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5 06:57최종 업데이트 24.03.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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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근무하는 모습. 2022.1.13 ⓒ AP/연합뉴스


한국 사회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진통을 겪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다수 여론이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안에서, 의사들이 보여주는 강도 높은 집단 행동은 여러 질문을 야기했다. 사직서를 던지며 정부에 항의하는 의사들은 "한국 의료계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라고 말한다. 의료계의 문제는 구조 불균형 (지방과 수도권 격차, 필수의료 과목에 의사 부족 등)에 있지 전체 의사 숫자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다른 문제' 해결을 위해선 소리 높여 싸우진 않았던 걸까?

프랑스 의사들도 싸운다, 의료인력 확대를 위해

프랑스 의료인들이 집단행동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곳 의료인들이 내거는 투쟁의 구호는 20년째 한결같다. "병상수를 늘려라", "의료 인력을 확대하라", "병원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라".  좌우의 정치세력이 권력을 주고받으며 집권해 오는 동안, 그들은 하나같이 공공 부문 지출 축소에 총력을 기울여 왔고, 병원과 학교는 긴축 재정의 가장 큰 상처를 입는 분야가 되었다.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복도에서 24시간 기다리다 진료 한 번 못 받고 죽은 환자의 사례가 종종 전파를 탄다. 또한 병원에서 수술 약속을 잡는데 2~3개월이 걸리는 것은 시민들이 흔히 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의료인들의 투쟁은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는다. 의사들의 요구가 시민들의 필요와 직결되는 현상은 프랑스 의료 시스템의 바탕이 공공 의료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 병원이 보유하고 있는 병상의 75%(공공 병원 66%, 비영리 민간 병원 9%) 는 공공 혹은 준공영 의료시설이다. 이러한 시설에서 입원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을 경우, 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 필자가 20년간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출산과 산부인과 수술로 두 차례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1인실에서 머물렀지만 추가 지불한 비용은 없었다.  

두 차례 암 수술을 받은 시누이, 척추 사고로 2개월간 병원에 누워 있었던 남편, 심장 판막 수술을 받은 지인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지불해온 의료보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여기저기 삐걱거리지만, 누군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야 할 때면 공공 의료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된다.

이런 시설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에겐 의료진 수가 늘어나고, 정부가 병원 시설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근무 조건 개선이고 복지인 동시에 시민들에 대한 쾌적한 의료 서비스 제공의 기반이 된다. 반면 공공의료의 파괴는 그들의 근무 환경의 파괴요, 자부심의 파괴인 동시에 환자들에 대한 의사로서의 사명 불이행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투쟁은 의사 개인의 이해를 도모하는 동시에 공공의 이익을 사수하는 싸움이 된다.

한국은 공공 의료 기관이 8.8%에 불과하여, OECD 국가중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 의료 시설로 분류된 경우라도, 결코 그것이 비영리 시설은 아니라는 데 맹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국공립 의료시설인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진료받는 사람들은 상당한 진료비, 입원료를 내야 한다. 국가가 경영하는 의료 시설이지만 성과급제 등을 내세워 흑자 경영, 수익성 위주 경영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연 어떤 대목에서 '공공 의료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는 종종 대한민국의 의료 제도가 세계 최고라는 자족적 평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공공의료 제도가 없는 미국이나 멕시코와 비교했을 경우에만 가능한 얘기임을 알았으면 한다.

22분 진료하는 프랑스 의사 vs. 4분 진료하는 한국 의사
 

1657년 세워진 파리의 가장 유서 깊은 대학병원 살페트리에 병원 ⓒ 위키미디어 공용

 
차마 공공 의료 시설을 전면 민간 시설로 바꾸는 과격한 변화를 도모할 수 없었던 프랑스 정부는, 서서히 의료 인력을 줄여갔고 시설을 운영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병상수도 줄여갔다. 

지난 16년간 7만 5000개의 공공의료 병상이 축소되었고, 마크롱 정부 들어서 사라진 병상만도 1만 7600개에 이른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 전체를 점진적으로 시장 지배 질서 하에 놓고자 전력을 다해온 유럽연합 집행위는 2011~2018년 사이 63차례에 걸쳐, 회원국들에게 보건복지 예산 축소를 요구했다고 독일의 유럽의회 의원 마르탱 시어드반이 폭로한(2020.4.2. l'humanité) 바 있다. 회원국들은 이러한 유럽연합의 방침에 따라, 공공 의료 예산을 축소하면서 자국의 공공 의료를 점진적으로 파괴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프랑스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3.4명이다. 한국(2.6명)보단 높지만 OECD 평균 3.7명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프랑스 의사들의 1차의료 진료시간은 평균 22.2분이었다. 이는 4.3분에 불과한 한국에 비해 훨씬 길 뿐 아니라, OECD 평균 16.4분 보다도 길다.

의사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 나라 의사들은 찬찬히 환자들을 살피며 대화하고, 진료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으니 환자들은 이래저래 기다려야만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할 현명한 해법은 의사들이 진료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일 터이다.  

한국의 의사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진료를 하면서, 연간 기록적으로 많은 환자(6113명)들을 진료한다. (OECD 평균 : 1786명, 출처 :Health at glance 2023 OECD). 평균치보다 4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진료하므로, 4배 많은 환자들을 만나는 한국의 의사들은 단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언정, 정신과 육체는 혹사될 수밖에 없고 환자들은 초고속 진단과 처방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의사 수를 좀 더 늘리는 것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2021년부터 의대 정원 1만 명으로 늘린 프랑스
 

파리-사클레이 의과대학의 전경 ⓒ 파리의과대학 홈페이지

 
줄곧 악화일로에 있던, 프랑스의 의료 환경은 2021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시행되어 오던 의대 2년 차 정원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폐지하고, 각 의과 대학이 1) 학생 수용 가능 능력 2) 해당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인력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의대 2년차 정원을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의대 정원의 확대로 이어지면서, 5년동안 매년 약 3천명의 학생들을 추가로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23년 의과대학 2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은 약 1만명에 이른다. (치의예과, 약학과, 조산과를 포함하면 1만 5000명). 한국에 비해 인구(6800만명)는 1.3배 많지만 의대 정원은 3.3배(한국은 현재 3천여명)에 이르는 셈이다. 이러한 개혁은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바이기도 했다.  

68혁명의 거센 파고 이후, 대학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공간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교육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의대를 찾는 인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교육의 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의사 양성에는 필연적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에, 국가 차원에선 비용 절감의 목적도 실현하는 차원에서 의대생 정원에 개입하게 된다 (1971년).  

모든 학과들과 마찬가지로 1학년에는 의대 입학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등록할 수 있지만, 성적이 좋은 1/4 정도의 학생만이 2년 차로 올라갈 수 있던 방식이 거의 50년 동안 진행되어 왔다. 그 결과 1972년 1만 1000명이었던 의대 2년차 학생 수는 1981년에 6000명으로 감소했고, 이러한 제도가 지속되면서, 의사 수 절대 부족의 현상을 야기하게 된다.

훈련된 의사 수가 제한되어 있던 탓에, 그나마 있는 의사들은 대도시에 집중되었고, 농촌 지역엔 의료 인력을 찾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수련의들의 업무 과부하로 이어지면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의대생 이탈 현상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뒤늦게 정부가 이 제도를 폐지하면서 의사 수 확대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2030년대에 이르러서야 추가된 수의 의사들이 배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인센티브 지원 등의 방안을 제시하며, 의료 사각지대에 대한 해법도 모색하고 있다.  

의사 될 수 있는 통로의 확대

정부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접근 통로도 개편했다. 과거에는, 의대, 약대, 치의대 등 모든 보건의료 관련 학생들의 공통 학년으로 1학년이 존재했으나, 이는 2021년부터 보건의학 전공자들을 위한 과정(PASS)과, 다른 분야의 과정을 배우면서 보건의학을 옵션으로 들을 수 있는 학사 과정(L.AS) 두가지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두가지 통로를 만든 것은 의과대학에 접근하려는 학생들의 폭을 넓히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PASS 과정을 선택한 학생들은 부전공으로 다른 과목들 (즉, 생물학, 물리학, 화학, 교육학, 철학, 심리학, 지구과학 등)을 부전공으로 택하여 들을 수 있고, L.AS를 택한 학생들은 다른 공부를 하면서 의학을 옵션으로 택할 수 있다.

2023년의 경우 PASS 과정, 즉 의대에서 1학년을 보낸 학생들의 74%가 의대 2년 차로의 진급에 성공했고, L.AS 계열의 학생들은 18%만이 의대 진급 시험에 성공했다. 후자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 공부(생물학, 화학, 심리학 등)를 하는 3년 동안, 의대 2년차 진입 시험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적인 진급 성공률은 달라질 수 있다.

의대 쏠림은 없는 프랑스, 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Health at a Glance 2023)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 개원 전문의의 연평균 소득은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보다 6.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프랑스 고교생들에게 의대 쏠림 현상은 없다. 의사가 특권층이라는 의식도 특별히 깔려 있지 않다. 의사는 긴 수련 과정에 비해, 그 보상이 특별히 크지 않기 때문에, 의술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성실하고 진득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이다.

프랑스 일반의의 평균 연봉은 약 9만 유로(약 1억 3천만 원)로, 일반 노동자 평균 급여의 3배 가량이다. 한국의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약 2억 6천만원으로 프랑스 의사들의 2배이며, 한국 노동자 평균 연봉과 비교하면 6.8배로,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의사와 일반 노동자 사이 가장 큰 임금 격차를 드러내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1980~90년대까지 한국의 엘리트들이 그러했듯,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학생들은 연구자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세기 이후, 졸업생 수 대비, 가장 많은 노벨상을 수상한 학교로 집계되면서, 하버드 대학을 제치고, 노벨상 수상 1위 학교로 꼽힌 파리 고등 사범 학교(ENS)나 기술 과학분야의 인재와 테크노크라트들을 키워내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등의 그랑제콜에는 아예 의예과가 없다.  

병상수를 무자비하게 축소해 오던 프랑스는 마침내 공공 의료 파괴의 브레이크를 밟고, 상황 재정비에 들어갔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으나, 반전의 계기는 간신히 마련된 셈이다.

의대로 향한 지독히 좁은 문,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바쳐야 하는 과도한 희생, 수련의들과 의사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짐, 그러나 7배에 가까운 금전적 보상. 이 모든 것들은 의대와 의사라는 직업을 둘러싼 오늘 한국의 격한 현상을 설명해 주는 단서들이다.

그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자본'이라는 하나의 가치에 지배당한 한국 사회가 있다. 이 혼란의 파고를 가라앉히는 그 단서 또한 '자본'의 막강한 힘을 다소나마 무력화시키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데서 찾아질 것이다. 공공의 의미를 기만하지 않는 '공공의료 시설'이 작동하는 것은 그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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