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는 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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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0912005)등록 2022.02.17 13:49
첫째는 얼마 후면 세돌을 맞는다. 얼굴도 커지고 다리도 제법 길어진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새삼 놀란 표정을 짓곤 한다. 언제 이만큼 컸지 하면서.

둘째를 낳고 키우며 첫째의 이맘때를 종종 떠올린다. 첫째도 웃을 때 이런 소리가 났는데. 이 무렵 첫째도 머리에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지. 이 시기가 지나면 점차 흐릿해질 것만 같은 기억이다. 기억에도 이정표가 있어서 그걸 봐야만 더듬어갈 수 있는 것 같다.

글은 내게 추억을 더듬는 이정표다.
첫째가 처음 '엄마'라고 불러준 순간, 모유수유를 하며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감격스러웠던 나날, 오십일 무료촬영을 하러 갔다가 아이의 웃는 모습에 반해 덜컥 성장앨범을 계약한 순간까지. 첫째를 키우며 적어둔 육아일기를 열어볼 때면 그때의 상황과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첫 번째 책이었던 '신혼예찬'도 마찬가지.
신혼예찬은 결혼 후 약 1년간 우리 부부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결혼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꽤 많이 멀어졌다. 여기서 멀어졌다는 건 물리적인 거리. 바짝 붙어서 자던 우리 둘 사이에는 이제 아이들이 둘이나 있고, 내 다리가 툭 얹히던 남편의 다리는 첫째의 몫이 되었다. 식탁에서 마주 보고 밥을 먹기도 힘들다. 백일을 며칠 앞둔 둘째가 잘 놀다가도 밥 먹을 때만 되면 울어서다.
가벼웠던 생활에 많은 게 더해지고 그만큼 책임도 늘면서 서로 날을 세울 때도 많다. 그런 날 '신혼예찬'은 꽤 효과를 발휘한다. 책 속의 우리는 정말이지 예쁘고 남편은 한없이 다정하다.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사실은 이 사람 그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 상황이 달라졌을 뿐임을 깨닫는다.

살아있는 동안 타임머신이 발명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글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 글은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사진과도 비슷하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 사진도 과거를 더듬기 위한 이정표가 되어주니까. 하지만 사진을 잘 못 찍는 나로서는 한 장의 사진에 생생한 감정과 생각까지 담아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쓴다. 소중한 오늘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려고.

몇 달 전에는 문득 아이의 미래에 내가 없는 순간을 상상하게 되었다. 어느 책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있으면 아이는 부모가 없어도 그 기억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아직 내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기억이라는 게 남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애들 행복해야 하는데.

내게 과거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어주는 글이, 내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평생 옆에 있든 혹은 그렇지 않든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지를 알 수 있게, 이 소중한 시간들을 남겨두고 싶다. 

글로 남겨질 시간. 언젠가 추억이 될 오늘이 우리 인생이라는 두터운 책의 한 페이지라는 생각을 하면 나는 더 충실하고 싶어 진다. 내게도,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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