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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정규직 출근' 유지은 아나운서가 두렵지 않다 말한 이유

[후기] 2020년 7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등록 2020.11.19 18:25수정 2020.11.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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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 토요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국민카페 ON AIR에서는 특별한 시상식이 열렸다.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한 '2020년 7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 용기와 연대가 만든 첫걸음'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힘차게 포문을 연, 이번 7회 김경숙상 시상식의 주인공은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와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였다.

'용기와 연대가 만든 첫걸음'이라는 올해 시상식 이름에 걸맞게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감동적인 연대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당사자의 용기와 굳건한 연대로 만들어 낸 값진 승리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한국여성노동자회

 
2017년, 공공기관과 은행권에 만연한 채용성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있었다. 한국 사회 내에서 만연해 왔던 채용성차별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험점수를 조작해서 여성을 안뽑거나, 여성들이 (주로) 지원하는 직무에 고용형태 등의 차별을 두는 방식의 '채용성차별'은 한국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고용 성차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사자로서 문제 제기에 나서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 본격적인 싸움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문제 제기 이후 뻔히 예상되는 불이익과 어려움이 너무 커, 누구도 그 앞에서 좀처럼 용기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2019년,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당사자 최초로 자신이 당한 채용성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싸움을 시작하였다. 같은 일을 하는 아나운서여도 여성만 프리랜서로 고용계약을 맺고 근로조건 전반에 차별을 두는 방송사의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에 여성‧노동‧언론계의 수많은 단체가 화답하면서 연대체가 만들어졌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 혹은 노동자가 겪는 일터의 괴롭힘 문제 등 각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슈와 이 사안을 연결 지어 연대했고, 서울-대전 간 장소의 한계를 극복해가며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채용성차별 관행에 맞서 싸우겠다는 뜻을 모은 것이다.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렇게 구성된 공대위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1인 시위를 진행했으며 토론회 개최, 언론을 통한 시민여론 조직,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국정감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대응 등 다각적인 활동을 펼쳐 대전MBC와 MBC 본사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인권위 진정을 제기한 지 1년이 지난 올해 6월 17일, '채용과 고용형태에 대한 성차별' 사건의 최초 판단이 발표되었다. MBC가 성차별 채용 관행을 해소하는 대책을 마련할 것과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권고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권고안이 나온 지 3개월 후, 대전MBC 측은 권고안 일부를 받아들여 유지은 아나운서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였다. 사측은 그간 지속해온 채용성차별 관행과 채용성차별 문제를 공론화한 이후 유 아나운서에게 가한 부당업무 배제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기에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채용성차별 피해 당사자가 공론화한 최초의 투쟁에서의 승리였다. 당사자의 용기와 그에 화답한 굳건하고 폭넓은 연대가 만들어낸 값진 성과였다.

과거와 오늘의 발자취들을 잇는 장소, '김경숙상' 시상식
  

2020년 7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와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들 ⓒ 한국여성노동자회

  
유지은 아나운서는 수상 소감에서 "'여성 인권이 이미 많이 신장되었는데 왜 (고용 성차별에 맞선 투쟁을) 계속하냐'는 질문들을 종종 받기도 한다"며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답을 제시했다.

그는 "여성 인권이 과거에 비해 신장된 게 있다면 그것은 앞서 투쟁한 여성들의 꾸준한 노력과 발자취들로 인해 가능했던 거라는 걸 투쟁하며 깨닫게 되었다. 지금 현실에 남아있는 차별과 불평등 또한 지금 목소리를 내야 바뀔 수 있기에, 자신 또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유 아나운서의 말처럼, '김경숙상 시상식'은 과거와 오늘의 모든 발자취가 모여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과거와 오늘의 부당함에 맞선 투쟁들이 지금과 내일의 현실을 바꿔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79년, YH무역 노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부마 항쟁을 촉발하여 유신 독재를 끝장내는 데에 결정적인 신호탄이 된 이 투쟁은,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통보에 맞서 일터를 지키고자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굳센 결의로 시작되었다.

기숙사 철야 농성을 거쳐 마포 신민당사에서 죽음을 결사한 투쟁을 펼쳤던 YH무역 노조의 여성 조합원들은, 당대의 부당한 노동 현실과 독재정권의 폭력에 맞서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국가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영웅적인 투쟁을 펼친 장본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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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굳세게 싸운 YH무역 노동조합의 여성노동자들 ⓒ 한국여성노동자회/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그리고 올해로 7회를 맞는 '김경숙상 시상식'은 그 투쟁의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김경숙 열사를 기리며, 사회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성과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사였다.

시상식 도입 김경숙 열사의 삶을 다룬 영상에는, 임금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측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김경숙 열사가 노동조합에 참여하면서 부당한 노동 현실과 시대적 과제에 대해 눈을 뜨고, '노동 운동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며 투쟁의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들이 담겨 있었다.

41년 전의 YH무역 노조의 여성 노동자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떤 각오와 문제의식에서 그와 같은 투쟁을 결의하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상물이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는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있던 당시 YH무역 노조 투쟁의 당사자 여성들이 아직도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에 주체로서 함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로 이어지는 폭넓은 연대의 발자취들

'김경숙상' 시상식은 과거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이어져, 지금을 살아가는 주체들로 성평등노동 가치를 실현하며 일궈낸 승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대전MBC 채용성차별에 대응하여 공대위를 구성한 여성‧노동‧언론‧청년계의 수많은 단체가 모여,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값진 성과를 축하했다.

내빈 중에는 공대위 활동가 외에도 학술 기고로 연대한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투쟁 내내 기사 작성으로 연대한 박서연‧김예리 <미디어오늘> 기자와 박다해 <한겨레> 기자 그리고 과거 고용상 성차별을 보수적으로 다뤄온 여러 기관의 선례를 깨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준 국가인권위 차별시정팀에 이르기까지, 대전MBC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에 각자 선 곳에서 최선을 다한 많은 이들이 함께 만든 성과를 축하했다.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투쟁에 함께했는지, 그 소회를 밝히는 것을 들으면서, 지금의 값진 성과는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커다란 연대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시상하며 말했듯이 7회 '김경숙상 시상식'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자리였던 것이다.
 

2020년 7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 시상식 참여자들과 함께 ⓒ 한국여성노동자회

   
유지은 아나운서는 시상식이 열린 14일 바로 전 주 월요일, 처음으로 '대전MBC의 정규직 노동자로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며 그 소회를 밝혔다.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첫 출근 한주를 보낸 유지은 아나운서는 그간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굳건한 연대의 힘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도 힘차고 당당하게 방송노동자로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연대가 가져다주는 진정한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무수히 많은 사람의 발자취 위에 내가 서 있음을 깨닫고, 너와 내가 연결되었을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약한 개인이 아닌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것이 가져다주는 강력한 힘을 확인하는 것 말이다. 역대 김경숙상 수상자들이 '많은 분이 함께해준 덕에 투쟁에서 승리하였고 잘 지내고 있다, 올해 수상자에게도 승리의 에너지를 보낸다'며 보내온 축전에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김경숙상 시상식'은 여성 노동자들의 과거 투쟁과 오늘의 투쟁, 그리고 현재 이어져 있는 수많은 투쟁의 용기 어린 발자취들이 '연대'의 이름으로 모여 힘찬 '첫걸음'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1회부터 7회에 이르기까지 김경숙상 시상식의 수상자들은 모두 결국 투쟁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며 값진 성과를 이뤄낸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된다면 여성 노동자로서 살기에 점점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결코 혼자가 아니기를, 앞으로도 그 삶에 꾸준한 연대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7회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의 수상자 유지은 아나운서와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대위' 측은 상금으로 받은 300만 원을 일터에서 성차별/성폭력 문제로 고통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연대기금으로 전달한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클럽 밍갱이다.
#김경숙상 #YH노조 #채용성차별 #대전MBC #유지은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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