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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들, 어떤 문자 받았길래... '개별배송' 중단 하루 만에 재개

[현장] 택배노조, 갑질문제 해결 위해 농성장 설치... "노동자 안전 위해 개별배송 재개"

등록 2021.04.16 16:07수정 2021.04.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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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4일 입주자대표회의의 갑질에 맞서 아파트 단지 앞 배송 실시 후 해당 택배노동자 조합원에게 악의적 문자와 전화가 이어져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고 정상배송을 결정했다”며 “국민들이 아파트 갑질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문 앞에 배송해야지 역 앞에 놔서 분실되면 책일지실 건가요?"
"앞으로 상일동역으로 배송된다면 오배송으로 수취거부 및 신고할 겁니다."
"지하로 이동 가능한 다른 택배직원한테 지역구 양도하고 지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에서 일하세요. 본사에도 같은 내용으로 민원 넣을 겁니다."


지난 14일 '개인별 배송'을 거부하며 4932세대 규모의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단지 앞 길가에 택배를 놓은 한 택배기사가 당일 일부 고객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그는 이날 수십 건의 항의성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이러한 연락은 다음날인 15일에도 이어졌다. 결국 그는 스트레스성 공황장애가 와 해당 영업소 소장에게 '일을 못 한다'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16일 오후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단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고객들의 과도한 항의문자와 전화로 심각한 상황이 도래해 조합원을 보호하는 조치로 단지 앞 배송 일시 중단을 결정한다"라고 선언한 이유이다. 택배노동자들은 개별배송 중단 하루 만인 15일 다시 개별배송을 재개했다.

앞서 택배노조는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가 지난 1일부로 택배차량의 지상진입을 막자 14일 오후부터 개별배송을 중단했다. 이들은 대신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 물건을 쌓아놓고 택배차량 지상출입을 금지시킨 아파트 주민들이 직접 택배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택배노조, 개별배송 다시 시작... "국민 여러분, 도와달라" 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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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4일 입주자대표회의의 갑질에 맞서 아파트 단지 앞 배송 실시 후 해당 택배노동자 조합원에게 악의적 문자와 전화가 이어져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고 정상배송을 결정했다”며 “국민들이 아파트 갑질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배송 재개한 택배노동자 “국민여러분 아파트 갑질문제 해결 위해 힘 모아달라” ⓒ 유성호

 
이날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에서 개인별 배송을 시작하며 "경찰과 관할 지자체에 수백 건의 민원이 접수됐다"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분노스러운 상황이 이어져 많이 속상하고 비참하다"라고 말문을 뗐다. 

"개별배송 중단 후 정말로 많은 국민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그러나 일부 입주자들이 우리 택배기사들에게 참을 수 없는 비하와 조롱, 모욕, 심지어 협박하는 내용으로 문자 폭탄을 발송했다. 갑질하는 일부 몰지각한 입주자 대표나 일부 입주민들 행태에 대해 택배노조와 택배기사가 지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부탁드린다."


이를 위해 택배노조는 "빠른 시일 내에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노동자들과 협의를 통해 다음주부터 더 광범위한 개별배송 중단을 만들어갈 예정"이라면서 "16일부터 상일동역 1번 출구 앞에서 매일 저녁 촛불 집회를 진행하는 등 국민여론을 모아가는 전면적인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4일 개별배송 거부 당일에는 롯데택배와 우체국택배만 동참했다.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한진, 소규모 민간택배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택배노조 관계자는 기자회견 후 <오마이뉴스>에 "현재 택배기사들과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면서 "주말 사이 진전된 논의가 오간 뒤 18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투쟁 방안이 논의되고 결정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카트 끌고 가는 개별배송 기사 만나보니 "쉬워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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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이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고 정상배송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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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이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고 정상배송하고 있다. ⓒ 유성호

 
하지만 고덕동 그라시움 사태가 진정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여전히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단지 내 지상도로에서 택배차량의 운행을 금지시키는 내부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택배노조와 개별적인 대화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이러다 보니 이날 그라시움 아파트 단지에선 초록색 카트를 밀고 다니는 택배노동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민간택배 기사 A씨는 "모든 눈과 귀가 몰린 상황이라 말하기 부담스럽다" 면서도 "솔직히 수레를 이용해 배송을 해봐라. 쉬워 보이나?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더 조심스럽고 어렵다. 아파트에서 정한 규칙이 그러는 것이니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 차량을 저탑으로 개조하는 것은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아파트 입구에 차를 대고 운행하는 건 더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초록색 카트에 넘치도록 택배를 싣고 입구 쪽 언덕을 조심스럽게 넘어갔다.

고덕동 그라시움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높이가 2.2~2.3m라 보통 높이가 2.5m에 달하는 일반 택배차량은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반 택배차량을 저탑차량으로 개조할 경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온전히 택배노동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택배노조는 "택배기사들에게 지상출입을 허용하라는 것이 택배노조의 기본 입장"이라면서 "단지 내에서 운행하는 속도는 입주자대표측에서 요구하는 대로 안전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안전통로만 이용하라고 하면 당연히 그럴 생각이다. 일단 만나서 대화를 나누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그라시움 아파트 입주자 대표자들이 요구하는 저탑차량 변경에 대해서는 "택배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문제뿐 아니라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거부 의사를 분명히했다.

이어 택배노조는 "저탑차량은 노동부가 선제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권 회복을 위해 금지시켜야 할 부분"이라면서 "선제적으로 노동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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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그라시움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4일 입주자대표회의의 갑질에 맞서 아파트 단지 앞 배송 실시 후 해당 택배노동자 조합원에게 악의적 문자와 전화가 이어져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단지 앞 배송을 일시 중단하고 정상배송을 결정했다”며 “국민들이 아파트 갑질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 유성호

 
#택배 #고덕동 #그라시움 #택배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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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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