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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윤석열 지키기'에 노무현을 소환하는가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대통령 끌어들이려 애쓰는 모습 보며 2004년 환생경제를 생각함

등록 2020.11.30 20:49수정 2020.11.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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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
- 노무현 대통령, 2004년 2월 18일 합동 기자회견 발언


당시 한나라당이 선거법 위반과 불법정치자금 수수, 그리고 국정 파탄 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을 밀어붙이게 만든 발언 중 하나다. 이후  2월 24일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라며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 역시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문제적 발언으로 지목했다.

이후 국민의 반대에도 한나라당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3월 12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만으로 탄핵안을 가결(총투표 수 195표 중 찬성 193표, 반대 2표)해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했다. 두 달 후인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

탄핵 이후에도 보수 야권의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조롱은 도를 넘는 수준이었다. 당시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란 댓글 놀이를 심정적으로 주도한 것 역시 이들이었다. 그해 8월 노 대통령을 풍자하고 정권을 비판하려고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극단 여의도'를 창단해 대거 무대에서 연기한 패러디 연극 <환생경제>(관련기사: 4년 만에 부활한 정치 패러디 '환생경제' 한나라당 의원들의 앞서 나간 시대정신? http://bit.ly/uvdDi)가 그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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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가리`역을 맡은 주호영 의원과 큰아들 `민생`역을 맡을 심재철 의원이 이사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연극 속 노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가리' 역할은 당시 주호영 의원이 맡았다. <환생경제>는 "나라 경제를 절단" 낼 인물로 묘사된 이 '노가리'를 향해 출연자들이 '육실 할 놈', '개잡놈',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불알 값을 해야지', '죽일 놈', '거시기 달고 다닐 자격도 없는 놈' 등 비난과 성적 비하가 담긴 대사를 쏟아낸 것으로 유명했다. 보수 야당 의원들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린 장면으로 기록할 만했다.

그랬던 주호영 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호명했다. '논두렁 시계'로 대변되는 이명박 정부 당시 검찰 수사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노 대통령을 무려 윤석열 검찰을 비호하기 위해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환생경제'와 16년 전 기억
 
문재인 대통령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당신이 가고자 하는 길입니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담담히 받아들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울고 계십니다. 
- 29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페이스북 글 중에서

주 원내대표는 이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인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가 현 정권 인사들의 면책특권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및 징계 요구 역시 같은 의도라고 한다.

"대통령의 친구(송철호 울산시장)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울산 선거 부정" 및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덮고, 공수처장을 "우리 사람으로 꼽아 앉히면" 면책특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권이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인다는 게 위 페이스북에서 주 원내대표가 한 주장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국민의힘은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문재인 정권이 공약으로 내건 검찰 개혁을 훨씬 더 비장하게, 전력을 다해 반대했어야 옳다. 지난해 공수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 저지 수준이 아니라 문재인 정권 초기부터 국민들을 설득해내야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선택은 어땠나. 윤석열 검찰과 보수 야당, 보수 언론의 삼위일체가 조국 사태를 합작했지만 검찰개혁이란 시대 정신에 공감한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거대 여당을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아울러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및 정부·여당 인사들의 수사 범위가 압도적으로 넓은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에 국민이 동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 건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울고 계신다"라며 고인의 명예를 건드린 주 원내 대표와 국민의힘의 인식 수준이 과연 <환생경제>를 무대에 올린 16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성숙했는지 의문이다. 역시나 <환생경제> 무대에 올랐던 나경원 전 의원이 또 한 번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30일 글은 이러한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의식 수준은 80년대에 멈췄고, 정치 수준은 15년 전에 멈춘 자들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윤건영 의원, 청와대 가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하십시오. 차라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하라고 말입니다.
- 30일 나경원 전 의원 페이스북 글

(나 전 의원은 지난 29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대통령이 침묵해야 국민이 편안하다던 분들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라며 나 전 의원을 가리킨 데 대해 이와같이 페북에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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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들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는 28일 저녁 전남 곡성 봉조리 농촌체험마을에서 `환생경제`를 창단기념으로 공연했다. 공연을 마치고 경제친구역을 맡은 나경원 의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2004.8.28 ⓒ 이종호

 
노무현 소환의 이유

에둘러 갈 필요 없다. 주 원내대표가, 나 의원이, 그리고 국회 앞에서 릴레이 시위 중인 국민의힘 초선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하는 이유는 이들이 겨냥하는 과녁이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친구였으며, 참여정부 민정수석이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퇴임 후 검찰 수사 와중에도 노무현의 곁을 지켰던 그 문재인 대통령 말이다.

윤석열 총장에 대한 거취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이들의 속내 역시 2004년 <환생경제>를 통해 '노가리' 운운했던 그때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인다. 해당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언급을 해야만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문제 삼아 윤석열 vs. 추미애 프레임을 윤석열 vs. 문재인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에 대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라고 언급하자, 보수 야당과 언론은 십자포화를 쏟아낸 바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을 끊임없이 호명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조국 사태를 뛰어 넘어 어떻게든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걸고 넘어지며 2004년과 같은 탄핵 정국으로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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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훈 국가안보실장. ⓒ 연합뉴스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집중됐던 30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거취에 대해 함구했다. 단순히 "위기를 대하는 공직자들의 마음가짐부터 더욱 가다듬어야 할 때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며 공직자들의 자세를 강조하는데 그쳤다. 예의 그 신중한 기조를 유지한 셈이다.

법무부의 윤 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 건은 대통령이 직접 나설 일이 아니다. 이미 적법과 합법의 선을 지키는 추 장관의 행보 자체가 현 정부 검찰개혁의 기조라 할 수 있다. 윤석열 비호에 사활을 건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부화 뇌동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윤석열 #노무현 #문재인 #나경원 #주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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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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