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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가해자가 오히려 욕설... 고소 다반사"

[인터뷰]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여청과 형사, 세밀한 학대 조사 기준 마련 주문

등록 2021.01.07 22:27수정 2021.01.0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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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 선물 등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양부모의 학대와 방조로 사망에 이른 16개월 정인(입양 전 이름)이 사건을 두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을 향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이 세 번이나 현장 조사를 나갔으면서 소극적인 판단을 해 정인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몸 곳곳에 멍과 상처로 학대를 증명한 정인이보다 양부모의 말에 귀 기울인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보전 관계자와 경찰은 정인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관계자들은 "잘못된 대처로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고 반성하면서도 "제2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여론 달래기용이 아닌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 A씨] "진술능력 없는 영유아, 세밀한 조사 매뉴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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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서 5일 오전 추모객들이 방문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아이는 의식불명, 코마(coma) 상태였다. 의료인의 신고로 아보전에서 일하는 A씨는 경찰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두 돌이나 됐을까. 의사는 격막하출혈이라고 진단했다. 의사는 뇌를 감싸고 있는 얇은 막에 출혈이 발생한 이 경우 아이의 실수로 보기 어렵다며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했다. 의혹은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었다. 20대로 보이는 어린 부부는 순진한 얼굴로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도 추가 증가를 찾기 어려운 듯 보였다. 출동 후 2개월이 넘어도 사건은 진전되지 못했다. 그 사이 아이는 병원에서 죽었다. 4년여 전 일이다.

A씨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상황을 설명할 수 없는 영유아가 학대 피해자인 경우가 가장 조사하기 어렵다"라고 운을 뗀 그는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지 않으려면 영유아 학대를 어떻게 조사·처리할지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영유아 학대 조사가 어려운 건 '진술 능력' 때문이다. 6세 미만의 취학 전 아동이라 언어구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대부분 가해자는 '폭행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기 일쑤다. 가해자들은 조사 나온 기관관계자나 경찰에 항의하며 욕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A씨는 "정인이 사건의 경우 아보전과 경찰의 처리가 미숙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아이가 말을 할 수 없는 영유아의 경우 가해 부모들이 현장 출동한 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사후에 아보전을 상대로 소송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보전은 민간기관이라 소송을 당하면 변호사 비용 등 모든 걸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면서 "가해 부모들의 항의가 많아질수록 기관 관계자들이 위축돼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일도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대처가 미비할수록 학대를 당한 아이들의 피해는 심각해진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학대받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총 42명이다. 이 중 만 1세 미만의 사망자가 19명(45.2%)에 달했다. 만 1세와 만 5세가 각각 5명(11.9%), 만 3세가 4명(9.5%) 순으로 영유아의 사망수가 전체의 약 67%에 달했다.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정인이와 같은 영유아가 학대 정황만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침이 필요하다. 목격자가 없지만 아이 몸에 여러 상처가 있다면, 학대 위험성을 더 높이 평가할 필요도 있다."

현재 아보전은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9가지 평가로 학대 가능성을 파악한다. 9점 중 4점 이상이면 학대 위험이 크다고 의심돼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조치 할 수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인이는 아보전의 1,2,3차의 조사에서 각각 아동학대 위험도 3점, 2점, 3점을 받았다. 즉각적인 아동보호 조치를 받기에 1점이 모자랐다. 특히 3차 조사의 경우 '즉각 조치가 필요'에 체크가 됐지만, 분리보다는 방문 면담 등 사후 관리를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A씨는 '제2의 정인'을 막기 위한 세심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아동 학대 의무신고제로 일차적인 감시망은 마련돼 있다고 본다"면서도 "영유아, 청소년 등 세대별 아동의 특성에 맞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여청과 형사 B씨] "현장에 적용 가능한 대책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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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인이를 비롯해 아이들의 학대가 사망으로 이어진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경찰의 책임이 없다는 게 아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으려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경찰청장의 사과 후 나온 방안은 아쉬운 점이 많다. 일례로 경찰이 현장에서 아동의 과거 진료기록을 확인하기 쉽지 않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소속 B형사는 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인이의 죽음에 분노한 여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라, 일선에서 적용 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정인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면서 대책을 발표했다. ▲ 아동학대 전담 부서 신설 ▲ 모든 아동학대 의심 사건에 대해 학대 혐의자의 정신병력·알코올 중독 확인 ▲피해 아동의 과거 진료기록 확인 ▲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B형사는 "'병원진료기록 확인'은 경찰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의 협조를 구하려면 영장이 필요한데, 영장은 아동학대의 범죄 개연성이 충분히 조사된 후에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인이처럼 피해자가 영유아인 경우 신고자의 증언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고자가 대놓고 옆에서 폭행 사실을 본 게 아니라면 수사가 어려워진다. 보통 신고자들은 비명을 들은 정도다. 아이 몸에 상처로 판단하기도 애매하고, 과거 진료기록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정황만으로 아동과 부모를 분리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느냐. 고소당한다."

실제로 B 형사 역시 가해자인 부모에게 고소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경찰이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분리조치 할 때, 직권남용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는 부모들이 많다"면서 "고소를 한 번 당하고 나면 다음 출동 때 위축되고, 분리조치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라고 하소연했다.

자신을 입직 9년 차 경찰관이라고 밝힌 C씨 역시 지난 3일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부모에게 고소당한 경험을 밝혔다. 그는 "학대 아동을 부모와 분리시켰다가, 갖은 소송을 당하고 결국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라고 했다. 이어 "2년간 재판 비용과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모은 돈을 다 쓰고 1억 넘는 빚도 생겼다"며 "정인아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용기가 안 난다"라고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B 형사는 "이런 상황에서 아동폭행을 조사하는 경찰에게 필요한 건 학대를 판단할 정확한 기준"이라고 힘을 줬다. 현재 활용하는 '아동학대 체크리스트'는 경찰이 출동한 현장에서 확인한 정황을 기록할 뿐, 학대 여부의 명확한 기준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

그는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훈육할 때 회초리를 들고 때릴 수도 있다는 정서가 있다, 미국처럼 아이 몸에 손대면 무조건 폭행으로 보는 게 아니다"라면서 "결국 출동한 현장에서 개인의 경험에 따라 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B 형사는 반복해서 아동학대 수는 늘어나는데, 대책은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사례는 2만 4604에서 2019년 3만 45건으로 22% 증가했다.

그는 "아동학대를 증명하고 처벌하려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 학대'인지 명확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아동학대 수사도 아동보호 조치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인 #아동학대 #아동보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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