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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문신한 사람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일하는 사람들의 먹고 '사는' 이야기 - 노동절 특별기고 ⑤] 국가의 직무 유기, 1300만 명 들어가는 '블랙홀'

등록 2024.05.03 10:55수정 2024.05.0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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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날, 벌써 134년에 이른 노동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한다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떤 노동자는 ‘노동자’라고 불리지도 못한다. 저임금의 노동자는 초저임금을 강요받고, 그리고 또 어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했다고 받은 모욕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노동을 대하고 있나. 이 연재는 민주노총이 전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의 ‘일’ 이야기다. 우리의 일, 우리 일상의 이야기.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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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7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타투유니온지회가 설립됐다. ⓒ 화섬식품노조

 
2020년 2월 27일, 타투이스트들의 노동조합인 타투유니온이 탄생했다. 기자들이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 점잖은 척 질문을 던졌지만 내용은 그다지 점잖지 않았다. 요지는 '너희가 왜 노동자냐'라는 것이었다.

답변을 거부했지만 결국 "문신 잉크 쓴다고 화학 노동자? 문신업자까지 끌어들인 민노총"(2020년 3월 5일 자 <조선일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내심 '당신처럼 한심한 기사를 써도 언론 노동자인데,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하는 타투이스트의 노동자성은 왜 부정하느냐'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분풀이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이들은 그저 모든 노동자에게서 '노동자'라는 이름 그 자체를 박탈하는 것만을 바라는 것 같은데.

구멍에 빠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자성을 부정당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의미다. '기준 밖에 놓인 존재'. 부정당한 노동은 국가의 직무 유기에 좋은 핑계를 제공한다. 사회는 좁고 얇은 기준을 만들고는 그 기준 바깥으로 사람들을 몰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외면하고 버려둔다. 그들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타투이스트들의 예를 들어볼까. 당장 주변을 둘러보자.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누구와든 네 명의 그룹을 만들고 그중 몸에 그림 타투가 있는 사람, 눈썹이나 아이라인 등의 미용 타투가 있는 사람을 세어보자.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사람은 타투를 가지고 있다. 2020년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 4명 중 1명이 타투를 했다. 무려 1300만 명이 타투를 경험한 나라에서 타투는 불법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절반 가량 눈썹 문신을 하고 있다. 눈썹이 관운에 영향을 준다는 관상 업계의 풍문 덕이다. 현행법대로라면, 이들은 모두 국가의 보호 밖에서 국가가 말하는 불법 의료행위를 청탁하고 받은 사람들이며 이들에게 타투를 해준 작업자들은 모두 범법자다.

쉽게 불법을 말하고, 존재하는 사람과 벌어지는 일을 기준 밖으로 내몰아낸 국가는 마치 타투이스트와 타투는 세상에 없는 일인 양 군다.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국가의 직무 유기 때문에 사람의 피부에 상처를 내어 잉크를 넣는 행위에 대해 소비자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타투 노동자들의 양심에 따라 외국의 규정을 도입하여 지키고 있지만, 국가가 이를 관리하지 않으니 결국 애꿎은 소비자들의 안전에 큰 구멍을 생긴다. 1300만 명이 들어가는 구멍이라면 가히 블랙홀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타투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도 있다. 몸에 수십 개의 타투를 받고 돌아가서 타투이스트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할 테니 수백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던 파렴치한도 있었다.

타투를 받은 1300만 명은 불법 의료 청탁, 타투이스트 30만 명은 불법 의료행위자, 그리고 파생되는 사기와 협박 범죄까지. 존재하는 이들을 기준 밖으로 밀어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사회가 방기했을 때 만들어진 괴이한 우주.

구멍을 메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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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9일 문화예술노동연대(대표 안명희) 회원들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노동자성 인정'과 '노조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게임개발자연대, 공연예술인노조, 뮤지션유니온, 웹툰작가노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타투유니온지회, 방송연기자노조 등이 소속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문화예술노동자들은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로 분류되어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시혜적 보호가 아닌 권리를 가진 노동자로서 모든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권우성


사실 이렇게 기준 밖에 놓인 노동자는 타투이스트 뿐이 아니다. 4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1장 1조는 법의 목적을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정한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는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하긴 법의 이름부터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닌 노동자는 노동자의 기준 밖에 있다는 말이겠다. 그렇게 이 나라는 타투이스트들을 포함하여 400만 명의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하고 있다. 4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다.

구멍을 메우지 않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400만 명의 '존재하는' 노동자들을 기준 밖으로 몰아내면 어떻게 될까. 기준 밖으로 몰아낸다고 이 존재는 사라지는 것일까. 기준 바깥의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생산의 결과는 이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타투유니온은 설립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병원인 녹색병원의 도움으로 '타투이스트 감염관리지침'을 제작했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용역에서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완벽한 감염관리지침'이라는 찬사를 듣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녹색병원이 만든 '타투이스트 감염관리지침'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엄격한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이 기준을 지킬 수 있는 멸균 작업 절차도 함께 개발됐다. 멸균 규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멸균 가능한 타투 머신'과 부수적인 도구들까지 국내 업체를 통해 개발해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한국은 세계 유일의 타투 불법 국가이며, 멸균 타투 작업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타투 문화 선진 국가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400만 명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국가와 사회가 그들을 '기준 밖의 노동자'라고 내몰고 있지만 이 사회는 그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움직이고 있다. 마치 타투가 불법인 나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타투이스트들이 나오는 것처럼. 타투를 불법이라고 말하는 국회의원들도 타투를 받고 있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쳐도 그들의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다. 

타투유니온처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노동조합이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완벽하게. 선의를 가진 당사자 조직이 할 수 있는 일을 국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직무 유기를 벌해야 하는 것인지, 무능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제 몸에 불을 붙인 지 50년이 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할 자격도 얻지 못한 채 2024년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요구, 그러니까 우리의 요구는 어쩌면 너무 황당할 정도로 쉽고 단순하다. 우리가 노동자임을 인정하라. 우리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사무장입니다.
#노동절 #타투 #타투유니온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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