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8 11:20최종 업데이트 24.04.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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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숏폼 콘텐츠가 유행이다 ⓒ Marco Verch

 
지하철을 타면 80% 이상이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짧은 영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유튜브의 '쇼츠', 인스타그램에선 '릴스'라고 말하는 영상입니다. 쉴 새 없이 넘어가는 모습에, 남이 보는 영상을 쳐다보게 됩니다. 손가락을 위아래로 튕기면 알고리즘에 따라 '알아서' 영상이 넘어갑니다. 대부분 짧고 압축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쇼츠 중독'에 대한 우려가 여러 언론에 쏟아지지만, 짧은 시간에 재미있고 유용한 콘텐츠를 많이 볼 수 있다는 매력을 무시할 순 없을듯합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긴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보기에는 바쁘고 피곤하기도 하고요. 저도 스포츠, 웹드라마, 음식 관련 쇼츠를 즐겨봅니다.

맥락이 삭제된 사회

그러나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는 쇼츠 유행이 달갑지 않습니다. 쇼츠를 소비하는 것처럼, 뉴스 소비의 양태도 빨라졌습니다. 독자는 이슈를 단숨에 파악하고 판단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사건일수록, 선악 구도가 명확할수록 주목받습니다. 주로 충격적인 행동(범죄)이거나 발언에 대한 것이겠죠. 커뮤니티에 올라온 개인의 일탈적 행위가, 수만 명이 참여하는 도심 시위보다 더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정훈님이 지난 편지에서 '선거 이후 시급하게 다뤄야 할 주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물으셨는데요.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중요한 사회 문제를 '전혀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요. 

약자의 목소리는 대체로 '구구절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하고 분통한 일도 많을뿐더러, 기득권의 언어나 시각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것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상대하는 정부나 대기업의 반박은 쉽고 정확합니다. '불법', '시민들에게 불편', '빨갱이'까지 말이죠.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전달하기 어렵고 복잡합니다. 이러한 기사들은 쓰기도 어렵고 잘 읽히지도 않습니다. 반면 약자의 저항을 물리치는 언어들은 쉽고,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 안에 있습니다. 쓰기도 쉽고 잘 읽히죠. '쇼츠 시대'는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버스가 12년 만에 파업을 했습니다. 통상 파업 직전에 노사협상이 타결됐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시내버스가 길거리에 한 대도 없는 순간,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버스의 존재감을 크게 느꼈을 겁니다.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파업 찬반투표 당시 밝힌 호소문이 온라인 상에 퍼졌다. ⓒ 온라인커뮤니티

 
파업의 효과는 컸습니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뒤늦게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파업 찬반투표(3/23) 당시 조합원들에게 낸 호소문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측은 우리 노동조합에게 '돈 몇만 원 갖고 벌벌 떠는 너희가 파업할 수 있겠어? 할테면 해보라'고 합니다. 어차피 조합원 절반 이상은 사측의 지시를 따르고, 파업 시작도 못할 테니 임금협상에 임하지 않겠다고 조롱합니다. (...) 도대체 왜 한 가정을 책임지는 삶의 무게를 겨우 견디고 있는 우리가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측으로부터 이따위의 모욕을 들어야 합니까."

박 위원장의 호소문을 통해 많은 이들이 왜 파업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물론 그 글 역시 버스 기사들이 일을 멈추는 '충격'이 없었다면 공유되지 않았겠지만요.

28일 오후 3시에 노사협상이 타결돼 파업은 금세 끝났습니다. 하지만 파업이 계속 이어졌으면 어땠을까요. <중앙일보>는 이날 오후에 <연봉 1위인데...인천보다 인상률 낮다며 파업했던 서울버스 노조>라는 기사를 냅니다. 서울 시내버스 운행사원 평균 월급이 542만~551만 원 수준이라며, 연봉 인상을 주장하는 노조를 비판하는 뉘앙스였습니다.

지난 13일 <조선비즈>도 <'파업하면 올스톱' 법 구멍에 서울 버스기사 월급 500만원 넘었다>라는 기사를 통해 "서울 시내버스 노조가 최근 11시간 동안 파업을 벌여 17년 만에 가장 높은 임금 인상률을 얻어낸 것으로 나타났다(...)지하철과 달리 시내버스는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도로에 아예 버스가 다니지 않게 되는 법의 맹점이 문제로 지적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의 이동권을 볼모로 하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함께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대로 시내버스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노조법 개정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합니다. '파업하면 올스톱', '월급 500만 원', '시민의 이동권 볼모'... 파업이 계속됐으면 어떤 말들이 나왔을지 아찔합니다. 

'맥락이 소거된 기사'란 이런 것이겠죠.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처우는 '업계 최고'라고 불립니다. 일정 수준의 경력이 쌓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5일제 40시간만 근무하는 것이 아닙니다. 1일 2교대, 연장 근무는 당연하고 야간에도 주말에도 일합니다.

출퇴근이 불규칙하고 일의 강도도 높은 편이죠. 기본급보다 수당이 더 많은 일입니다. 왜 그들이 파업하게 됐는지는 기어코 버스를 멈춰야 알게 되는 반면, 파업을 막는 논리는 '도표' 하나와 '월급 500 받는 버스 기사'라는 말 하나면 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비슷한 일은 끝도 없습니다. 2023년 1월 2일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 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라는 재난 문자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글귀만 보면 장애인 단체가 지하철을 점령하고 떼를 쓰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언론이 그러한 내용으로 보도를 했고요.

그러나 맥락을 살펴보면 시위가 이해됩니다. 전장연은 당초 이동권·활동 지원 등을 위한 장애인 권리예산 1조 3044억 원 증액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이 중 6653억 원 증액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습지만,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에선 106억 원 증액에 그쳤습니다. 전장연 요구안의 0.8%에 그친 것입니다.

또한 전장연은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5분 넘게 지연시키는 방법의 시위를 하지 말라"면서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마다 공사 측에 500만 원을 지급하라"라는 내용의 강제조정 내용을 수용해 지하철 선전전을 5분 이내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시위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1분만 늦어도 큰일이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연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면서 조정안을 거부하고,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는 겁니다. '지하철 선전전 전면 통제', '삼각지역 무정차' 등 서울교통공사의 강경 대응 역시 오 시장의 대응 기조가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쇼츠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진실을 담아내는 일을 언론이, 그리고 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저도 '맥락이 삭제된 사회'에 물들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일 테니까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 <괴물> 스틸컷 ⓒ (주)NEW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멈췄는데 내 앞에 트럭이 한 대 있었다. 그런데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는데도 한참을 꼼짝하지 않는 거다. 이상해서 경적을 몇 번 울렸다. 잠시 뒤 트럭이 움직이고 나서야 휠체어에 탄 사람이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트럭은 그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것뿐이었다. 그때 사정도 모르고 경적을 누른 게 내내 마음에 남았다." 

한 개의 사건을 여러 주체의 시점에서 바라본 영화 <괴물>의 각본을 쓴 사카모토 유지는 <씨네21> 인터뷰에서 시점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은 본인의 경험이 반영됐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쓴 드라마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횡단보도 앞까지 가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도와드렸다는 게 다른 점이긴 하지만요.

정훈님도 라이더로 일하면서 느끼셨겠지만, 사람들이 경적을 참 쉽게 누릅니다. 도로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그렇습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심판하고 단죄하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집니다. 거기에 '왜'라는 물음이, 누군가의 사정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정훈님이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신 '노조 혐오' 역시 이런 환경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겠죠.

정상성에서 벗어나거나,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을 우리 사회는 쉽게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이념에 경도됐거나, 돈 욕심에 빠지거나, 소영웅주의에 도취된 이들로 몰아세우기 바쁩니다. 그 과정에서 '나와 같이 복잡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망각되지요. 하지만 어떤 삶이든 한 단어로 규정될 수는 없습니다.

맥락이 소거되는 '쇼츠 시대'에 복잡하고, 길고, 울퉁불퉁한 삶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그들에게서 '괴물'이라는 오명을 벗길 수 있을지가 저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정훈님은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떤 방식의 새로운 투쟁을 고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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