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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안 이웃의 마지막 가는 길 추모한 '연반계'

대호지면 마중리 ‘중리 연반계’... 이웃의 슬픔 위로하며 일손 도와

등록 2020.11.12 08:59수정 2020.11.1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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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와 요여 등이 보관돼 있는 상여집 ⓒ 김예나

 
옛날에는 마을마다 '연반계'라는 모임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장례절차를 상조회사에서 전문적으로 진행하지만, 과거엔 갑작스럽게 가족을 떠나보내며 경황이 없는 상주를 도왔던 건 이웃에 사는 마을주민들이었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장례 과정에서 일손을 돕고자 마을주민들은 연반계를 조직해 상부상조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연반계가 대호지면 마중리의 자연부락 중 하나인 중리에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보리쌀 석 되씩 모아 전달한 게 시작

'중리 연반계'는 6.25전쟁이 있었던 지난 1950년부터 현재까지 70년 동안이나 지속돼 왔다. 故 정진흥씨와 마중리 3·4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결성한 중리 연반계는 현재 정씨의 아들인 정덕영씨가 계장을, 최승기씨가 총무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35명의 마을주민들이 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덕영 계장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초상이 나면 연반계원들이 각각 보리쌀 석 되씩 모아 유족에게 전달하고, 그 보리쌀로 조문을 온 사람들에게 제공할 밥을 짓고, 술을 빚었다.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를 통한 장례 절차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마을에 초상이 날 때면 현금 1만 원 씩 모아 전달하고 있단다.

정덕영 계장은 "내 나이 8살 때 쯤 아버지가 초대 총무를 맡았다"며 "아직도 옛날 연반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까지 모두 연반계를 통해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모셨다"고 전했다.

매년 칠월칠석 나무상여 꺼내 관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초상을 치렀던 것에서 지금은 리무진이 상여를 대신하고 있다. 중리 연반계에서는 과거에 사용했던 나무상여와 긴 장대들도 상여집에 여전히 보관 중이다.

계원들은 매년 칠월칠석날이면 상여를 꺼내 볕에 말리며 관리하고 있다. 정덕영 계장은 "지금은 상여가 필요 없지만 우리의 전통이고 역사이기 때문에 잘 보관하고 있다"며 "고인의 혼백과 신주를 모시는 요여 등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과거에는 출상 전날 밤에 상여놀이를 하기도 했다. 상여놀이는 빈 상여를 메고,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하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소리꾼과 상여꾼들이 소리와 발을 맞춰보면서 상주를 위로하는 전통 장례의식이다.

정 계장은 "어렸을 때 횃불로 밝힌 보리밭에서 빈 상여에 이웃들을 태우고 왔다 갔다 하는 상여놀이를 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문화"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연반계가 필요하지 않지만 이전에는 산소 자리의 흙을 직접 파내고, 상여에 고인을 실어 장사를 치렀다"면서 "이웃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연반계가 마을마다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웃과 함께하는 장례문화"

한편 지난 70년 동안 연반계가 운영돼 온 만큼 기억에 남는 일화도 많다. 과거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매일 묘소를 돌보며 아침·점심·저녁 공양을 올리는 시묘살이를 했다.

정덕영 계장은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는 3년 동안 꼬박 상을 봤다"며 "하루에 세 번 공양을 올리고 곡을 하면서 부모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시대가 변해 바쁜 일상에서 3년 상을 치를 수는 없지만, 자식된 도리와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정성만큼은 기억해야 한다"면서 "부모의 장례조차 가볍게 여기는 세태가 무척 아쉽다"고 전했다.

"앞으로 중리 연반계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변해 문화가 금방 달라지고, 옛 전통 또한 쉽게 사라지죠. 하지만 이웃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어려울 때 도왔던 문화는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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