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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의 비혼 출산 논쟁과 '어머니의 나라'

결혼이란 제도가 없고 개인을 존중하는 모쒀족에게 배우는 삶

등록 2021.04.16 09:05수정 2021.04.1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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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낳은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기혼 여성에게만 시험관 아기가 합법적인 만큼, 비혼 여성인 사유리는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 받아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만큼 사유리의 비혼 출산은 갑론을박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선택이다', '멋지다', '축하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있었던 반면, '비정상적이다', '비인간적이다'라는 부정적 인식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전 연령대에서 10명 중 7명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혼 기피 현상과 함께 가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결혼과 출산의 연결 고리는 아직도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결혼을 통한 출산만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편견을 깨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추 와이홍(지은이) ⓒ 흐름출판

 
추 와이홍의 <어머니의 나라>는 엄마, 아빠,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다른 형태의 가족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과 가족, 여성과 남성의 삶의 자리에 대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추 와이홍이 소개하는 모쒀족은 중국 서부지역의 윈난과 쓰촨의 경계에 있는 루구호 주변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이다. 그들은 모계제와 가모장제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여성의 핏줄을 따라 가족과 친족이 규정되고, 가족 내에서 여성을 가장으로 삼는다. 

모쒀족에게는 결혼이 없다

모쒀인들은 주혼이라는 것을 통해 모계 사회를 유지한다. 주혼은 남성 아샤오(연인이라는 뜻)가 여성의 방에서 밤을 보낸 뒤 아침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 남성의 집에 들어가 살거나 남성이 여성의 집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을 떠나 여남 둘이 독자적인 가족을 꾸려 살지도 않는다. 아이를 낳게 되면 이 아이들은 어머니 쪽 가족의 구성원으로 포함될 뿐이다. 모쒀 사회에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없는 만큼,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성인 가족 구성원이 비혼이다.


모쒀 여성에게 '아샤오'란 고된 일상에서 자신을 잠시 벗어나게 해 줄 즐거운 일탈이자 잠재적인 정자 기증자다. 그녀들에게 남성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생명의 씨앗에 물을 줄 '물뿌리개'다. 그러므로 남성 아샤오를 고를 때, 재력이나 책임감 등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남성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도 아빠로서의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저 양질의 물을 주는 본분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롭다. 결혼이 없는 사회라니! 모쒀인들은 얼마나 삶이 가벼울까. 여자들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 나고 자란 익숙한 환경에서 억지로 벗어날 필요도 없다. 생판 모르던 사람을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 

모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볼 때, 비로소 가부장제 사회 여성의 삶이 얼마나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남성들에게도 모쒀 사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결혼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들은 남편으로 아버지로 사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하니 그들에게 아버지라는 개념조차 없는 모쒀 사회가 매력적이지 않을 리 없다.

모쒀족은 각자의 자리를 존중한다

모쒀인들은 여성을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힘의 원천이요, 삶과 빛의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다. 이에 따라 모쒀족은 여성이 일생 동안 밟게 되는 모든 단계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모쒀족의 세계를 경험한 추 와이홍은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 - 92쪽

모쒀족 여성은 가장으로서 농장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경작과 농사 일정을 계획하고, 어떤 동물을 몇 마리나 기를지 전부 결정한다. 그녀들의 하는 일은 농장 일에서부터 가축을 돌보는 일, 집안일, 요리, 청소, 바느질, 어린아이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아주 넓다. 

모쒀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는 일을 폄하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영위하기 위한 중추적인 역할로 받아들인다. 힘을 쓰는 육체노동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공동체 일에 참여하는 남성의 일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운 반전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일로 규정하며, 하찮은 일로 취급한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하는 노동을 국내 총생산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때문에 인류가 존속한다.

의식주의 돌봄 노동이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니, 잘못 돼도 크게 잘못 된 것 아닌가. 여성의 역할을 중추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과연 여성들이 지금처럼 임신과 출산과 돌봄 노동을 기피할까?

그렇다고 모쒀족 사회가 남녀 간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상호작용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보다 권력 구조가 더 균형 잡혀 있다. 그들은 모두가 모두를 동등하게 대한다. 모쒀 사회는 남성을 차별하지 않고도 여성을 중심에 두면서 훨씬 나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모쒀 남성들은 힘을 쓰는 노동을 전담할 뿐만 아니라 삼촌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아이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전승하고 도덕의 잣대가 되는 전통문화를 알려준다. 가장과 더불어 집안의 큰 어른인 그의 목소리에는 가장만큼이나 큰 권위가 실린다.  

가부장제 사회 너머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다
 
모쒀족과 함께 지내며 나는 인류의 절반을 억압하고도 이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를 채택한 대다수의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얻었다. 모계제와 가모장제를 채택한 모쒀 사회가 가진 원칙은 우리 모두가 꿈꾸어볼 만한, 더 평등하고 더 나은 멋진 신세계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 10쪽

추 와이홍에게 그러하듯, 나에게도 모쒀족의 가모장제 사회는 멋진 신세계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멋진 세계를 자본주의와 맞물린 아버지의 세계에 접목시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모쒀족 사회도 자본주의의 침투로 가모장제 전통이 위기 가운데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나라>는 가부장제 사회 너머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한다. 

최소한 편견없이 미혼모와 비혼모의 출산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를 바란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법과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원한다면 누구나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지원 아래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저출산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어머니의 나라 - 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흐름출판, 2018


#비혼 출산 #모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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