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적 교육시스템의 임계점에서 성실한 교사로 복무함이 부끄럽다.

한 신규 초등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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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good77)등록 2023.07.20 17:44
학교는 위기에 처해 있다.

몇 해 전 국가 수준 교육과정 시안 공청회에서 시장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개정 방향에 반대하며 벌떡 일어나 발언했었다.

"현장의 요구를 무시한 채 이렇게 주지 교과 위주의 학습 경쟁 체제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학교당 최소 1인의 정신과 전문의를 배치해야 합니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끄덕였고, 정책 관계자 대부분은 조소했다. 결국 입시과열을 부추기는 개정 교육과정이 발표되었다.

요즘 자주 그때 일이 떠오른다.

한 초등학교의 2년 차 신규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다가 일과 전 빈 교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교사노조의 성명서에 의하면 학급 내 학교폭력(이하 학폭) 사안과 관련하여 학부모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더 유난스러워진 학폭 사안들로 가슴 졸이는 동료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간략한 한 줄 기사에 담긴 사연이 얼마나 기막힐지 조밀하게 그려진다.

학교 측에서 '해당 교사는 학폭 담당이 아닌 나이스 권한 부여 업무를 맡았다'고 해명했다. 그 한 줄에 나는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나이스 업무가 가장 몰리는 학기 말에 굳이 대대적인 개편을 하면서 선생님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학급 내 학폭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인 이상 학폭 담당 교사가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평소 나이스 전산 업무까지 맡았으니 교사 한 명이 도대체 몇 사람분의 업무를 수행한 것인가.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학부모와 교사는 협력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초등학교에서 무슨 경쟁교육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대입 경쟁 체제의 악영향은 유아기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은 교육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로 인한 과도한 걱정과 불안을 현장 교사들의 헌신으로 메꿔 온 지 오래다.

선생님의 죽음은 경쟁 시스템으로 신뢰가 무너진 교육 공동체와 학교 업무 구조 전반의 치명적 문제점을 한 눈에 보여주는 안타까운 순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교사의 업무는 늘어만 간다. 경제적 효율을 교육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뽑아놓은 사람 써먹자'는 식의 업무 구조로 인해 세상이 바뀌어도 인력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해오던 일도, 새로 들어온 일도 모두 기존 교사들의 몫이다. 나가는 일은 없고 들어오는 일만 있다. 너무 오랫동안 과부하 되어 있음을 외면하고 돌려막기로 해결하려 들다 보니 결국 마음 약한 교사, 전입 교사, 신규 교사, 젊은 남자 교사, 기간제 교사, 열정 교사들이 뒷감당을 도맡게 된다. 모두가 고루 여력이 없어 생기는 일임에도 교사들끼리 서로 흉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이쯤 되면 '시스템에 성실히 복무하는 게 오히려 비양심은 아닐지.' 선배교사로서 부끄럽다.

선생님, 임계점에 이른 각개 전투 현장에서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어요. 아침 일찍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하신 곱고 고운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평화로운 곳에서 안식하시길 기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본인 계정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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