문의사인 그녀. 천사인 그 남자와 인간인 그 여자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이다.

맺어질 수 없는 천사와 인간의 사랑 앞에서 천사는 괴로워한다. 결국에 천사는 그 여자와의 사랑을 위하여 인간이 되고자 하고, 천사의 길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인간이 된 천사 그리고 그 천사를 기다리는 여자. 이제 그들에게 벽은 사라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니콜라스 케이지, 맥 라이언 주연의 1998년작 <시티 오브 엔젤>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줄거리 자체는 다르지만 천사와 인간의 사랑, 인간이 되고 싶은 천사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비슷한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 원작은 바로 빔 벤더스 감독의 1987년작 독일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다.

인간이 되고 싶은 한 천사의 이야기

어느 겨울의 베를린. 다미엘과 카시엘이라는 두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 그들은 다양한 인간들의 사연을 듣고 보며 그들을 위로한다. 그러던 중에 다미엘은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커피의 맛은 어떠한지, 시원하게 부는 바람의 느낌은 어떠한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공중곡예사로 일하고 있는 마리온을 알게 된다. 마리온에게도 위로를 해주던 중에 다미엘은 그녀에 대한 남다른 자신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카시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미엘은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과 더불어 사랑을 느끼고 싶어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서 배우로 살고 있는 피터 포크의 도움을 받아 다미엘은 천사에서 인간이 되어간다.

빔 벤더스의 잔잔한 판타지 드라마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천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판타지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천사가 등장한다는 설정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거의 일반적인 드라마에 가깝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한 천사의 고뇌가 극 전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천사가 등장한다고 하여 특별히 판타지 요소가 가득한 장면이 연출되지도 않는다. 극 초반에는 다미엘과 카시엘을 통해 천사의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보여져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다미엘의 고뇌가 시작되면 영화는 일반 드라마에 가까워진다.

<파리, 텍사스>의 빔 벤더스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최근 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최근작인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 <텐 미니츠 트럼펫>,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등으로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한 장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한 장면 ⓒ 양기승


흑백과 칼라의 조화로 이뤄지는 두 세계

빔 벤더스 감독이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특별함을 선사하는 부분은 색채에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흑백으로 세상을 그려낸다. 1987년작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더라도 일부 관객들은 흑백 영화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는 중간중간 칼라로 세상을 비췄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완전하게 칼라로 모든 세상을 표현한다. 흑백과 칼라의 경계는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뚜렷해진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이 흑백과 칼라가 의미하는 것은 천사가 보는 세상과 인간이 보는 세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미엘과 카시엘이 보는 인간 세상은 흑백으로 표현되고, 인간이 보는 세상 자체는 칼라로 표현된다.

즉, 천사들은 색깔조차 보지 못하는 감정이 없는 존재들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미엘이 천사로 살아가는 영화의 초중반에는 대부분이 흑백으로 그려지고, 그가 결국에 인간이 되는 영화 결말 부분에서는 전체가 칼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천사의 처지가 되게 한다.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색깔조차도 보지 못하는 천사의 처지를 이해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미엘이 인간이 되었을 때, 색깔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는 장면이 더 특별해지는 것도 모두 이 효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천사에서 히틀러가 된 그 배우, 브루노 간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일부 어떤 이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개봉 당시에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 천사의 고뇌가 가득한 영화가 특별한 즐거움을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이다.

천사라는 특별한 존재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이나 감정적 즐거움은 없지만 영화는 잔잔하게 잘도 흘러가는 편이다.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가득찬 표정을 한 다미엘의 고뇌에 빠져들 수만 있다면 그 천사를 따라 영화는 쉽게 볼 수 있는 편이다.

더 재밌게 보려면 다미엘을 연기한 브루노 간츠에게 집중하면 될 것이다. 앞서 '독일영화 다이어리'에서 언급한 바 있는 <몰락 : 히틀러와 제3제국의 종말>에서 히틀러를 연기한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나온 시간 순서대로 보자면 그는 천사에서 히틀러가 된 셈이다. 연기의 폭이 넓은 브루느 간츠에게 집중하여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게 되면 또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1987년 제4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제10회 몬트리올 영화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 외에도 바바리안 필름 어워드, 유러피안 필름 어워드, 뉴욕 영화 비평 협회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 주연상, 최우수 촬영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독일영화 다이어리 빔 벤더스 베를린 천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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