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자치도 '코로나'에 걸렸다

팬데믹 속 휘청이는 대학생들

등록 2020.12.22 10:56수정 2020.12.2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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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전경 80년대 학생운동이 일어나던 즈음의 '민중벽화'가 경희대학교 문과대학에 자리잡고 있다. ⓒ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대학생들은 코로나 시국에 '객체'가 되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각 대학교는 팬데믹 상황에서 앞으로의 대책을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저 대면, 비대면 수업 문제뿐만 아니라 시험을 대면 아니면 비대면으로 진행할지에 더해서 코로나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특별 장학금 지급에 관련된 논의, 그리고 갑작스러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수업의 질 저하에 대한 목소리까지. 

학교는 모든 것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있으며, 대학교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 학교의 주체로서 생활하는 학생이 자신들이 처한 문제에 학교 본부와 같이 대응하거나 힘 있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대학교 안의 학생자치단체와 학교 단위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극적으로 비대면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학교 본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이들은 갖가지의 단체 행동에 나섰다. 'OO대는 소통하라'라는 글귀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기 위해 일명 '총공'을 진행하면서 대학 밖의 사람들도 현재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대학본부에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강력하게 외쳤다. 

한양대에서는 기획처장의 무책임한 발언에 답하기 위해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혈서가 곳곳에 나붙었다. 경희대에서는 등록금 반환과 학점 기준 마련을 외치며 총학생회장단이 총장실 앞에서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총장을 기다렸으며, 갑작스러운 대면 수업 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외대 총학생회장단이 수주간 노숙 농성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몇몇 대학교는 대면 수업과 대면 시험을 강제하며 학생들의 안전권을 침해했고, 어떤 대학교는 등록금 반환과 관련된 사안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매우 적은 금액을 비효율적으로 지급하면서 학생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대학생은 대학본부와 사회의 도움은커녕 절벽에 내몰린 것과 같은 모습으로, 학생 복지가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모습을 대학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어찌하여 대학생들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가? 어떻게 해야 대학생들은 다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대학자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대학자치, 왜 이 지경까지 왔나?

학생의 힘이나 학생의 대표들이 원래부터 약했던 것은 아니다. 1985년, 각 대학교에 총학생회가 설립되고 이들이 대학생들의 대표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 학교 학생의 권익에서 사회변혁의 목소리까지 낼 수 있는 강력한 단체로 단숨에 성장했다. 

각 대학교의 학생회들은 1987년에 민주화를 일으키는 데 큰 공헌을 했고 1990년 <시사저널>의 한국 사회를 바꾸는 단체를 뽑는 여론조사에서 당시 여당과 야당에 이어 대학교 총학생회들의 연합기구였던 '전국대학대표자협의회'가 3위에 오르며 강력한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생회가 학생들의 복지보다는 정치적 투쟁만 집중한다는 비판의 시각이 늘어났고, 각종 집회에서 학생회들의 주도로 폭력적인 사태를 일으키면서 이른바 '운동권'으로 불리던 기존의 총학생회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학자치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IMF 사태 이후, 대학교가 더이상 낭만과 꿈의 공간이 아닌 '취업을 하기 위해 가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퍼지고, 대학자치에 관심을 가지기 힘들 정도로 대학생들이 바빠진 것이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학점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거나, 취업 준비를 위해 대외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점점 대학생들은 대학교의 주체에서 일개 학생으로 변해갔다.

대학생들이 대학자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자 힘이 약해진 학생회는 대학본부의 정책에 대해 목소리 내기 힘들어지게 되었고, 대학교 내의 권력 체계에 불균형이 시작되었다. 이후 대학본부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으며 학생들을 위한 복지는 슬금슬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생회는 이제 학생의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쓰는 기구가 아니라, 축제를 기획하고, 소소한 민원을 해결하고, 학교의 지침을 안내하는 '하청업체'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서울의 한 대학에서 학생회 실무를 하는 학생을 인터뷰 한 결과, "대학에서의 학생 자치는 과거 고등학교의 학생자치에 비해서 그 자율권과 범위가 명백히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범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학생자치는 여전히 단순한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단체의 대표자로서 의견을 수합하고 이를 전달하는 역할, 혹은 단순한 복지 사업의 역할에 그치는 경향성을 보인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추세가 쭉 이어지면서 대학생들의 위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학생회의 전통이 없던 신생 대학과 전문대부터 서울 안의 명문대학까지, 전국의 대학생들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이렇게 취약해진 대학자치의 상황 속에서 코로나19는 찾아오고 만 것이다.

그래도 해답은 대학자치다

대학자치는 중요하다. 단지 대학생들의 권리 보장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로 처음 나오는 청소년과 청년의 시민교육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2019년 70%를 웃돌았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사회로 곧 나가게 되는 이 70%의 학생들은 대학교 내에서 대학자치의 실현을 통해 참여와 성취를 경험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학생들은 민주주의와 참여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1980~1990년대 대학생들이 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의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이 이러한 전통을 잃어버리고 학생자치에 관심을 저버린 것은 큰 상실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대학생들이 특히 재난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서 대학자치가 실현되지 않음에 따라 피해를 보는 경우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이어지면서 대학생이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위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지만, 그 누구도 연대하거나 도움 주지 않았고, 대학본부나 교수의 결정 하나로 대면 수업이 결정되어 어떤 대학생들은 코로나19를 뚫고 대학교에 통학해야 했다. 2020년의 대학생들은 자신이 '을'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대학자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일단 시민 전체가 대학생을 수동적 존재로 보는 시각, 그리고 대학자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 사회는 대학생을 대학의 주체, 주인으로 보기보단 가르침을 받고 배움에만 집중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학생회나 자치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운동권'이라고 헐뜯거나,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라면서 공부나 스펙 쌓기에 집중하라는 말과 시선을 사회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은 학생들의 참여를 더 가로막는 하나의 요인이 되어, 현재의 악순환을 이어지게 한다. 따라서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러한 부정적 시선을 고칠 필요가 있다.

또 대학생들이 스스로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대학자치에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여느 때보다 더 '정치적 무관심'이 심해진 해이다. 많은 대학교 내 학생자치기구에서 이뤄질 선거에서는 선거에 참여한 후보가 없어서 무산되는 이이 발생했다. 또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입후보하더라도 투표율이 최저 기준에 미달해 선거가 무산되는 경우도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대면 활동을 기초로 움직였던 동아리나 학회와 같은 학생들의 모임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활동하기 여의치 않아지면서 대학생들이 학교의 일에 관심을 끄는 사태까지 오게 되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제 일에 참여하지 않게 되고, 결국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대학생들이 '을'이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코로나19는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그야말로 2020년은 역사적인 '전환점'인 셈이다. 대학생이라고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대학 사회에서 지금처럼 대학자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대학생'은 '객체'로, '을'로, '사회적 약자'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불행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 팬데믹과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큰 장애물을 뚫고 대학자치가 긴 동면에서 다시 새롭게 깨어나야만 한다.
#대학자치 #코로나19 #학생운동 #참여민주주의 #학생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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