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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유튜브에 "OOO의 독일어 실력" 검색하는 이유

'완벽함'을 향한 한국인의 강박... '원어민다움'에 대한 열광은 당연한 게 아니다

등록 2020.11.23 08:22수정 2020.11.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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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진 언어에 대한 빡빡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 pixabay

 
*이전 기사 <인도인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습자들'이라고?>에서 이어집니다. 

500개 가까운 언어가 사용되는 인도에서는 이 언어 조금, 저 언어 조금 아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인도 친구 니투와 나의 프랑스어 실력이 인사말과 아주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으로 비슷할 때, 인도 친구 니투는 '나는 프랑스어 할 줄 안다'고 말하고, 나는 '프랑스어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니투는 자신이 아는 수준의 프랑스어를 편하게 말하는 반면, 나는 발음과 문법을 계속 신경쓰면서 문장을 머리 속으로 완성한 뒤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

한국인들이 가진 언어에 대한 빡빡한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비정상회담'이나 '미녀들의 수다'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감탄하면서 칭찬이 쏟아진다. 해외 교포가 한국어를 어눌하게 말하면 싸늘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인이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면 다시 봤다면서 치켜세운다. 이 때 언어 구사의 기준은 원어민다운 유창한 말하기이다.

나 역시 그런 관점으로 언어를 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더듬거릴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고, 언제쯤 말이 술술 나올까 고민했다. 아직도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원어민처럼 쓰고 말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못한다'의 범주에 속한다는 관점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분법에 기반해 있다.

몇 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유명인이 '전부 아니면 전부' 이분법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한국인들은 유튜브에서 '독일인이 본 누구누구의 독일어 실력', '미국인이 본 누구누구의 영어 발음' 같은 것을 찾아본다. 독일인이 보기에도 누구의 독일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으로 뛰어난지, 미국인이 듣기에도 누구의 영어 발음이 원어민 같은지 판가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독일인이 보기에 허술한 독일어라는 것이 판명 나면 '허세였네'라고 반응하고, 독일인도 감탄하면 '독일인이 보기에도 완벽하구나'라고 반응한다. 

이 이분법에 따르면 한국어를 외국어 억양으로 말하는 교포는 원어민다움에 미치지 못하므로 낙제, 한국에 몇 년 살았지만 한국어로 복잡한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도 역시 원어민다움을 획득하지 못했으므로 낙제.

반면 미국식/영국식 발음으로 솰라솰라 끊기지 않게 영어를 하면 통과. 단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 해도 모어인 한국어에 영어 억양이 섞인다면 역시 낙제. 영어를 할 때는 발음과 발성과 문법과 단어 선택까지 완벽한 영어여야 하고, 한국어를 할 때는 발음과 발성과 문법과 단어 선택까지 완벽한 한국어여야 한다. 그래야만 영어도 잘 하고 한국어도 잘 한다고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런 완벽함은 봉준호의 통역사로 잘 알려진 샤론 최의 사례처럼 탁월한 개인이 끊임없이 노력할 때만 가능하다. 하루 종일 언어 연습만 할 게 아니라면, 일상의 다른 일도 해야 하는 개인에게 여러 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인지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어민다움에 대한 강박의 근원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빡빡한 기준은 사실 한국인들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어민다움은 '언어에 의해 상상된 공동체'인 근대 민족 국가에서 중요해졌고 언어적 목표가 아닌 정치적 목표였다. 따라서 혼재된 언어, 지역 방언, 말글의 비표준적 방식을 모두 배격해야 했다. 프랑스에서 구어와 지역 방언은 얕잡아 보았던 반면, 파리 방언은 교양 있다고 여기며 우러러 보았다. 결정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언어의 통일을 가져왔다.

이탈리아와 인도네시아, 한국에서도 근대국가를 위해 하나의 통일된 모국어가 사실상 '창조'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민자 출신들의 모어 사용을 배격했고,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 불법인 적도 있었다. 이 때 하나의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국민의 모델이 생겨났다.

흥미롭게도 원어민다움에 대한 집착의 일부는 스파이 양성 과정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언어 적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워싱턴 등 수도의 외국어 교육 관련 기관의 관료들이 수행한 것이었는데, 이들이 관심을 둔 전형적인 학습자는 첩보 활동이나 외교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어떤 외국어를 숙달하는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즉, 언어 연구가 '외국인인 티가 전혀 안 나게 스파이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원어민다움을 달성하는 성인 학습자'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면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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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에도 용감하게 자꾸 말해야 빨리 는다. ⓒ pixabay

 
'약간'의 언어도 충분히 의미 있다

이중언어구사자들은 두 언어를 섞은 문장을 말한다고 비판받아왔다. 한국에서도 한국어에 영어를 섞어 쓰거나 영어 억양이 섞인 교포는 흔히 냉대를 경험한다고 한다.

단어나 문장을 섞어 쓰면서 두 언어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을 코드 전환이라고 부른다. 이 코드 전환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이해받지 못한 채 둘 다 제대로 못하는 무능함으로 간주되어 손가락질받기도 한다. 본인들 스스로도 때때로 '0개 국어 한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완벽하게 원어민처럼 하는 것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언어를 조금, 저 언어를 조금 하는 것은 정말 가치 없을까? 장보기에 필요한 수준, 길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는 수준, 운동 경기를 같이 하는 데 필요한 수준... 원어민 수준이 되지 못하는 한, 이런 각각의 수준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1993년 중국에서 제트기가 땅에 너무 가깝게 내려왔다가 충돌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비행기의 자동 조종 장치가 "풀 업, 풀 업(Pull up, pull up)"(조종간을 당기시오)이라고 경고를 보냈다. 중국인 조종사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도대체 이 '풀 업'이 뭐야?" 조종사가 조종에 필요한 주요 표현들을 영어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났던 사고였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일 필요가 없다. 조종사가 영어로 의학 용어를 알 필요도 없고 정치와 경제 용어를 알 필요도 없다. 조종사와 항공 관제사들 간의 소통을 위한 영어는 안전한 운항을 위한 정도면 충분하다.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도 '약간의 언어'가 의미 있는 경우는 많다.

이미 한국은 다문화 다언어 사회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한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라고 일률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 또한 한국인 학습자에게도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라고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못한다고 여길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수준으로 구사하고 그 수준을 편안하게 느끼는 여유로운 태도가 도입되면 좋겠다. 나 역시 내 외국어 수준에 대해 너그러워져야겠다. 어차피 스스로 닦달한다고 빨리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니투처럼 실수에도 용감하게 자꾸 말해야 빨리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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