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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장·PC방은 되는데 왜 우리만 안되나?" 어느 헬스관장의 한숨

[인터뷰] 13년차 트레이너 헬스관장 "도대체 정부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등록 2021.01.05 08:31수정 2021.01.0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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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월 3일까지였던 실내체육시설 집합 금지 조치를 오는 1월 17일까지 연장했지만, 우지호(가명)씨는 매일 헬스장으로 출근해 청소한다. ⓒ 우지호씨 제공

 
"아빠 왜 집에 있어? 일은 안 해?"

열한 살 된 첫째 아이가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이 텁텁해졌다. '안 되겠다, 청소라도 하자', 우지호씨(가명·40대)가 출근 아닌 출근을 시작했다. 13년차 운동트레이너로 4년째 경기도 고양시에서 필라테스·헬스장(아래 헬스장)을 운영하는 우씨는 4일 오전, 헬스장으로 출근했다.

지난 12월 8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따라, 수도권 내 실내체육시설의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됐다. 헬스장 회원들의 발길이 끊긴 지 이날로 4주차. 우씨는 30여평의 헬스장에 있는 운동기구를 닦고 기름칠했다.

헬스장, 예외없이 집합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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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체육시설 집합 금지 조치로 우지호(가명)씨의 헬스장은 5주째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 우지호씨 제공

 
헬스장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때마다 실내체육시설에 속해 집합이 금지됐다. 지난해(2020년) 8·15 광복절 집회의 여파로 수도권 내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났을 때도 3주간 문을 열지 못했다. 지난 12월 8일, 다시 집합금지 조치가 시행됐다. 3주가 지난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2주 연장을 발표했다. 하루 1천여명 대 코로나확진자 수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해야 할 때는 조심해야지' 억울한 마음보다 코로나가 수그러들기를 바랐던 우씨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방역당국이 수도권 학원과 전국의 스키장 등에는 인원과 시간에 따라 제한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동시간대 교습 인원 9인 이하 학원·교습소와 스키장·빙상장·눈썰매장 등 실외 겨울 스포츠 시설의 운영도 재개된다.

앞서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골프장의 경우 '5인 이상 집합 금지' 대상에서 제외해 플레이어 4명과 캐디 1명으로 한 팀을 구성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영업이 중단된 헬스장·필라테스센터 등 실내체육시설은 별다른 조치없이 집합금지가 연장됐다. 4일 0시부터 17일 24시까지 다시 우씨는 헬스장을 닫아야 한다.

"가장 화가 나는 건 정부정책에 형평성이에요. 헬스장이 안전지대라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운동하는 회원수를 줄이고 마스크를 쓰고 하면 조심할 수 있는 곳이에요. 방역수칙도 잘 지켜가면서 4인까지만 운동을 허용할 수도 있고요."


우씨는 "헬스장은 얼마든지 마스크를 쓰고 1m 이상 떨어져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힘을 줬다. 그가 관장으로 있는 헬스장은 1대 1 수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사실 헬스장에 있는 사람은 2인을 넘지 않는다. 헬스장 한쪽에 마련된 필라테스 강습실도 1대 1 수업이기에 강사 1명과 회원 1명만 참석할 수 있다. 우씨는 "정부 정책이 헬스장의 여러 조건·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우리 애만 봐도 태권도장을 다니는데, 어제 문자가 왔더라고요. 아이들 9인 이하로 수업하니까 학원 보내도 된다고요. 화가 났어요. 태권도장이 어떻게 안전한가요? 아이들이 태권도장 다녀오면 어떤 줄 아세요?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뛰어놀며 운동한 상태예요. 여기에서는 애들한테는 거리두기나 제대로 지켜진답니까? 물론 학부모들의 보육 문제 때문에 학원 문을 연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코로나를 빨리 종식하자는게 방역정책의 핵심이면 학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정부의 기준을 모르겠어요."

11살, 9살, 7살. 셋 아이의 아빠인 우씨는 평소 아이 둘을 태권도장에 보냈다. 그는 "헬스장에 비해 태권도장이 얼마나 더 안전한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헬스관장 사이에서는 우리들이 협회도 없고 로비도 안 하고 힘없고 무식한 취급 받아서 그런다는 이야기도 나와요"라고 읊조렸다.

"얼마 전까지는 실내스크린 골프장은 이용 가능했잖아요.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관장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돌아요. 골프나 태권도, PC방은 협회쪽 힘이 세다고요. 지금까지 PC방 영업이 가능했던 게 (PC방) 문 닫으면 게임업계에 차질이 크니까 게임업계가 고위층을 압박했다는 말도 있고요. 알 수 없는 소문들 속에서 헬스장만 예외조치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소상공인 피해, 12월 최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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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도 포천시 오성영 전국헬스클럽관장협회장의 헬스장에서 회원들을 기다리는 사물함이 굳게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떠도는 동안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를 향해 갔다. 100명 내외 회원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헬스장은 운영 2017년 3월 문을 연 이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겨내지 못했다. 8월 말, 3주간 집합금지로 문을 닫을 때까지만 해도 모아놓은 돈으로 버텼다. 그러나 12월은 달랐다.

코로나 3차 확산, 즉 지난해 11월 이후 소상공인의 피해는 1, 2차 유행 시기보다 극심한 게 사실이다. 4일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재난지원금 지급 현황과 경제적 효과 및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3차 확산된 48주(11월23~29일) 소상공인 카드 매출액은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이어 49주(11월30~12월6일)에는 23%가  50주(12월7일~13일)에는 29%나 뒷걸음질했다.

2020년 중 가장 감소세가 보인 달도 12월이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처음 확산한 3월에는 소상공인 카드 매출액이 -17~-20%, 8월 광복점 기점으로 시작된 2차 유행 이후에는 -25%까지 내려갔지만, 지난달(12월)에는 30%에 육박하도록 감소했다.

"동네 상가 2층에 있는 곳이어도 월세와 관리비까지 하면 고정적으로 250여 만원이 나가요. 거리두기가 연장됐으니 지금 두 달째 수입이 0원인거 잖아요. 이걸 어떻게 버텨요. 우리는 그나마 규모라도 작은편이죠. 주위에 큰 헬스장 운영하는 관장들 이야기 들어보면, 한 달 고정비용이 2000~3000만원이에요."

결국 우씨는 택배하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 시간을 활용해 집을 나서 일당 10만원을 쥐고 돌아온다. 정부가 코로나 3차 유행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에 '3차 재난지원금' 정책을 발표했지만, 우씨의 경우 300만원 지원금은 한 달도 버티기 어려운 돈이다. "대출도 한 번 받았고, 마이너스 통장도 개설했는데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그는 이내  "이렇게 코로나가 이어지면 앞으로 뭐를 먹고 살아야하나, 도무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일부 헬스장 업주들은 정부 방역정책의 형평성에 문제제기 하며, 헬스장 문을 다시 여는 이른바 '오픈 시위'를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필라테스·피트니스사업자연맹 소속 업주 153명이 정부를 상대로 1인당 500만 원, 총 7억6,5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회원 예약제, 사용인원 제한 등 기준을 두고 실내체육시설의 유동적 운영을 허용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4일 오후 6시 기준 17만 7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한편, 방역당국은 '현장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헬스장 등 시설 간 형평성 문제를 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방법으로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서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헬스장 #코로나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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