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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두 딸이 생겼지만, 우리는 아주 '평범한 가족'입니다

[인터뷰] 보호 종료 아동인 두 딸과 함께 살아가는 황경원씨가 말하는 '가족'

등록 2020.11.27 13:42수정 2020.11.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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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가 '자발적 비혼모'로서 아이를 낳아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여태까지의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는 가족의 형태를 당당히 보여주며 한국의 '정상 가족' 이념에 균열을 내는 물음을 던졌다.


'가족'에 대한 거대한 물음표가 던져진 상황에서 '정상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삶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호 종료 아동인 두 딸과 함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황경원씨를 만났다(보호 종료 아동은 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 등에서 생활하다 만 18세 이후 보호 기간이 종료되면서 시설에서 퇴소한 이들을 말한다).

황경원씨는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에서 후원팀장으로 일하며 보호 종료 아동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양주에 있는 센터를 방문해 황경원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센터에서 일하며 여러 아이를 만났고,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어느새 두 딸이 생겼다고 했다.
 

황경원씨와의 인터뷰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에서 황경원씨(왼쪽)와의 인터뷰. ⓒ 한아름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

"말썽꾸러기 망아지 같은 딸들이죠."

딸들에 대해 묻자 황경원씨는 웃으며 답했다. 장난스레 답하면서도 딸들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말을 고르는 그녀의 침묵에 애정이 묻어났다. "착하고, 무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에요. 특별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황경원씨와 큰딸 고아무개씨(24세), 작은딸 최아무개씨(22세)가 함께 가족이 된 지는 약 2년 정도가 되었다. 센터를 통해 고씨를 알게 되고 계속 눈이 갔다. 외로워 보였고 가족이 되어주고 싶었다. 함께 가족이 되자고 말하기 위해 고씨를 카페로 부른 날, 고씨는 왜 자신에게는 엄마, 아빠가 없냐고 물었다.


황경원씨는 이때를 회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자신이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잔뜩 미안해하며 부담감을 주고 싶진 않았다. 일부러 장난스레 "그래서 내가 하려고 왔잖아. 네 엄마 해주고 싶어서 왔어"라며 다가갔다.

작은딸 최씨는 어느새 집에 스며들어 가족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씨가 직장을 다니면서 황경원씨의 집에서 잠시 동거를 하게 되었고, 같이 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인가 가족이 되어있었다. '시작'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어느 날 어머니와 아버지, 딸이 되어 있었다.

서류는 그냥 종이에 불과한데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마음을 의논할 어른이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황경원씨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황경원씨의 딸들은 서류상으로 등록된 자식들은 아니다. 성인 입양 절차를 밟을 수도 있었지만, 그저 같이 지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입양을 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묻자 황경원씨는 자신의 등본에 올라와야만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딸들이 원한다면 모를까, 꼭 서류상으로 등록된 딸로 만들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딸들에게도 서류니, 절차니 하며 부담을 줄 생각도 없었다.

서류는 그냥 종이일 뿐, 서로가 가진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황경원 씨는 종이는 찢으면 그만 아니겠냐고 말했다. 서로가 가장 편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꾸린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서류에 등록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겪을 어려움에 관해 묻자 여러 가지 상황들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주로 응급 상황이나 장례식과 같은 일들이었다. 황씨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이 딸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상상하면 아득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서류상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우리 딸들이 내 호적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게.. 서류로만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게 안타깝죠. 종이로만 설명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건 정말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세상에서 지켜진 아이들 보호종료아동과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한아름

 
아주 보통의, 여느 가족처럼

서류와 제도로 설명할 수 없어도 가족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가족 이외에도 수많은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황경원 씨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그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가족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황경원씨는 답변을 어려워 하면서도 "같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같이 얘기하고, 상 하나에 숟가락 얹어서 같이 밥 먹고, 슬퍼도, 기뻐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었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로든, 인생 선배로든 자신을 찾아 주기만 한다면 다 좋다고 덧붙인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그래도 역시 엄마로 찾아준다면 가장 기쁠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여느 집이랑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친딸도 아닌데 함께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다'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황경원씨는 자신이 딸들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큰딸에게 "엄마가 되어 줄게"라고 했지만, 이것이 선택의 관계는 아니었다.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밥상 위에 숟가락이 하나 더 올라갔고, 함께 자고, 같이 지내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가족이었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황경원씨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딸과 함께 살아가는 게 자신에겐 그저 '일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가족들과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런 모습의 가족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정상'의 틀을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편견이 아이들을 너무 특별하게 만들어요. 어느 누구든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잖아요. 누구나 다 똑같아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이것이 황경원씨가 전하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가족 #보호종료아동 #다양한가족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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