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힘을 키우는 시간, 김항심의 <모두를 위한 성교육>을 읽고...

성장이 유예 된 내 안의 소녀(소년)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김항심의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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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good77)등록 2021.09.23 09:42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바로 이거지!' 싶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 주변에 현실적인 성교육을 해줄 만한 지혜로운 어른이 흔치 않다. 성교육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삶의 중요한 영역임에도 그 어떤 영역 보다 세대 간 단절이 심하다. 

사실 많은 경우 어른 자신이 성적인 측면의 적절한 성장기를 겪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서 발달이 신체적인 발달에 미치지 못한 체 엉거주춤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제도적 성인에 이르러서야 맨땅에 헤딩하듯 겪어내느라 정서적 내상을 입은 체 '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니게 된 어른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아이 교육을 말하기 전에 어른의 성숙이 시급하다. 오랜 세월 부모교육과 성평등 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해온 여성학자, 김항심은 그 필요성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제대로 출간의 방향을 잡았다.

프롤로그부터 들려오는 그녀의 사려 깊고 다정한 목소리로 나는 '이미 성장기에 만났어야 할 엄마, 아빠'를 뒤늦게 만났다. 그녀는 모두의 부모여야 했을 온화한 시선과 너그러운 품으로 사랑의 결핍 속에서도 좋은 어른으로 자라고자 분투했던 우리네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여성학을 전공한 그녀 조차도 첫 아이를 기르며 주춤했던 순간들의 혼란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어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커왔는지도 모르겠는 이 어리둥절한 심정'을 쓰다듬고 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리고 첫걸음 떼는 아이를 이끌 듯 찬찬히 함께 걸어준다. 때로는 거칠고 질긴 음식을 오물오물 씹어서 먹이듯 '머리로는 알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 아이에게 들려줘야 할 말들'을 부드럽게 소화시켜 내 입에 넣어 주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20세, 17세 두 형제의 부모이자, 26년차 중고등학교 교사인 나조차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성을 말해줄 수 있는 의젓한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온전히 알아챌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아이를 기르다 보면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아이의 성적 호기심에 대해 간명하게 말해주는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줄 때마다 두 아이와 살아오는 동안 수도 없이 놓친 소중한 기회들이 아쉬워 발이 동동 굴러졌다. 때로는 나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 좋은 어른에게 그 말들을 듣고 싶기도 했다. '만일 내게 그런 어른이 있었다면 나는 진작부터 한없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갈 수 있었을 텐데...'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한층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원대한 소망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가정에서, 강단에서, 교실에서 다양한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오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질문에 대해 쏟아지는 명쾌한 해답은 물론, '다 읽고 나면 누구나 성교육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엄선한 주제별 명서 목록까지 '본문을 압도하는 부록'으로 선뜻 내주고 있다. 흥미를 자극하는 깔끔한 입담의 추천 글과 제목만 읽었음에도 이미 '나도 참 괜찮은 어른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기며 마음이 든든했다.

 "성교육은 타인과 존중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 비춰볼 수 있는 '성찰의 거울'입니다.(p.211)" 라는 저자의 신념이 책 전체에 공기처럼 스며있다. 

우리 시대의 부모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다음 세대와 살아가기에 괜찮은 어른으로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확인하기 바란다. 이제라도 내 안에 숨죽인 체 유예된 소녀(소년)를 돌보며 안아주고 치유하여 키워가기 바란다. 책을 덮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껴둔 에필로그를 읽고 책을 어루만지며, 깊은 감동과 안심으로 눈물을 머금은 체 이제라도 그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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