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알페스가 성착취? 하태경 의원이 잘못 봤다"

[스팟인터뷰]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등록 2021.01.20 12:56수정 2021.01.20 18:02
34
원고료로 응원
 

지난 1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이용자 처벌’ 청원 ⓒ 청와대 청원게시판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주세요."

지난 1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알페스 이용자 처벌' 청원은 사흘 만에 청와대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 명이 넘게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심지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알페스'를 '제2의 n번방'으로 규정하고 19일 "알페스를 제작하고 유포한 110여 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체 '알페스'가 무엇이길래 논란이 되는 것일까?

생소한 단어인 '알페스'의 정확한 말은 'RPS(Real Person Slash)'로 실제 남성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동성애 서사를 창작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 /(Slash :슬래쉬)는 RPS의 시초가 되었던 미국 영화 <스타트렉>에서 주인공 커크와 스팍을 '커크/스팍'으로 커플링하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한국에서도 90년대 후반 H.O.T 등 아이돌 1세대가 나올 때부터 오래 전부터 '팬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져온 팬덤 하위문화다.

팬픽션이 '알페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성착취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해, 아이돌 팬덤 연구를 해왔던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커뮤니티케이션학과 교수는 1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RPS는 n번방이나 딥페이크와 같은 성착취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실질적인 권력 차이를 기반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빼앗고 실제 성적 범죄까지 이어지는 행위가 성착취인데, 이는 RPS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RPS가 고수위일 때 가수 개인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처럼 RPS를 남성의 '여성 성착취'에 대응하는 또 다른 '성착취물'로 뭉뚱그려서 공론화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평했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성착취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


- 알페스(RPS)의 유래는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이야하기는 '팬픽션'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일본에서 시작된 남성 동성애서사(야오이)와 남성 아이돌 팬덤이 결합하면서, 팬픽션은 팬덤 하위문화로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다만 해외에서는 팬픽션을 RPS라는 말로 통칭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과거 RPS는 정말 '현실'을 기반으로 제작을 하는 좀 더 팬픽션의 세분화된 장르로 분리했다.

이를테면 팬픽션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관계성'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팬픽션 중에서는 이름만 따오고 실제의 배경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소설도 굉장히 많이 나오면서 다양한 형태의 판타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팬덤 내부에서 RPS는 실제 사건이나 장소 등을 언급하며 마치 그들의 관계가 '현실같은 느낌'을 주는 내용까지 나아간 것을 일컬었다. 이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자정 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하태경 의원 등은 이러한 층위를 구별하면서 말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정의를 모르면서 팬픽션을 통틀어 '미성년 아이돌 성착취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a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오른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19일 오전 남성 아이돌을 소재로 알페스 제조자 및 유포자 수사의뢰서를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 왜 팬덤 문화에서 이렇게 멤버 간의 '동성애'를 그린 팬픽션이 유행했을까?

"팬덤에서 '저 아이돌들 진짜 사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팬픽션은 아이돌 멤버 사이의 관계성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구성한다. 아이돌은 리더 혹은 막내, 마더링 혹은 케어링하는 멤버, 성숙한 멤버와 그렇지 않은 멤버들이 서로 지원하고 성취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아이돌들이 커나가는 관계를 그려낸다. BTS처럼 멤버들간의 네트워크나 관계성, 친밀성 등은 인기와도 직결이 된다.

물론 이러한 관계들은 성애적이지 않다. 그래서 팬덤은 성애적으로 비틀어봤을 때 재미가 있다고 느낀다. 섹슈얼하고 포르노적인게 아니라, 브로맨스를 일으킬 수 있을만한 관계성에 대한 서사를 즐긴다. 이런 부분은 팬덤이 몰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 아이돌 마케팅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관계성을 즐기려고 하면서, '망상'인 것은 알지만 '내가 좋아하는 멤버들이, 내가 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관계성을 즐기는가'를 내용으로 팬픽션을 채워나가려고 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 그렇다면 실제 인물과 배경으로 수위 높은 내용을 그린 팬픽션은 '성착취'로 볼 수 있나?

"
아이돌 개인은 RPS를 통해 성적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자신이 고수위 팬픽에 나온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싫어서 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딥페이크와 n번방 같은 '성착취'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성착취는 연령이나 젠더 등 실질적인 권력 차이를 기반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착취당하는 이들은 자신이 빼앗기는 것조차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n번방의 경우는 이러한 권력 차이를 이용해 실제 성적 범죄로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하지만 팬픽션은 판타지에 기반한 것이며, 실제 당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이 남성과의 권력차를 이용해서 벌인 일이냐?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팬덤 내부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망상'이라고 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RPS가 성착취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RPS의 유통이나 소비되는 방식은 물론 성적 착취가 일어나는 기반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왜 논란 됐는지 의문"

- 그런데 팬픽션은 오래 전부터 있어오지 않았나? 갑자기 왜 알페스가 논란이 됐을까.

"저도 사실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단어는 팬픽션인데, 왜 '알페스'라는 용어가 새롭게 떠오르게 됐는지 모르겠다. 성별간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갑자기 급부상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손 심바라는 래퍼 한 명의 문제제기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성착취물', '괴물'처럼 여겨지는 RPS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저 남성의 '여성 성착취'에 상응하는 일부로서, 내용이나 의미가 명확하게 정의되지도 않은 채로 뭉뚱그려져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

언어가 갖고 있는 권력에서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굉장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 n번방과 딥페이크는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꾸준히 이야기했을때,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고 범죄의 행태로 형상화됐다. 그런데 RPS는 어떻게 이렇게 빠른 형태로 뉴스 메인을 차지하는 이슈가 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성적대상화에 의한 개인의 성적수치심도 여성의 경우 '사적인 문제'로만 여겨졌다. 그런데 RPS에 대해선 바로 '팬덤을 처벌해달라'는 공적인 방식으로 목소리가 나왔다. 언어의 위계라는 것이 대단히 명확하게 드러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문제제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지금까지 팬덤 내부에서 팬픽션에 대한 윤리적인 자정 작용도 끊임없이 해왔다. '고수위'에 대해서 경계하며 멤버에게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비가시화' 한 채로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려고 했다. 고수위 팬픽션은 분명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고, 윤리적이고 인권의 문제에 대한 것들은 내부에서의 문제제기가 따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n번방이나 딥페이크에 비교해서 논의를 진행하면 안 된다."
 
#알페스 #RPS #성착취 #하태경
댓글3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