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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 나니 2억 오른 아파트... 안 보던 주식 책을 펼쳤다

전세지만 주택살이 로망 실현하며 행복했는데... 더는 '내 집'을 꿈꾸기 어려워진 현실

등록 2021.01.17 11:50수정 2021.01.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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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기사에 나온 사례와 무관한 사진입니다.) ⓒ 연합뉴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음의 지옥에 빠지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지인 K를 만났다. 같은 단지에 살다 이사한 지 반년이 훨씬 지난 무렵이었다. 이사 갔다는 내 말에 그는 집을 팔고 갔느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쯧쯧 혀를 차며, "전세 주고 전세 가지. 집값 많이 올랐는데..." 얼마나 많이 올랐길래 저래, 속으로 굼실대다 인터넷 실거래가를 확인하고 실로, '멘붕'이 되었다. 거의 2억 정도가 올라 있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은 지옥을 헤매고 있다.
 
뭘 잘못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열패감이 밀려들었다. 투자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라, 딸애 학교 보내며 살 집을 찾아 스며들었던 동네였다. 딸애 학업이 끝났고 주택에서 살아보겠다고 작정하니,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져 팔았다. 주택은 살아보고 사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에 매수를 미루고 괜찮은 주택을 찾아 전세로 들어갔다. 마침내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었다. 그때는 기뻤다.
 
마당에 제멋대로 핀 알록달록한 꽃들을 보며 맞는 아침은 아파트의 아침과 전혀 달랐다. 더워지기 전까지 마당에서 얼음 커피 한 잔 마시며 신문 보는 '소확행'은 푸근했다. 어느새 6년 살았던 아파트 옛집을 싹 잊고 있었다. 처음 살아보는 주택이니 사소한 불편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택의 장점을 분명히 알아가고 있었다. 4월 말에 이사 오고 여름쯤, 이사 나온 동네 집값이 들썩인다는 소식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억' 소리를 두 번 내지를 정도일 거라고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마도 집을 팔았을 당시 동시에 집을 샀다면, 지인이 전한 그토록 생생한 소식, "집값 많이 올랐는데"에 마음이 이렇게 고속 지옥행으로 곤두박질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만 집값이 오를 리는 없을 터, 이사 온 동네도 알아보니 이사 올 때와 달리 주택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다. '그때 집을 샀어야 했나', 주택은 절대 덜컥 사면 안 된다고 말렸던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반년 만에 아파트가 2억 가까이 오를 수 있는 걸까? 새삼스러운 개발 호재가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주위엔 부동산으로 목돈 쥔 사람도, 주식으로 떼돈 번 사람도 찾을 수 없는데, 대체 누가 어떤 돈으로 집을 사들이고 주식 시장에 돈줄을 대고 있는 걸까. 'FOMO'(fear of missing out, 고립공포감) 현상이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걸까? 이제 예전 집을 판 돈으로는 언감생심 새 집을 구입하기는 글렀다. 이 격차를 대체 어떻게 메워야 하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인의 "집값 많이 올랐는데"란 말이 이명처럼 울리던 그 날, 인터넷 실거래가 확인으로 '억' 벼락을 맞던 그 날, '화병'이 뭔지를 알게 되었다. '벼락 거지'가 어떤 건지를 알게 되었다. 팔 때가 되어서 집을 팔았을 뿐인데, 이제 다시 그만한 집을 살 수 없는 신세가 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끊임없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동학 개미'? 내게 그런 멋진 명분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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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주식에 대한 공포가 있다. ⓒ pixabay

 
친구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테크에 수완이 있는 친구다. 아둔해서인지, 이런 친구를 두고도 나는 여태 돈을 더 굴려 벌어야 한다는 셈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J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을 맞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J, 나 이제라도 주식을 사야 하는 거니?"
 
내겐 주식에 대한 공포가 있다. 원가족이 주식으로 '쪽박 찬'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가산을 탕진해 배팅을 한 식구가 있었고, 우리는 그 때문에 가난해졌고 불행해졌다. 자연히 원가족에게 '주식'이라는 말은 '망조'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가 그런 식으로 가산을 탕진하지 않았다면, 주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비합리적 거부감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시 주식 폭락으로 원 가족은 재기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침몰했기 때문이다. '주식' 자만 봐도 고개를 돌리게 된 연유가 이랬다.
 
그랬던 내가, J에게, 이제라도 주식을 사야 하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투기니 투자니 알지 못하는 길엔 발도 들이지 않고, 반듯이 선명하게 난 길로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달해보니 어딘지 모를 막다른 길에 봉착해 있는 혼란스러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갑자기 하나도 모르겠는 낯선 곳처럼 느껴지는 막막함. 문득 여기가 내가 살던 세상이 맞는 걸까 몇 번이고 되묻게 되는 패닉 상태로 빠져들자 나는, 그때처럼 가난해질까 봐, 그때처럼 고통스러울까 봐, 공포로 진저리쳤다.
 
J는 그답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사야지. 처음이니까 많이 하지 말고 쪼끔씩 시작해. 은행 금리보다 나아."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징징대는 내게 그는 단호한 처방전을 냈다. "공부해. 적어도 대여섯 권은 읽고 시작해야 돼. 그리고 유튜브 꾸준히 찾아보고."
 
공부라니, 그것도 터부시하던 주식을 공부하라니, 도무지 왜 이리 인생은 예측 가능한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주택에 이사 와 호젓하게 지내며, 종일 고즈넉이 책 읽다 잡문이나 쓰는 것이 인생 마지막에 그린 행복이라는 그림이었는데, 이제 이 작은 평화마저도 산산이 박살 나고 있다. 조바심이 쳐져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지끈대는 머리를 싸안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읽고 싶은 책을 두고 J가 공부하라는 주식 관련 책을 검색하자니, 자괴감이 밀려온다. 검색기로 초보 수준에 맞을 법한 책 네 권을 골라 대출 데스크로 간다. 도서관 단골인 내 얼굴을 아는 직원이 내가 내민 책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신도 마침내 이 욕망의 광풍에 휩싸였군요."

조종을 울리는 듯한 그의 표정에 나는 또 한 번 좌절한다. 도망치듯 도서관을 빠져나오자, 끝 간데없는 슬픔과 분노가 차오른다. "나는 살던 집을 팔았을 뿐이잖아. 탐욕 없이 아껴 살며 마련한 집이었어. 그런데 다시 살 집을 살 수 없게 될 줄은 몰랐다고. 이게 내 탓이야?"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가슴엔 화염처럼 솟구치는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부 요직을 차지했던 혹은 차지하고 있는 이 중에 많은 이가 다주택자였다. 그것도 서울의 비싼 노른자위 지역에 말이다. 치솟는 집값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들은 집값이 오를수록 환호했을 것이다. 언제든 더 비싼 집을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애초 이들의 서울 집을 바란 적도, 사본 적도 없다. 수도권의 작은 집에서 검소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 집마저 빼앗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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